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날, 그날도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났던 날처럼. 비록 어머니날은 계절은 봄이고, 어머니가 떠나신 날은 계절이 가을이었지만.
어머니는 봄비를 등에 업고 봄바람을 타고 오셨다가, 가을비 등에 업혀 가을바람을 타고 가신 것인가. 아니다. 그것만이 다른 것만은 아니다. 어머니가 가신 날에는 붉은 카디널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내 서재 창문을 두드리고, 창밖에서는 샛노란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어머니날에는 사슴 세 마리가 찾아와 놀란 눈을 두리번거리며 정원 잔디들을 뜯고 있었다.
어머니는 놀란 사슴으로 태어나셨다가 한 잎의 낙엽으로 우주 속으로 사라지신 것이다. 일요일 아침 평상시보다 30분 이른 9시30분에 종교 친우회 모임에서 한 시간 동안 공동 명상을 했다. ‘How do we seek truth by which to live In what way is my live in harmony with the truth as I know it ’ 명상의 주제가 벤치 위에 놓여 있었다. 묵상을 전적으로 각자의 자유에 맡기는 것이 평소의 관례인데 왜 어머니날인 오늘, 특정한 공동의 묵상 주제를 주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분명 명상이 아니라 묵상이었다. 각자의 깊은 내면 속에 반짝이고 있는 진리의 불빛을 명상을 통해서 체험하고, 그 진리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은 우리 친우들의 종교적 신념이다. 어머니도 각자의 내면 속에서 진리의 불빛처럼 반짝이고 있단 의미일까. 명상을 끝내고 책 몇 권을 들고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 커피샵을 찾았다. 일요일마다 빼놓지 않고 하는 나의 습관이다. 시집을 펴고 루이스 글릭의 시 ‘애도’를 읽어 내려갔다.
당신이 갑자기 죽은 후,
그동안 전혀 의견 일치가 되지 않던 친구들이
당신의 가사람됨에 대해 동의한다.
실내에 보인 거수들이 예행연습을 하듯,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당신은 공정하고 친절했으며 운 좋은 삶을 살았다고.
박자와 화음은 맞지 않지만 그들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진실하다.
<이하 중략>
하늘나라에서 나와의 상봉을 애타고 기다리고 계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아니다. 그것은 나의 일방적인 소망일뿐, 어머니는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실 이기적인 분이 아니었다. 그리움을 꾹꾹 참으시며 내가 이 지구촌에 오래오래 건강을 즐기며 살기를 기도하고 계실 것이다.
나, 아들을 위해서라면 어머니는 나를 만나기를 아예 포기하실 지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어머니는 늘 그랬었다. 찬밥은 자신이 드시고, 더운밥은 내 앞에 내미셨고, 생선을 구우시면 먹을 것 없는 머리는 당신이 드시고, 살이 있는 몸통으로 아들의 배를 채우셨다.
이기적인 주위의 기독교인들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평생 “눈을 감기 전에는 교회 문턱을 넘지 않으시겠다”던 어머니의 맹세를 돌아가시기 전에 무너트린 것도 나의 ‘천국 보험론’ 때문이었다.
“어머니, 만약 천국이 존재한다면 어머니와 내가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희망이 있잖아!” “너를 그렇게라도 다시 하늘나라에서 만날 수 있다면야 기독교 하나님을 믿어야겠지.” 그 포기선언을 하시던 어머니의 눈동자는 유난히 반짝거렸다.
나는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에 ‘어머니 관 속에 넣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성경 한 권과 찬송가 한 권을 큰누나에게 소포로 보냈었다. 어머니에게 드렸던 나의 마지막 선물들은 지금쯤 어머님 시신과 함께 한 줌의 흙으로 삭아져 있을 것이다.
어머니, 예수가 왜 ‘좁은 길로 가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세요? 사랑의 길은 너무 좁아서 두 사람이 함께 걸을 수가 없기 때문이랍니다. 사랑의 길을 통과하려면 내가 너와 하나가 되어 걸을 수밖에 없답니다. 어머니는 평생 그런 좁은 길을 혼자서 걸으시다 살다가셨습니다.
하늘나라 사랑길은 저 넓고 넉넉한 하늘처럼 어머니와 내가 둘이서 서로 손을 잡고 뛰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햇빛이 놀랍도록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다가 갑자기 구름 낀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들꽃들이 피고 지며 뉘엿뉘엿 지고 저녁 산들바람이 솔솔 불어 오는 버지니아 숲길을 당신과 둘이서 손을 잡고 걷고 싶습니다. 오늘, 바로 이 순간에.
<
박평일 클립턴,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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