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니체라는 인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음악에 대해서 만큼은 많은 부분 공감하고 있다. 니체가 싫은 것은 그의 철학때문 보다는 왠지 그의 직선적인 주장들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철모를 때, 그의 ‘짜라투스트라’를 단숨에 읽어치우기는 했지만 무슨 뜻인지 알고 읽었는지는 미지수고, 어딘가 반골기질이 강하게 느껴져 싫었던 기억만이 선명하다. 사상에 대해선 니체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기에 여기서는 다만 음악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니체는 어떤 인물이었는가를 한번 조명해 보고자 한다.
‘음악(音樂)’이란 한자적이 뜻 풀이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소리로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뜻이다. 즉 소리를 낼 수 있는 모든 것은 음악의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인데 악기를 발명하면서 인류는 보다 구체적으로 음악을 하나의 향락의 수단으로 발전시켜 오기 시작했다. 민요나 가요, 토속 음악 등은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서나 엿볼 수 있는 것이지만 특히 그리스와 로마, 헤브라이즘(유대교와 기독교)으로 대변되는 서구 문화는 유독 음악이라는 장르에 독특한 동경을 가지고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다. 그 중 하나가 극음악으로서,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부터 시작된 오페라, 영화 음악 혹은 스크린 음악 등이 그것이다.
교회에서는 미사나 칸타타, 올겐 음악, 찬송가 등을 발전시켜왔는데 바로크 시대에는 단순히 예배를 위한 음악뿐 아니라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같은 작품은 연주회 용으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순음악으로서 심포니, 소나타 등은 연주회 장을 위한 음악들로서 서구 음악이란 이런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것인데 니체의 경우는 음악 중에서도 특히 극음악에 그 성향이 편중되어 있었다. 즉 음악에 사상이 개입된 낭만주의 작품들이나 오페라 등이 그것으로 니체가 초기에 바그너에 열광하게 된 것도 그러한 성향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니체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문학 등에 재능을 보여 작곡 실력도 꽤 있었다고 하며 그의 음악은 어딘가 기괴하면서도 인상주의적인 성향을 보였다고한다. 본 대학교에서 신학과 그리스 고전 문헌학을 배운 니체는 약관 24세(1868년)에 바젤 대학교 문헌학 교수로 임명되면서 본격적인 철학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바젤 대학 근처에 살던 바그너와 사귀면서 음악과의 사귐이 깊어져 갔는데 특히 쇼펜하우워의 음악론에 서로 공감하면서 깊은 우정을 나눴다고 한다. 그러나 니체와 바그너는 서로 반대쪽에서 음악을 사랑했고 바그너는 기독교, 니체는 무신론에 심취해 있었다. 특히 니체는 교회 음악보다는 고대 희랍의 비극 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극음악에 더 심취했는데 니체에 있어서 음악은 극음악 등에서 보이는 어떤 강렬한 비애(페이소스) 등을 말하며 니체의 초인주의의 탄생은 이러한 비애와 감동 등으로 몸집이 거대해진 서구의 낭만주의 음악 사조와도 전혀 무관하지 않았다.
니체(1844-1900)는 사시(사팔뜨기)에다 치질이 있어 잘 앉지도 못했고 매독(혹은 뇌종양)으로 정신분열증을 앓았다고 한다. 작곡과 詩作에 능했지만 남성적인 매력은 별볼일 없었고 루 살로메 등에게 차이면서 애정없는 불행한 일생을 보냈다. 대학에서는 신학, 그리스 고전 문헌에 주력했지만 오히려 문학과 음악에 대해 예리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어서 ‘비극의 탄생’이라는 음악 철학서를 (바그너에게) 헌정할 만큼 음악에 대해선 적극적인 옹호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학에서 해답을 찾지 못한 니체는 ‘신은 죽었다’며 무신론으로 돌아서 동양철학, 자기 중심적인 세계관 등으로 물들기 시작한 서구의 지성들, 그리고 20세기 실존주의에 큰 물결을 일으키기도했다. 니체에게 神은 그저 열등한 인간들의 공포, 죽음이 두려운 나약한 영혼들이 창조해 낸 내세관… 그 어두운 세계의 주인이었을 뿐이었다. 운명을 주관하고 삶을 변화시키며 기적을 만들어내는 신은 죽었으며 오직 그 신을 대신할 주체로서 그에게 존재했던 것은 인식의 神으로서의 정신의 주체, 철학 음악 등이 있을 뿐이었다.
니체를 음악으로서 만나게 된 것은 기독교 신자로서는 어쩌면 아이러니였을지 모르지만, 니체는 지독한 독설가이기는 했으나 야성이 살아있었고 오히려 많은 부분에 있어 오히려 종교인들보다도 훨씬 더 종교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니체는 적어도 신을 죽일 수 있을만큼 정신세계의 진실을 염원했고 율법주의, 선민 의식에만 빠져있는 (당대의) 여느 성직자들과는 달랐다. 음악이 없는 삶이란 실수라고 규정했던 니체는 인생이라는 항구에서 음악을 발견하지 못한 자들을 경멸했고 55세에 고독과 광기로 사망, 비록 삶은 저주(?)스러웠지만 니체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빛났던… 니체의 음악정신 앞에 R. 슈트라우스는 교향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헌정하여 그를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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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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