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스팸 전화 또는 로보콜(자동발신 전화)이 부쩍 늘었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비슷한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시도 때도 없이 오기 때문에 잠을 설친 적도 여러 번이다. 이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스마트폰의 콜 블록 기능을 사용하는데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번호만 바뀌어서 계속 걸려온다. 기자가 최근 3개월간 블록 한 전화번호만 100개가 훌쩍 넘으니 말이다. 언제부터 새 전화번호를 확보하기가 이렇게 쉬워졌단 말인가.
어떤 전화는 실제 사람이 전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자동녹화 메시지가 나오고, 가장 불안한 전화는 받으면 아무 소리 없이 뚝 끊어지는 것이다. 절대 다수는 미국 내 전화지만 일부는 자메이카와 캐나다, 심지어 나이지리아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참고로 나이지리아의 신분도용 범죄단은 국제적으로 악명이 높다. 나이지리아에서 전화나 편지, 이메일을 받으면 특히 조심해야 한다.
한 지인은 이같은 스팸 전화나 로보콜이 전화 받는 사람의 목소리를 불법 녹음해 신분도용 범죄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모르는 번호를 받을 때는 목소리를 변조하거나 브로큰 잉글리시로 받는다고 한다. 예를 들면 ‘헬로우’가 아닌 목소리를 변조한 브로큰 잉글리시로 ‘알로우’라고 받는 식이다. 또 다른 지인은 모르는 전화는 아예 받지 않는다고 한다. 화가 난다고 리턴 콜을 했다간 요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정말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요즘 버라이즌이나 AT&T, 티모바일 등 이동통신사들은 스팸 전화나 로보콜 차단을 위한 콜 블록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지만 아직은 이들 전화를 완전히 블록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최근 미국서 오고 간 통화의 50%가 스팸 전화나 로보콜로 추정되며 이같은 비율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며칠 전에는 뉴욕에서 전화가 와서 내가 120만달러 로토에 당첨됐다며 나의 은행 계좌번호와 소셜번호를 확인하겠다고 해서 호통을 쳤더니 그냥 끊어버렸다. 내 소셜번호에 문제가 있어 사용중단 조치가 내려졌다며 연방 사회보장국(SSA)을 사칭한 전화도 여러 통 받았다.
여기까지는 전화를 이용한 신분도용 범죄 시도이고 우편이나 인터넷을 통한 신분도용 범죄도 다양하다. 여기에는 은행 웹사이트를 위조해 소비자가 접속하게 한 후 계좌에 있는 돈을 모두 갈취하는 것부터 시작, 거액의 당첨금을 받았다며 ‘수수료’ 명목으로 수십, 수백 달러를 요구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이런 우편에 한 번이라도 응답을 하고 나면 어떻게 알았는지 매주 수십 개의 편지가 쏟아진다. 이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는 불안한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이것뿐인가. 기자의 은행 계좌에서 수십달러가 불법 인출된 경우도 두 번이나 있었다. 결국 은행에 신고해 불법 인출된 돈을 환불받고 은행 계좌와 데빗 카드를 새로 발급받았다.
사실 이같은 사실을 공개하는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고 영어도 불편 없이 구사하고, 무엇보다 명색이 ‘기자’인데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분도용은 신분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누구도 신분도용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방 재무부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6년 16세 이상 미국 주민 10명 중 1명이 신분도용 범죄의 피해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미국 내에서만 무려 2,600만명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그래서 연방정부는 신분도용 방지를 위한 웹사이트(www.usa.gov/identity-theft)까지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변화무쌍한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 생활은 편리하고 윤택해졌지만 우리 돈을 노리는 신분도용 범죄는 날로 극성을 부리고 있다. 정말로 ‘눈뜨고 돈 빼가는’ 세상이다.
신분도용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마술 지팡이’는 없다. 귀찮고 번거롭겠지만 수시로 금융 계좌를 모니터하고 패스워드를 자주 바꾸고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불행하게도 눈부신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신분도용 범죄 또한 계속 진화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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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동 부국장·경제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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