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이전까지 음식을 오래 두고 먹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소금에 절이는 것이었다. 모든 음식은 시간이 지나면 상하지만 소금은 부패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젓갈류와 김치 등은 이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얼음을 이용해 냉동 보관하는 방법도 있지만 최근까지 얼음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또 수시로 갈아줘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의 음식문화에 혁명을 가져 온 것은 프리온 개스(CFC)를 이용한 냉장고의 등장이다. 제2차 대전 때 소방용으로 사용되던 CFC를 이용한 냉장고의 등장은 서민들도 고기와 야채를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CFC는 냉장고뿐만 아니라 헤어스프레이 등 분무기 원료로 사용되면서 일상의 필수품으로 자리잡는 듯했다.
그러나 70년대 들어 CFC의 부작용에 관한 각종 연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UC 어바인의 프랭크 로울랜드와 마리오 몰리노 보고서다. 이들은 대기에 뿌려진 CFC가 성층권에 진입할 경우 염소를 배출하며 이것이 지구를 감싸고 있는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오존층은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를 자외선으로부터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사라질 경우 모든 인간은 조금만 햇볕에 노출되더라도 화상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수 있고 피부암 발생율도 급속히 증가하게 된다. 다른 동식물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타격을 입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들 보고서가 나오자 대부분 비즈니스와 학계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CFC로 돈을 버는 비즈니스의 규모가 어마어마한데다 이들이 후원하는 학술단체와 회의도 많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계와 업계는 이들의 주장을 근거 없는 소설로 일축했고 이들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소위 왕따 신세가 됐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이들이 미국경제를 파괴하기 위해 소련의 KGB가 심어놓은 간첩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남극의 오존층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관측을 통해 확인되고 CFC가 오존을 파괴한다는 인과관계가 입증되면서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CFC 퇴출에 앞장선 정치인은 뜻밖에 미국과 유럽에서 자유시장 경제와 정부의 시장불간섭을 신봉한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대처 총리였다.
두 사람 다 처음에는 정부의 기업규제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점점 더 쌓여가는 증거에 눈감을 수 없었다. 이들이 생각을 바꾼 것은 두 사람의 취향과 성장배경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농장 일과 승마 등 야외활동을 좋아했던 레이건은 자외선의 위험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또 옥스포드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대처는 CFC가 오존을 해친다는 화학자들의 주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정치인이었다.
1985년 CFC 주요 생산 20개국은 오스트리아 비인에서 그 규제에 관한 원칙을 정한 ‘비인 협약’에 서명했고 이것이 바탕이 돼 1987년에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CFC 퇴출에 관한 ‘몬트리올 협약(Montreal Protocol)’이 체결됐다.
이 협약 덕분에 CFC 배출이 사라지면서 오존층은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2060년께면 지구의 오존층은 1980년대 이전 수준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로울랜드와 몰리노 등은 1995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이 협정이 실효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미국과 유럽 지도자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개발도상국들의 CFC 교체 비용을 선진국이 부담하기로 한 현명한 결정 덕이다. 특히 대처는 유엔 연설을 통해 오존층 파괴가 지구인 모두의 문제임을 역설하며 부유한 미국과 유럽이 그 비용을 대부분 떠안아야 한다고 주장해 큰 호응을 얻었다.
몬트리올 협약에는 지금 197개 국가와 국가연합이 가입돼 있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기후협약이란 평을 받고 있다. 올해는 이 협약이 발효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몬트리올 협약은 어려워 보이는 문제도 인간이 만든 문제는 인간이 힘을 합치면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은 해결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지구온난화도 의지만 있다면 풀지 못할 리 없다.
온갖 테러와 환경파괴 등 나쁜 뉴스가 쏟아지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에게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몬트리올 협약은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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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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