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격이 조금 게으른 편이다. 아니 다분히 부르조아적이라고할까. 집에서 빈둥빈둥 놀면서 멘델스존 등의 음악에 젖어 있노라면 조금 죄의식조차 느껴질 때가 있다. 늘 천하태평 무사안일주에 빠져 있다는 것은 솔직히 아무런 목표도 없이 무위도식하는 그런 나태함이나 다름없다. 어떻게 보면 조금 무기력하고 우유부단한 모습를 보여주고 있지만 나는 이런 내가 좋다. 아니 좋다 나쁘다라는 표현은 적절치 못하며 나는 그저 남과 비교되는 것이 싫을 뿐이다. 그저 하루하루를 빈둥대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다. 나는 가끔 이런 내가 전생에 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꽃은 아름답지만 수동적이며 생명이 짧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가치있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꽃이 아닐까. 만일 꽃이 쉽사리 지지 않고 무한히 피어있는 것이라면 꽃이 아름답다고 느껴질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꽃은 그 만개한 순간이 짧기 때문에 더 애잔하고 꽃피는 계절이 더욱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꽃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죽음이 꼭 어둡고 침울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오고 가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순응과, 삼라만상의 피고 짐,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믿음을 싹티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봄에 피는 꽃 중에 라일락을 가장 좋아한다. 왜냐하면 예전에 우리가 살던 집에 라일락이 있었기 때문이다. 벚꽃만큼 흔히 볼 수 있는 꽃은 아니지만 라일락은 꽃 향기가 강해서 좋아하던 꽃이다. 라일락은 집 근처 1백미터 전방까지 향기가 가득 느껴올만큼 향기가 강한 꽃이다. 사람에게도 각기 얼굴 모습이나 분위기가 다르듯 꽃에도 향기가 주는 느낌들이 사뭇 다르다. 장미는 향기가 매혹적이지만 멀리서 맡기에는 조금 약하고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가서 코를 들이밀고 맡아야 향기가 더 강렬하다. 국화는 강하지는 않지만 향기가 맑고, 코스모스나 진달래 등은 세상을 아름답게 채색해 주지만 향기가 약하다. 라일락이나 아카시아 등은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지라도 멀리서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꽃들이어서풍성한 매혹을 선사해 주는 꽃들이다. 아카시아가 마치 교복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여학생의 순결한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다면 라일락은 다소 성숙한 여인의 냄새가 난다. 조금 새침하고 도도해 보이는 미인의 향기와 같다고나할까. 더욱이 그 향기가 발랄하기 때문에 라일락 향기를 맡고 있으면 괜스레 로맨틱해지기까지 한다. 꽃말은 ‘연인의 향’, ‘첫 사랑’ 등의 뜻이 있다고 하는데 보랏빛이 가장 흔해서 푸르다는 아라비어 ‘laylak’ 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향기 때문에 젊은 연인들에게 특히 인기 있고, 그래서일까 라일락의 향기는 나의 성격에도 조금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인생이 향기로워질 거라는 뭐 그런 긍정적인 면… 그리고 외모나 시각적 아름다움보다는 라일락 처럼 향기를 더 중시하는 실질적인면 등을 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5월에 피는 꽃… 라일락을 늘 지척에 두고 살 수 있게 된 것은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당시 아버지께서 갑자기 전근을 하셔서 급하게 이사를 가지 않으면 안 됐는데 그곳은 약국을 경영하던 어느 일가친척이 소유하던 집이었다. 서울 변두리였는데 이사를 하자 마자 약 4개월쯤 됐을까, 그분들이 이민을 결정하는 바람에 집을 팔게되서 또다시 이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분들은 우리가 이사를 오자마자 또다시 이사를 해야한다는 것이 미안했던지 그 동네에서 가장 전망 좋고 또 마당이 넓은 아름다운 집을 구해 주셨다. 물론 그 안에 커다란 라일락 나무가 있었고 마당에는 앵두나무, 장미 등의 화단이 있는집이었다. 샛길을 사이에 두고 집 옆에는 넓은 포도밭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살던 집은 봄이면 라일락 향기 가득하고 여름이면 이육사의 청포도 익어가는, 그런 곳이였다는 것이다.
살다보면 가끔 그 때 그 시절이 떠오를 때가 있는데 연한 보랏빛 라일락은 지금도 마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즉 인생에는 향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것, 남들에게 인정받는 명예를 가지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향기가 없는 풍요, 향기가 없는 명예란 그것이 제 아무리 크다해도 사실은 향기없는 무덤과 같다는 것이다. 즉 살아있는 모든 것에 향기가 없을 때 그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살다보면 행색(겉모습)은 예술가인데 아무런 예술적 향기가 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겉은 평범하지만 늘 어딘가 인격적 향기가 풍겨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아니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은 어떤 향기를 풍기고 있을까? 사실 좋은 글을 쓰기란 나의 경우 치외법권적인 분야인 것 같다. 그럼에도 라일락처럼 나는 좀 낙천적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남이 알아주던 몰라주던 소신껏 지면을 메워 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하나의 신변 잡기에 불과했던 아니면 작지만 한 권의 책으로 남길 수 있을만한 작업이었던 향기로 비교하자면 그 때 그 시절 그 라일락의 향기만큼에는 작은 것이라는 것이다. 인생은 선물이다. 남은 인생도 5월의 그 라일락 향기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아무련들 어떠하랴.
<이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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