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학들의 졸업식 외빈 연사들의 축하와 덕담은 주로 해당 졸업생들과 부모들만 얼마동안 기억하는 진부한 내용이기가 쉽다. 전직 대통령이나 노벨상 수상자 또는 대기업 총수쯤이 연설한다 해도 괄목할 만한 내용이 있기 전에는 대학부근의 지방신문 방송에서나 보도된다. 그런면에서 보면 5월 19일 애틀란타에 소재한 모어하우스 대학 졸업식의 외빈 연사 로버트 F. 스미스의 연설은 역사상 가장 인상에 남는 졸업연설 중 하나로 꼽힐 것이다. 비스타 에퀴티 파트너스란 사모펀드의 최고 경영자인 그가 400명에 가까운 졸업생들과 학부형들 앞에서 졸업생들의 학자금을 모두 갚아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BBC를 포함한 전 세계 미디어에서 취급할 정도의 미담이기에 한국 신문들도 1면에 스미스의 사진과 학생들의 환호성 장면을 게재한 것이 이상하지 않다.
모어하우스 대학은 흑인들의 유서 깊은 대학으로 가장 유명한 졸업생은 폭력인권운동의 지도자였던 마틴루터 킹 박사다. 미디어의 보도에 따르면 졸업생들의 학자금 전체를 갚아주는 데는 천만불에서 4천만불이 필요하단다. 모어하우스 대학의 1년 학비는 기숙사비용을 포함해서 48,500불인바 학생들의 90퍼센트 이상이 장학금, 학자금융자, 연방보조금 등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학교자체의 기금이 유명사립대학들에 비해 턱도 없이 모자라니까 대다수의 학생들이 학자금융자를 필요로 한다.
스미스의 특출한 선행이 실천에 옮겨지는 절차는 상당히 복잡한 모양이다. 스미스와 그의 가족들은 이번 졸업반의 학자금 전체를 갚아줄 기금을 세우지만 기금을 운영하는 것은 대학 당국이다. 그런데 학생들의 학자금 융자와 상환이 여러 은행들과 수금업체들을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연락해야할 곳과 검토·서명해야 할 서류들이 적지 않을 것을 짐작하게 된다.
스미스의 뛰어난 관대성 때문에 그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고조된 상황인데도 그가 미디어의 인터뷰에 일체 응하지 않고 있어 그의 겸손성이 돋보인다. 흑인중 최고 부자라는데도 그 이름 조차 생소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가 자선사업을 하되 자기자랑을 삼가는 비이기적 인물이기 때문인 듯 하다. 예를 들면 워싱턴 DC 소재 스미소니안 아프리칸 아메리칸(흑인) 박물관이 신축되었을 때 그가 2,000만불을 희사했지만 당국자들이 그 이름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다. 워싱턴 포스트의 2016년 인터뷰와 인터넷상의 보도로 그의 배경을 살펴보자.
스미스는 콜로라도에서 부모 둘 다 박사학위를 받은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몇 달 동안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 대학생들이나 인턴으로 받는 벨 연구소에서 발탁될 정도로 컴퓨터 기술이 뛰어났단다. 코넬대학에서는 화공학을 전공했고, 그 분야에 발명특허도 있었지만 컬럼비아대학원에서 MBA를 획득한 후 투자은행 골드먼 삭스에서 큰 하이텍 회사들의 합병을 돕는 일을 하다가 2000년에 자신의 사모펀드를 설립했다.
그의 펀드는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분야에 투자하여 현재 약 460억불의 자산을 운영하고 있고 개인재산만 50억이지만 스미스의 주요 목표는 자선을 통한 부의 사회 환원인 듯하다. 그전에도 모어하우스 대학에 150만불을 장학금으로 기부한 적이 있었고 모교인 코넬대학에는 5,000만불을 헌금했을 뿐 아니라 2017년에는 ‘희사서약(Giving Pledge)’에 자기 이름을 추가했다. 그 서약은 세계의 억만장자들과 가족들 중 자신들의 부의 대부분을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공개적으로 하고 실천에 옮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격려하는 단체다.
스미스는 이번 졸업 연설에서 모어하우스 졸업생들이 졸업후에 학자금 상환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면 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모어하우스의 장래 학생들에게 기부할 동기가 생겨 자신의 이번 희사가 선순환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했다. 한 졸업생의 반응이 몹시 긍정적이다. “그것은 당신의 힘, 영향력과 부를 당신의 사회로 환원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로버트 스미스는 오늘 우리들 400명에게 그렇게 했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미국 대학생들의 대다수가 학자금 융자때문에 졸업이 늦어지고 또 졸업 후에도 학자금 상황에 허덕이고 있어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스미스의 관대함은 신선한 청량제다. 어느 영화에서 들은 대사가 생각난다. 돈은 분뇨와 같아서 한군데 모여 있으면 악취가 나지만 골고루 뿌리면 식물들이 자라는 거름이 된다는 명언이었던 것 같다. 스미스의 쾌거를 본 받고자 하는 억만장자들이 줄을 서고 있을 것을 공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글쎄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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