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사흘 뉴욕타임스 1면 톱 사진들을 들여다본다. 부활절 아침 동시다발 테러로 충격에 빠진 스리랑카의 모습들이다.
23일자 - 줄줄이 놓인 세 개의 관 옆에서 한 남성이 오열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가족 3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 우산을 받쳐 든 친척들이 비통한 표정으로 서있다.
24일자 - 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맨 소년들이 꽃다발을 들고 장지에 둘러서있다. 부활절 미사에 참석했다가 목숨을 잃은 7살 소년의 친구들이다.
25일자 - 아이를 무릎에 앉힌 여성들, 아이를 안고 서있는 남성들이 버스 안을 가득 메웠다. 불안한 표정들. 이슬람 폭탄테러에 대한 기독교도들의 보복이 두려워 피난길에 오른 무슬림들이다.
스리랑카는 인구 2,100여만의 작은 섬나라이다. 인도 남쪽 인도양에 떠있는 모양이 눈물방울 같다고 해서 ‘인도의 눈물’로 불린다. 이 나라가 사상 최악의 테러로 눈물바다가 되었다.
이번 사건은 먼 나라에서 일어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객관적으로 우리와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물리적 세계와는 별도로 가상의 사이버 세계가 엄존하는 시대, 옆집 이웃보다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와 더 친밀한 시대에 ‘먼 나라’는 없다. 소셜미디어가 멀고 가까움, 친구와 적을 가르는 시대이다. 스리랑카의 일은 남의 일이 아니다.
스리랑카는 여러 이유로 이슬람 테러가 일어날만한 곳이 아니었다. 우선 이슬람국가(IS)가 위세를 떨치는 중동으로부터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몇몇 과격그룹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처럼 전국 3개 도시에서 3개 교회와 3개 호텔들을 일시에 공격할 만한 힘과 조직을 갖추지 못했다. IS가 배후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배경이다.
스리랑카에서 이슬람과 기독교는 적대관계도 아니었다. 최대 종족인 싱할리족(70%, 불교)과 타밀 족(11%, 힌두교)의 싸움으로 오랜 내전을 겪었지만 소수 중의 소수인 이슬람(9.7%)과 기독교(7.6%) 간에는 갈등이 없었다. 이슬람 테러범들이 목숨 걸고 기독교도들을 공격할 만한 해묵은 원한이 없다. 지난달 뉴질랜드에서 백인우월주의 청년이 무슬림을 공격한 데 대한 보복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정도이다.
9명의 자살테러범들 중 신원이 확인된 8명을 보면 고학력의 중상층 가정 출신들이다. 스리랑카의 대표적 부호의 아들들도 둘이 자살테러에 가담했다. 객관적으로 안락한 환경의 청년들, 기독교를 미워할 이유가 없는 청년들이 세상을 버릴 만큼 강한 증오의 사명감에 불타있었다. 자살병기로 훈련/세뇌되었다는 말이 된다.
인종이, 종교가 … 다르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들을 증오하면서 교회에서, 학교에서, 사원에서 자폭하듯 테러를 저지르는 분노의 화신들을 근년 우리는 너무 자주 보아왔다. 분열과 갈등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지만 근년 그 정도가 눈에 띄게 심해졌다.
상존하는 갈등을 부추기며 증오를 확산시키는 어떤 ‘문명의 이기’와 상관이 있다. 바로 소셜미디어이다. 테러 직후 스리랑카 정부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잠정폐쇄시킨 배경이다. 가짜 뉴스들이 봇물처럼 터지면서 테러가 이어질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이다.
인터넷 혹은 소셜미디어는 사회를 보다 개방적이고 민주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열린 공간에서 서로 다른 의견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으니 상호이해를 도움으로써 관용과 포용의 사회를 조성할 것이라는 기대였다.
결과는 현재로서 정반대이다. 그곳은 열린 공간이 아니라 극도로 폐쇄된 공간이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편향된 시각을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불통의 골을 깊게 하는 것이 오늘 이 사회의 모습이다. 트럼프를 둘러싸고 원수처럼 대립하는 미국의 진보와 보수, 촛불과 태극기를 둘러싸고 ‘한 나라 두 국민’이 되어버린 한국 … 세상은 극한으로 갈라졌다.
이슬람 테러도 근본은 같은 맥락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극도로 편향된 정보를 주입받으며 세뇌된 자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날뛰는 것이다.
인터넷 시대에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필터 버블(Filter Bubble)’의 노예가 되고 만다. 필터 버블이란 사용자의 검색이나 클릭 전력에 따라 인터넷 알고리즘이 알아서 정보를 선별해 줌으로써 부지불식간에 이념적 비눗방울 속에 갇히는 현상. 트럼프 지지자들에게는 트럼프 반대 정보가 사전차단 되는 식이다.
거기에 더해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드는 우리의 확증편향이 작용하면 같은 대상/ 사건을 두고 의견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정보 편식의 시대이다. 편식이 분열로, 증오로 이어진다. 링컨 대통령의 지혜를 가슴에 담았으면 한다. “저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아. 저 사람을 좀 더 잘 알아야 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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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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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요즘 백인 보수들 소시얼미디어를 통해 유색인종에 대한 증오키우는거 맞읍니다. 또한 한인 보수들도 비정상적인 출처도 모르는 유트부방송으로 점점 더 진보들에 대한 반감을 키우죠. 진보들은 평화적으로 변화를 추구하는데 왜 보수들은 이렇게 무력, 암살로 자기들 목적을 이루려할까요? 그들 대부분이 총기소지하고있어서 그런가봅니다.
사람들은 자기생각이 자기를 더 많이 해롭게 만든다는 걸 어리석고 무지하게도 모르는것 같습니다, 저 사람이 나를 해할거다, 이 음식은 좋을 거다, 난 술 담배 체질이니 괞찬을거다, 따져보고 재보고 알아보고 격어보고 결정해야 되것만, 지금 미국에선 정부를 무조건 나쁘다 좋다 극에서극 미국이 어디로 갈지 정말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