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일요일 저녁 씽코데마요 (Cinco de Mayo) 파티에 다녀왔다. 씽코데마요는 스패니쉬로 5월 5일을 가리키는데, 멕시코가 1862년에 프랑스의 침략을 푸에블로 전투에서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됐다고 한다. 지금은 본국인 멕시코보다 오히려 미국에 살고 있는 멕시코인들의 문화 행사로 지켜지고 있다고 한다.
멕시코는 1846-1848년 사이 미국과의 전쟁 그리고 그 후 내전을 겪으면서 외국에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정부의 재정이 고갈되자 1861년에 외국 부채에 대한 지불을 2년간 동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프랑스는 무력을 동원해 부채 상환을 요구했고 결국 군사 공격을 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멕시코는 처음에는 밀렸으나 나중에 푸에블로 전투에서 훨씬 작은 규모의 군대로 프랑스를 격퇴했다. 프랑스군은 그 다음 해에 멕시코를 다시 공격했고, 1867년 미국의 압력으로 퇴각할 때까지 멕시코에 주둔했지만, 푸에블로 전투는 멕시코인들에게 상징적이나마 유럽의 강대국을 상대로 이긴 프라이드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다녀온 멕시코 이민자들의 파티 장소가 공교롭게도 과거 한인 동포 사회의 사교 모임 장소로 제법 알려졌던 ‘워싱턴회관’이었다. 폴스처치의 콜럼비아 파이크 선상에 위치했던 ‘워싱턴회관’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곳은 여러 해 동안 이 곳 한인 동포사회 내에 몇 안 되는 라이브 밴드가 나오는 주점이었다. 고국 생각 흠씬 나게 하는 음악을 들으며 동포들이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곳이었다. 서로 이민 생활의 어려움을 나누고 정보도 교환하면서 말이다.
이 곳을 나의 부모님들도 몇 번 찾으셨다. 왜냐하면 밴드 바로 앞에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그 곳을 찾으실 때는 같은 친목계원들과 같이 하셨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이는 친목계원들은 사교춤을 배웠다. 배우는 것은 회원들의 집에서였으나 워싱턴회관이 실습 장소가 되었다. 그런데 친목계원들에게 경제적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남자들은 그저 맥주 한 병, 여자들은 소다 한 잔 정도 시켜 놓고 2-3 시간 동안 춤을 추었다. 그런데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밴드의 바로 앞 가장 좋은 위치였다. 매상도 별로 올려 주지 않으면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사실 주인에게 고깝게 보였을텐데도 그 주인은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동포들의 주머니 사정을 잘 이해했기 때문이다. 참 고마웠던 사람이다.
한 번은 친구 두 명과 이 곳을 찾았다. 대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당시에 우리 셋은 모두 여자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방학 때 집에 와서도 만날 상대가 서로 밖에 없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몇 마디를 나누다가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예쁜 젊은 여자가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당연히 우리 셋의 관심을 끌었다. 누가 먼저 그 여자에게 말을 거느냐에 대한 내기가 벌어졌다. 내가 먼저 용기있게 손을 들었다. 그 여자에게 다가 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학생 같았다. 그래서 허락도 없이 앞에 앉으면서 학생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렇단다. 몇 학년이냐 물었더니 고등학교 11학년이란다. 별안간 할 말이 궁해졌다.
그래서 고등학생이 이런데 와도 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부모님과 같이 왔단다. 흠칫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밴드 앞에서 춤을 추고 계시는 중년 어른들 가운데 한 부부가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내 쪽을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어떻게든지 그 학생과 대화를 잘 마무리 해야 했다. 겨우 생각해 낸 게 대학 입학 준비에 대한 요청하지도 않은 조언 몇 마디였다 그리고 공부 잘 하라는 당부를 하고 부리나케 친구들 자리로 돌아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친구들이 포복절도를 했다.
이제는 40년이 지났지만 동포사회의 정겨웠던 대화와 모습이 테이블마다 담겨 있었던 ‘워싱턴회관’이었다. 그 곳에서의 그런 대화와 모습을 지금은 히스패닉 커뮤니티가 이어가고 있다. 히스패닉들은 현재 미국 내에서 이민자로서 여러가지 면에서 가장 열악한 삶을 살아 가고 있는 그룹이다. 그들에게 연민이 간다. 모두 힘들어도 잘 버텨 주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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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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