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슬러 선생님, 늘 제가 필요할 때 선생님은 만날 수가 없었죠. 덕분에 내 자신이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수업시간마다 술에 취해서 들어오신 선생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우리들에게 알코올 중독의 위험성을 가르쳐주시려 직접 자신을 헌신하셨으니까요.” 샌디에고의 한 고등학교에서 졸업생 대표 발레딕토리안(valedictorian)이 고별사를 통해 불만족스러웠던 재학시절을 꼬집었다.
디트로이트의 한 차터스쿨 졸업식의 발레딕토리안도 “임시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장기간 근무한 대체교사와 교사 자격증이 없는 성인이 우리들을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불만이라도 나타내면 학교 측은 주 전체의 교사난 문제라며 얼버무렸었죠.”라며 비정상적인 학교 시스템에 일침을 가했다.
발레딕토리안의 고별사는 스폿라이트를 많이 받기 위해 종종 과한 표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번 연설을 통해 미국 공립학교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다. 공립학교들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는데 이중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 중 하나는 교사와 교직원 부족이다.
대입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카운슬러의 경우를 보자. 많은 고등학교에서 이들에게 제대로 된 진학 상담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도 그럴 것이 전국 학교 카운슬러 연합회’(ASCA)에 따르면 현재 공립학교 카운슬러 1명이 담당하는 학생은 무려 482명이다. 권장 수준 250명에 비해 거의 두 배다. 50개주 중 권장 수준을 맞춘 곳은 뉴햄프셔, 버몬트, 와이오밍 3개 주 뿐이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카운슬러 1명이 담당하는 학생은 822명이며 애리조나는 941명에 달한다.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들의 이탈도 계속되고 있어 몸살을 앓고 있다. 흔히 교사라면 고용 안정성이 높고 장기근속에 대한 베니핏이 좋아 인기 직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다른 직종에 비해 박봉이고 업무 강도도 높아 해마다 학교를 옮기거나 이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나 뉴욕처럼 주거비 등 물가가 비싼 지역의 교사들은 생활고까지 호소할 정도다.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한 고교 영어 교사는 더 저렴한 렌트를 찾아 학교에서 1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집을 구했다. 그런데도 월급만으로는 렌트를 감당할 수 없어 주말에는 카페에서 일을 하며 ‘투 잡’을 뛴다. 또 다른 동료 교사는 “급여가 나오지 않는 방학에는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사교육을 비롯해 다른 부업을 찾아다닌다”고 전했다.
미국의 경제 호황은 교사들의 이직을 부추기고 있다. ‘경제가 좋을 때 다른 일자리 찾자’며 앞 다퉈 교단을 떠나기 때문이다. 연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1~10월 교사를 포함한 공교육 이직자는 월 평균 1만명 당 83명이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100만명이 넘는데 이는 2001년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최고치다. 캘리포니아의 경우도 매년 20%의 교육자들이 이직 등으로 교직을 포기하고 있다.
교사들이 떠난 교실은 충분한 훈련과 교육을 받지 못한 ‘자격 미비 교사’들이 메우고 있다. 애리조나의 경우 2017년 한 해에만 정식 교사 과정을 거치지 않은 ‘비상 교사 자격증’(Emergency Teaching Certificates) 소지자 1,000여명이 주내 120여개 차터스쿨 교사로 채용됐다. 비상교사 자격증은 전국 대부분 주에서 시행중인 교사 자격 요건을 거치지 않아도 되며 학사 학위만 있으면 된다. 문제는 이런 ‘땜빵 교사 수급’이 애리조나 뿐 아니라 전국 많은 지역에서 실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군사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은 군인들이 전투에 나가 전쟁을 치르는 격이다. 학생의 학업 성취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교사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청소년들에게는 가치관을 확립해 주는 가이드와 멘토 역할까지 해야 한다.
백년지대계 교육에서 교사의 역할을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더 많은 인재들이 교직에 관심을 갖고 문을 두드리게 해야 한다. 연봉 인상과 업무 조정 등 근무 환경과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 이의 일환으로 연방정부는 2년전 ‘교사를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으로 만들기’ 프로젝트를 선보였는데 부디 성과를 내기 바란다.
지난해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선 한 교사는 이런 팻말을 들고 있었다. “당신들이 교사들을 꼴찌처럼 대접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아이들을 최고로 보살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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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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