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남 광복회 미국서남부지회장
100년 전 당대의 애국자들의 집합체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였다. 나라 잃은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국권회복을 꿈꾸던 사람들이 모였다. 그 중에 현순이란 분이 있었다. 3.1 독립운동이 일어난 소식을 상하이에서 들은 그는 즉시 샌프란시스코의 도산 안창호에게 전보로 이 사실을 알렸다.
도산은 조국에 격변이 일어난 사실을 알고 곧 미주의 한인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도울 방안을 구상했다. 상하이 임시정부 재정지원에 나섰다. 임시정부 건물 마련과 지속적인 운영비 조달이 없었더라면 임시정부의 존속은 어려웠을 것이다.
두어 달 전 현순 독립운동가의 손자인 데이빗 현 주니어가 내게 석장의 복사본을 건네주었다. 그는 건축가이자 상업부동산 전문가인데 그의 부친은 1980년대 LA 리틀 도쿄의 허름한 일본타운을 도시형 커뮤니티로 바꾸는데 기여한 빌리지 플라자 건설을 도맡았다고 한다.
복사본 첫장은 현순 선생의 오래된 사진, 나머지 두 장은 1920년에 임시정부 초대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현순 외교위원을 초대 미국대사로 임명한다는 내용의 한글과 영문 문서였다.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주후 1920년, 단기 4253년 10월6일, 대한민국 이년 십월륙일 대한민국 대통령 리승만.”
마지막 영문을 나는 몇 번 거듭 읽었다. 명문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거주 15년이 채 안 되는 45세의 대통령으로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영어를 구사한다는 말인가.
그를 존경하는 이들은 왜 1948년 건국절을 주장하고 그가 임시정부 초대대통령으로 활동한 1919년을 외면할까. 임시정부 마지막 시기에 김구 주석이 그 상징으로 여겨져서인가.
나의 집 거실에는 김구 주석이 나의 선친에게 써준 액자가 걸려있다. 약간 떨림체로 한자로 쓰여진 내용은 이렇다.
“눈 내린 들판 길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라. 오늘 내가 걸어가는 길을 훗날 다른 사람이 따라올 것이기에. 대한민국 30년 7월 임시정부 주석 판공실. 73세 백범 김구 서증, 박영창 아사(雅士).”
대한민국 30년은 그의 서거 1년 전인 1948년이다. 선친은 백범 선생에게 “혁명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선생의 대답은 “혁명은 상투잡이와 같다”였다고 한다. 왜 선생은 남북합작으로 통일 조국을 이루려고 북한을 방문했을 때 그쪽의 상투를 먼저 잡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와서 남쪽에서도 상대의 상투를 잡아보지도 못하고 떠나가야 했나.
이제 누가 통일된 우리나라를 일구어낼 것인가. 아무래도 도산 안창호 선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가장 실질적으로 도운 분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편히 살 수 있었던 그는 왜 스스로 호랑이 굴로 들어가 모국에서 1938년의 죽음을 자초해야만 했는가.
2년 전 한인타운에서 열린 도산 세미나에서 축사하는 분이 한국인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두 사람으로 세종대왕과 도산 안창호를 꼽는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도산을 꼽는다면 그날은 남북통일의 날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오늘의 광복은 반쪽 광복이다. 민족 통일이 없이는 온전한 광복이라고 할 수 없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삶을 한마디 키워드로 말한다면 통일이라고 하겠다. 그는 통일을 위해서 한평생 헌신했다.
일제 치하의 모국에서는 독립을 위해서 우리 민족이 힘을 합쳐 통일된 힘으로 투쟁해야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했고, 미국에서는 이민자들의 힘을 한군데로 모아 통일된 힘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무총장으로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지도자들의 통합과 통일된 역량 축적이었다. 다함께 힘을 모아 통일된 에너지로 독립운동을 해서 조국통일을 이루자는 게 그의 대공주의이다.
국내외와 남북의 동포들이 한마음으로 합쳐지기 위해서는 도산 사상이 절실하고 가장 적합하다.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삶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갈라진 마음과 땅의 회복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선열들은 우리에게 민족통일의 과제와 남북통일의 꿈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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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남 광복회 미국서남부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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