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편의 병원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환자 접수 담당자인 지넷이 어제 뉴스를 보았느냐고 호들갑스럽게 묻는다. 매일 해야 할 일 보다는 인터넷에서 흥미꺼리만 뒤지는 직원인지라 “또 뭐?”라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중국 북쪽의 작은 마을에 비가 너무 많이 와 홍수가 났다는 것이다. 약 150명 정도가 죽고 수십 명 이상이 행방불명이란다.
“그래?”로 끝낼 나의 태세에 얘기는 지금부터란다. 가슴까지 차는 물을 뚫고 한 남자가 자기의 부인과 두 자녀를 구하러 자신의 집으로 가는 대신, 같은 동네에 사는 그의 어머니의 집으로 바로 갔다는 것이 요지이다. 화가 난 부인이 돈과 두 아이를 챙겨 친정으로 가 버렸단다.
“흠~ 재미있는 얘기네” 하고 말을 맺으려는데 진짜 얘기는 또 지금부터란다. 어제 점심시간에 이 뉴스를 내 남편인 닥터 윤에게 말하니 자기도 똑같이 그렇게 했을 거라는 대답이었단다. 그녀에겐 이 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라 했다. “아시안 남자는 다 그래.”라며 놀라지도 않는 나의 대답에 시집도 안 간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듯 머리를 설래설래 흔든다.
나는 지금까지 남편에게 그 젊은 중국 남자와 같은 선택의 딜레마가 없었던 것이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똑같은 경우가 일어났다면 남편도 그와 똑같은 행동을 하였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면 난 과연 어떤 행동을 하였을까?
중국과 한국의 문화를 지배해온 것은 유교이고 효(孝)는 그 중심사상 중의 하나였다. 가정윤리에서 가장 중요한 효 사상은 한국고유의 가치관으로 오랫동안 내려왔다. 3대나 4대가 함께 살던 가족들이 핵가족으로 변모해 가면서 자기 처자식만을 중히 여기는 문화가 자연히 형성된 것이다. 나의 손녀들에게 너의 가족은 누구냐고 물어보면 절대 할머니, 할아버지를 넣어주지 않는다. 남편은 미국에서 산 세월이 한국에서 지낸 시간보다 훨씬 많지만 충청도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에게 효 사상은 치즈보다 김치를 선호하는 입맛같이 너무 자연스럽다.
우리 부부는 남편이 미국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끝낸 후 겨우 대출을 받아 첫 집을 장만했다. 남편은 맨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병중에 계시는 아버님을 모시고 와 돌아가시기 전에 효도를 다 하고 싶다고 했다. 시아버님은 폐기종이 심한 상태였던지라 그가 한국으로 모시러 갔다. 산소통과 휠체어에 의지하여 시어머니와 함께 워싱턴에 오셨다.
그는 의사의 기술을 십분 발휘하여 주사와 약으로 아버님의 상태를 최상으로 만들었다. 남편은 집에 오기가 무섭게 아버님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어 유년시절 고향의 골목에서 누군가를 불러들여 끝도 없는 옛날 얘기가 밤마다 이어졌다. 다리를 주물러 드리며 미국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얘기를 조곤조곤 알려드렸다. 목욕도 시켜드리며 밤이 늦어서야 방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눈을 뜨자마자 아래층으로 내려가 문안을 드렸다.
그는 아버님이 돌아가시는 그 날을 미리 감지했다. 나에게 일찍 시장을 보아놓고 집에 있다가 무슨 일이 있으면 빨리 연락해달라며 출근을 하였다. 시장을 보고 집에 오니 어머니가 겁에 질려 울고 계셨다. 내 손으로 아버님의 두 눈을 감겨드렸다. 난생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죽음을 경험했다. 그에게는 원한이 없는 5개월이었을 것이다. 난 애 셋 기르며 시부모님 뒷바라지와 식사를 열심히 챙겼지만 한동안 결코 한 덩어리가 될 수 없는 이방인이었다. 외로운 시기이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매정한 면도 있는 나의 남편이 눈물을 보일 때가 있는데 이건 돌아가신 부모님과 관련된 것이다. 시어머니의 고별예배를 드리던 날은 그의 마음을 아는지 하루종일 흐리더니 결국 저녁에는 비가 왔다. 다음 날 하관예배를 드리고 어머니의 관에 흙을 뿌리던 남편의 눈물이 가을 햇살에 반짝였다.
어머니는 한 분 뿐이고 아내는 또 얻을 수 있다는 남편과, 자기 하나만 믿고 시집온 자신의 반쪽이 우선이라는 아들 사이에 있는 나. 내가 살길은 오직 남편과 아들에게 결코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는가.
미국에서 이 기사가 나간 뒤 ‘급한 상황에 너의 부모를 구하겠느냐 혹은 너의 파트너를 구하겠느냐?’는 트위터 설문조사에 11000명이 투표를 하였는데 32%가 부모를, 68%가 아내를 택했다고 한다. 중국 매스컴에서도 마누라 안 챙겼다고 호되게 비난 받은, 결혼 5년 차인 불쌍한 중국사나이의 이름은 가오이다. 그가 말했다. “시간이 없었어요. 강물이 너무 갑자기 세게 불어났어요. 아내와 어머니를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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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애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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