두 달 전 아내가 시애틀공항에서 휠체어에 실려 터미널 밖으로 나왔다. 오른쪽 다리에 큼직한 충격방지 지지대를 매고 있었다. LA에서 며느리와 함께 마켓에 갔다가 주차장에서 넘어져 무릎에 살짝 금이 갔단다. 지난 10여년새 세 번째 낙상사고다. 첫 번째는 등산하다가, 두 번째는 동네 길을 산책하다가 넘어져 양쪽 팔목이 번갈아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그녀는 그나마 다행이다. 한 친지 어르신은 밤에 화장실에 가려다가 침대에서 떨어져 방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 바람에 고관절을 다쳐 거의 10년째 산행을 못한다. 몇년전 겨울날 교회 주차장에서 넘어진 한 산행동료 권사님도 거의 자리보전 상태다. 사지가 멀쩡한 치매환자나, 머리가 멀쩡한 낙상환자나 맘대로 운신 못한다는 점에서 똑같은 노인 비애이다.
미국에선 65세 이상 노인들이 연간 4명중 1명꼴로 낙상사고를 겪는다. 넘어져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오는 65세 이상 노인이 연간 300여만 명이며 그 중 80여만명이 입원치료를 받는다. 특히 고관절 골절이나 머리충격 진단을 받는 환자가 30여만 명에 달한다. 골반 뼈와 대퇴부의 접속부분인 고관절을 다친 낙상환자들은 5명 중 1명꼴로 1년 안에 사망한다.
의료기술이 발달했다지만 낙상사고 사망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00년 75세 이상 노인 10만명 당 52명이었던 낙상사고 사망률이 2016년엔 10만명 당 111명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여자가 남자보다 낙상사고율이 조금 높지만 사망률은 오히려 남자가 여자보다 약간 높다. 입원한 노인환자들에겐 낙상이 노인병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사망 원인이다.
한국 상황도 별로 다르지 않다. 65세 이상 노인 중 거의 16%가 연간 두 차례 이상 낙상하며 이들 중 65%가 입원치료를 받는다. 여성 입원환자가 남자보다 3배나 많다. 골다공증이 여성 중에 더 흔하기 때문이다. 전체 입원환자들 중 과반수가 2주 이상 치료받는다. 낙상 이유 가운데 ‘미끄러져서’(26.4%)와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아서’(20.1%)가 가장 많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노인들에겐 “넘어지지 말라”가 첫 계명이다. 노후대책이 완벽해도 한번 넘어지면 인생 끝장이다. 젊은이들엔 우습게 보이는 낙상이 노인들에겐 치명적이다. 골다공증 때문에 뼈가 약해진데다가 순간대처 능력이 무디어져 가볍게 넘어져도 뼈가 부러지기 일쑤다. 정골수술을 해도 정상으로 회복되는 확률은 10명 중 2~3명에 불과하단다.
골절로 움직이지 못해 눕거나 앉아서만 지내면 신체의 모든 기능이 퇴보한다. 욕창이 생기고 근육이 줄어들며 심폐기능도 떨어져 폐렴 따위 질병에 쉽게 감염된다. 운동부족으로 기존 노인병이 악화돼 빨리 사망하게 된다. 한번 낙상한 노인들은 그 원인을 방치한 채 또 넘어질까봐 움직이지 않으려든다. 따라서 신체기능이 더 약화되고 결국 더 잘 넘어진다.
모든 질병처럼 낙상도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나이만 빼고 모든 낙상위험 요소들을 줄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약을 경계하라고 권한다. 좋은 약이 많아져 예전 같으면 일찍 죽었을 노인들이 계속 연명한다. 장수도 좋지만 노인들이 습관적으로 복용하는 혈압약, 당뇨약, 수면제, 안정제, 전립선비대증 약 등은 어지럼증을 유발해 노인낙상의 큰 원인이 된다.
운동도 중요하다. 적어도 하루 20분은 걷기나 에어로빅을 해야 한다. ‘타이치’(太極拳)를 매주 한 시간씩 두번 하면 낙상사고를 58% 줄일 수 있다는 보고서도 있다. 걸을 때 이중초점 안경을 쓰지 말 것, 미끄럼 방지용 신발을 신을 것, 주머니에 손 넣고 걷지 말 것, 방바닥의 전선코드 등 장애물을 없앨 것, 욕조 벽에 손잡이 대를 설치할 것 등도 권면사항이다.
낙상사고로 누워 있거나 휠체어에 앉은 노인들은 맘대로 걷고, 혼자 운전하고 다니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나는 코흘리개 때 잘 넘어져 어머님이 ‘뒤뚱발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노인이 된 지금도 그 별명이 유효한지 근래 테니스를 치다가 넘어졌다. 다행히 부상은 면했지만 이러다가 손자손녀로부터도 ‘뒤뚱발이 할아버지’로 불릴까봐 은근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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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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