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부드러움이다. 부드러운 사람은 격하지 않는다. 급하지 않다. 여유로움이 있다. 직선 보다는 곡선에 가깝다. 여성의 부드러움이 남성을 이긴다. 세상을 지배하는 건 대부분 남성이다. 하지만 그런 남성을 지배하는 건 여성이 아닐까. 목소리 낮추어 부드럽게 말하는 사람이 싸움에서는 이긴다.
노자의 도덕경 36장. ‘미명 은오’편에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이란 말이 있다. 뜻을 풀면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이다. 강한 건 부러진다. 부드러운 건 부러지지 않는다. 굽을 뿐이다. 굽은 건 다시 펴면 된다. 부드러운 얼굴, 미소 짓는 얼굴이 분노로 이글어진 얼굴을 펴주는 촉매역할을 한다.
그럼 부드러운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약간은 바보처럼 살아가는 것도 부드러움에 속하지 않을까. 매사 이것저것 따지는 사람. 상대방의 약점을 콕콕 찌르는 사람. 양보가 전혀 없는 사람. 너무 똑똑하여 가까이 하기가 어려운 사람. 자신에 넘쳐 주위사람들을 무시하는 사람. 절대 손해 안 보려는 사람.
이런 사람들. 실력도 있다. 강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성공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한 번 무너질 때 도움을 주는 이는 얼마나 될까. 너무 강하여 부러지는 거다. 바보처럼 부드럽게 사는 사람. 도움을 베푸나 챙길 줄은 모른다. 이런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서로 도와주려 한다. 부드러움이 자신을 보호하는 거다.
부드러움은 겸손과도 같다. 겸손한 사람. 늘 아래에 처하려 한다. 고등학교 다닐 때 한 교회에서의 일이다. 한 신사가 교회 들어오는 신발장에 서서 흐트러진 신발을 정리하곤 했다. 거의 한 주도 빠짐없이. 그 분의 얼굴은 늘 미소로 교회로 들어가는 사람을 맞이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모 신학교의 학장이었다.
노자의 도덕경 8장. ‘약수 이성’편에 “상선약수 수선 이만물이부쟁(上善若水 水善 利萬物而不爭)‘이란 말이 나온다. 내용인즉, 아주 높은 선은 물과 같다. 물은 선하여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서로 다투지 않는다 란 뜻이다. 노자가 말한 처세술 중 가장 부드러움을 강조한 부분이다. 물길처럼 부드럽게 살아가라는 처세술이다.
신학교의 학장이라면 권위도 있었을 텐데. 그는 물처럼 낮은 곳에 처하여 교회 봉사를 했다. 물의 속성은 낮은 곳에 처할 뿐만 아니다. 절대 다투질 않는다. 흐르는 물은 앞을 막는 방해물이 나타나면 다투지 않고 피하여 흐른다. 또 물은 그릇에 담는 대로 모양을 바꾼다. 네모난 그릇에선 네모로, 원형의 그릇에선 원형으로.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바다가 된다. 작은 빗방울이 모여 강을 이룬다. 낮은 곳을 향하는 물의 속성이 강과 바다를 이루는 거다. 물은 추우면 얼음이 된다. 더우면 수증기가 되어 비로 내린다. 물은 인간 생명의 근원이 되지만 인간에게 요구하는 게 없다. 인간만이 아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 물에 있지만 물은 말이 없다.
노자의 도덕경 11장. ‘허중 무용(虛中 無用)’편. 무용지용(無用之用)의 진실을 알고 부드럽게 살아가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없음이 있음을 받쳐주고 있는 세상임을 알아 있는 듯 없는 듯, 부드럽게 살아가란 거다. 가치가 있음은 무가치에 의해 성립된다. 밥이 담겨지는 그릇의 안은 빈 공간. 빈공간이 있기에 그릇은 가치가 있다.
우리가 사는 집도 마찬가지. 집 안의 비워있음, 즉 공간이 가치를 지닌다. 공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공간은 없음, 즉 무와 같다. 그러나 유용하다. 이렇듯 무와 같은 가치는 있음의 가치를 지원해 준다. 그러므로 없음이 있음이요 있음이 없음이다. 생도 그렇다. 무와 같은 죽음이 있기에 살아있음의 가치는 극대화된다.
갈대의 부드러움은 폭풍도 이기지 못한다. 부드러운 여성이 남자와 세계를 지배한다. 목소리 낮추어 바보처럼 겸손히 살아가는 것이 부드러움이다. 물처럼 낮은 곳을 찾아 사는 것도 부드러움이다. 없는 듯 있는 듯 살아가는 것도 부드러움 아닐까.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이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음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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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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