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은 4월 초 중순부터 시작하여 한 달 이상 끌다가 5월 말쯤 끝난다. 지난 10여년 연례행사처럼 되풀이 되었다. 싸움의 발단은 한 쌍의 참새가 집 뒤뜰 처마 밑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처음 2~3년은 그대로 두고 보았는데 조류독감의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아침마다 시끄러운 새소리에 새벽잠을 설치고, 새들이 물어온 흙덩이며 나뭇잎들로 처마 밑 덱이 지저분하다고 불평하던 아내가 조류독감의 위험성까지 겹치자 태도가 강경해졌다. 처마 밑 새집이 1/3 쯤 지어지면 나는 빗자루와 막대기로 가차 없이 부셔 버린다. 실은 싸움이 아니라 새들의 생존과 종족유지 본능을 내 이기적 행위로 쓸어버리는 일종의 폭력행위다. 진화적 강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갑질에 해당한다.
그런 행위를 한 후면 가끔 나라는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흑인의 피가 흐르고 흑인의 유전자를 지녔으나 형제와는 다르게 백인으로 태어난 자의 이중적 삶을 그린 필립 로스의 소설 ‘휴먼 스태인’ 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의 망막에 오버랩 된다.
선과 악에 대한 철학적, 종교적, 심리적, 정치적, 사회적 개념은 서로 다르다. 인간 내면의 무의식 연구에 일생을 바쳤던 칼 융에 의하면 우리 모두는 선과 악의 양면성을 지녔다.
선과 악은 항상 서로 따라 다닌다. 선만을 너무 고집하여 악을 심하게 억압할 때 인간의 파괴적 행동이 폭발한다. 선의 그림자인 악을 자신이 아닌 다른 대상에 투사하여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방어기전을 사용하는 대신 악의 존재를 인정하고 마주보며 때로는 화해하며 사는 마음 상태를 유지하여야 성숙한 인격체가 형성된다.
이런 과정을 융은 악의 의식화인 깨달음이라 했고 프로이드는 무의식의 의식화로 불렀다.
우리는 자신을 알 수 있는 존재일까? 19세기 말 영국의 저항시인 윌리엄 헨리는 ‘인빅투스’ 시에서 자신의 영혼까지도 알 수 있는 자가 자기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읊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오스트리아 정신분석의사 프로이드는 인간은 진정한 자신을 모르는 채 생을 마치는 존재라고 했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인간은 두 개의 자신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의식상태로 나타나는 외적인 자기, 다른 하나는 무의식 속에 묻혀있는 내적인 자기이다. 정신분석 치료를 통해 이 둘을 합쳐지게 만드는 시도를 했던 그는 무의식의 자기를 온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세계 곳곳에서 자기와 다른 종교, 다른 종족인 자들의 인간 존엄성과 삶을 완전히 파괴해 버리는 행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내면의 본성을 긍정적으로 성찰하지 못하면 자기에 대해 너무 모르는 무지나 무심함, 이기적 생각 때문에 인간은 지구촌 모든 재앙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융은 이를 막기 위해 내면의 그림자를 발견하는 고난의 길을 가야한다고 역설했다. 인간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에 대한 동질감, 소속감, 애착, 배려 그리고 책임감 등을 함께 지고 가야 한다는 말이다.
내년 4월, 나는 새집을 부수지 않을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 일 것이다. 새들의 안녕보다 가족의 건강이, 가정의 평화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파괴자 같은 행동 후 며칠은 죄책감이 들겠지만 자꾸 하다보면 일상적 일이 되어버릴 것이다. 유태인 학살 하수인이었던 아이히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 그와 비슷한 심리구조를 가진 인간들이다.
인생은 한 고통이 끝나면 다음 고통이 기다리는 고통의 굴레다. 살면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어떻게든 풀고 나가야 한다. 인간은 신의 미완성 작품이다. 아무리 성숙한 인격을 가졌다 해도 내면에는 악의 그림자가 항상 따라 다닌다는 설에 내 이기적 행위를 합리화시켜 본다. 또한 의인을 부르러 세상에 온 게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예수의 말에도 위로를 받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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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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