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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 포장산길 16마일 남짓, 울퉁불퉁 흙길 따라 거의 1마일. 리버모어 남부 평지에서 고성선원(원장 진월 스님)에 가는 길이다. 막판 흙길을 빼면 완만한 오르막이다. 때문에 선원이 해발 2,500피트 넘는 곳에 있음을 체감하는 건 쉽지 않다.
초행자가 그곳을 대번에 찾기는 더 어렵다. 네비게이터 안내대로 따라가면 흙길 초입을 지나치기 일쑤다. 길이 막혀 되돌아 나오며 길 오른쪽 우체통 군집에서 선원의 번지수(21810)를 찾아내야 비로소 흙길로 접어들게 된다. 네비게이터도 휴대폰도 작동이 잘 안되는 산중이다.
두 번째인데도 한참 헤맨 끝에 찾아간 3일 오후, 스님은 울력을 멈추고 기자를 맞았다. 아담한 선원 외관은 2년 가까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2층 법당에 오르는 사다리가 계단으로 바뀌고 마당에 여나믄명이 마주앉아 담소하기 좋게 의자 달린 목재테이블 두어 세트가 늘었다. 전기도 수도 시설도 없는 고성선원 두어 평 법당에는 흔히 보는 넉넉한 풍모의 불상 대신 피골상접 참선중인 소형불상이 벽장 같은 불단에 모셔져 있다.
“아프리카나 남미로 가서 불법을 펼쳐볼까도 생각해 보았으나 은사 고암 스님께서 생전에 현대 불국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미국포교가 우선이니 다음 생에는 미국에 태어나 수행전법 하여야겠다고 하신 발원과 유지를 되새기며 다음 생으로 미루기보다 금생의 여년을 미국에서 보내야겠다고 작정하고...”
2016년 개원한 고성선원 홈페이지(www.go-sung.org)에도 적힌 이 말을 스님은 그때그때 표현을 달리해 반복했다. 선원 명칭은 스님의 법사인 고암 선사에서 ‘고’를 따고 고암 선사의 법사인 용성 선사에서 ‘성’을 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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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처음 간 해인사에서 환희를 느껴 그대로 눌러앉았다는 진월 스님은 행자시절 성철 선사를 시봉하며 참선을 배웠다. 이후 여러 선방을 돌며 수행하다 동국대와 서강대에서 수학하는 등 학인의 길을 걸었고 1980년대 중반 하와이 대원사에서 법사로 활동하면서 하와이대 종교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내친김에 1990년대 UC버클리 박사학위까지 받은 뒤 스님은 동국대에서 후학을 지도하는 한편 조계종의 대표적 국제통으로 세계불교도우의회 집행위원, 국제불교대학협회 집행위원, 국제불교연맹 운영위원, 아시아종교연맹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지난달에도 유엔베삭데이(부처님오신날)행사 집행위원 자격으로 베트남과 태국에 다녀왔다.
화려한 국제활동과는 달리 스님의 선원살이 내지 북가주살이는 고행 그 자체다. 선원을 열면서 계획했던 젠아카데미, 템플스테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은 아직 먼 얘기다. 간간이 찾아오는 이들과 일회성 법담을 나누거나 한인사회 행사 참석차 혹은 다른 사찰 방문을 위한 외출 말고는 홀로 참선하며 울력하며 글을 쓰며 지내는 것이 주된 일과다. 돈 들 일은 적지 않은데 돈 될 일은 거의 없는 나날이다.
다른 스님들은 진작부터 하산을 권했다. 기자도 수차례 진언했다. 스님은 안빈낙도 은거수행 구년면벽 등 말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이날도 그랬다. 은사의 뜻을 받들며 자연을 벗삼아 ‘이리 살다 갈 각오’를 밝혔다. 하산 대신 그곳을 찾는 불자들 발길이 잦아져 선원이 한인불자들의 안식처 겸 수행처로 자리잡기를 서원했다.
법당에서 부엌 겸 응접실로, 그곳에서 그늘이 지기 시작한 마당 한켠 테이블로 옮겨가며 세 시간 가까이 이어진 자리에서 스님은 승가회 활성화와 불자들의 바른 공부 필요성을 재삼재사 강조했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선원 홈피에 이렇게 정리돼 있다.
“한국불교가 미국에서 뿌리내리고 확산이 성공되려면 한국불교도 제대로 알아야 될 뿐만 아니라, 한국과 다른 다양한 불교전통과 변용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존중하는 관용과 배려가 필수적이다. 형식적인 관행을 고집하고 의례적으로 사찰에나 다니며 불교인 행세를 하고 비불교적 언행을 하면 이는 한국불교를 평가절하하게 하거나 불신과 무시를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진월 스님이 걸어온 길, 걸어갈 길, 꿈꾸는 세상 등에 대한 보다 상세한 속내는 고성선원 홈피(www.go-sung.org)에 접속하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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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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