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와 호흡을 같이 해온 뉴욕한국일보가 6월9일로 창간 52년을 맞는다. 한국일보는 한인사회와 같이 울고 같이 웃으며 52년이라는 긴 세월을 달려왔다. 지난 52년 한인사회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왔다. 한국일보는 한인사회 성장의 견인차로서, 그리고 정직한 기록자로서 묵묵히 주어진 소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일보가 써내려온 지난 52년의 역사 속에는 한인사회가 온갖 격랑을 헤치면서 흘렸던 땀과 눈물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1967년 뉴욕 한인인구는 겨우 3,000명, 대부분 유학생이나 유학생 출신 사업가들이라 한인단체나 광고를 낼만한 비즈니스도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65년 개정이민법으로 이후 한인들이 물밀듯 밀려오면서 한인사회 성장과 함께 한국일보는 이민사회 길잡이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현재 뉴욕·뉴저지 일원 한인인구가 50만을 넘어서고 경제력 또한 폭발적으로 커진 지금, 당시를 되돌아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부쩍 성장한 정치력 신장으로 앤디 김 연방하원의원, 론 김 뉴욕주 하원의원, 뉴저지 팰팍 최초의 크리스 정 한인시장을 비롯 선출직 공무원을 다수 배출함으로써 주류사회에 한인사회의 파워를 증명했다.
잘 자란 2세, 3세들이 주류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림으로써 모범적인 소수민족 커뮤니티로 당당히 섰다. 모국의 경제적 위상이 올라가고 문화적 영향력이 급속히 커지면서 한인들의 자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지난 52년 사이에 일어난 한인사회의 변화이다. 물론 이런 눈부신 성장과 발전은 한인들 특유의 근면과 개척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 가운데서 한국일보는 한인사회 정보 제공자로서뿐 아니라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으로서 소임을 다해 왔으며 이런 사실에 무한한 긍지를 느낀다.
지난 52년의 큰 변화들 가운데 하나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언론환경이다. 미디어 환경과 기술은 52년 전과 비교할 때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됐으며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빛의 속도’라는 표현이 실감날 정도다. 이런 변화들 속에 신문의 미래와 관련한 담론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담론은 종이신문의 위기이다. 하지만 종이신문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일부 지역, 일부 신문의 경우에는 오히려 되살아나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신문의 건재를 보여주는 증거들은 많다. 내용과 편집에서 높은 완독가능성을 갖춘 인쇄매체는 여전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콘텐츠의 힘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른바 ‘아날로그의 반격’으로 지칭되는 트렌드이다.
디지털시대에 단순한 정보제공자로서 전통적인 신문의 역할은 크게 위축됐다. 그러면서 신문에게는 통찰력 있는 분석과 비판적 성찰을 제공하는 매체로서의 역할이 새롭게 요구되고 있다. 정보의 전달 속도가 아닌, 정보의 깊이가 신문의 가장 중요한 존재의미가 된 것이다. 종이신문이 위기론 속에서도 아직 건재한 것은 이런 본질적 가치에 기인한다.
디지털이 지배하는 시대적 흐름에 대처하고 적응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한국일보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변화를 모색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 결코 게으르지 않을 것이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효과적인 결합을 통해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최대한 충실하게 수행할 것임을 독자들에게 약속한다. 그 방식과 형태가 무엇이 됐든 결코 변해서는 안 될 언론의 본령은 진실추구에 있음을 한시도 잊지 않겠다는 다짐도 한다.
21세기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이념의 양극화와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가짜뉴스들 속에서 사회는 날로 혼탁해지고 있다. 이것들이 개인들의 의식과 언론들의 보도태도를 지배하면서 치우침과 쏠림은 이제 되돌리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거짓과 허구 속에 뒤섞여 있는 진실과 사실을 가려내고 찾아내는 일은 그래서 한층 더 시급하고도 엄중한 언론의 과제가 됐다.
그런 가운데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것은 한국일보 창립자 백상 장기영 선생이 강조한 ‘춘추필법’의 정신이다. “연필을 뾰족하게 날카롭게 깎아서 기사를 쓰자. 붓끝에서 신경이 약동해야 한다.” 정정당당함과 불편부당은 시대와 환경이 바뀌어도 결코 달라질 수 없는 언론의 기본자세다.
뉴욕한국일보는 이제 영광과 보람의 52년을 지나며, 날카롭게 연필을 깎아 기사를 쓰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뉴욕한국일보가 언론으로서, 또 한인사회 동반자로서 올곧은 역할과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한결 같은 애정과 성원을 보내준 독자들과 광고주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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