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미간의 협상이 언제쯤 다시 살아날지 불투명하다. 트럼프의 제재완화 거절로 충격에 빠진 김정은, 최근 경제행보를 이어 가면서도, 북미협상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다만 얼마전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김정은 위원장이 협상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핵미사일 실험을 재개 여부에 대한 중대한 결심을 할 것이라고 예고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반응을 보려는 의도로 보인다. 아직 까지 북한 지도부가 이에 대한 후속 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이 수차례 약속한 비핵화 실현을 위한 협상을 조속히 재개하고 제 3차 정상회담도 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노이 회담 결렬의 원인이었던 제재완화는 비핵화 이전에는 절대로 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하고 정체된 대화의 탈출구를 모색해 보려고 한다. 방법은 있다. 어떻게 하면, 미국이 원하는 조기 일괄 타결안과 북한이 고수하는 상응 조치를 전제로 하는 단계적 비핵화를 접목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워싱턴의 일부 회의론자들은 이번 정상회담이 한미간의 이견만 노출하고 동맹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지만, 이러한 기우는 한미관계의 역사와 국제정치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 물론 어려운 점들이 있다. 한미정상은 이번 회담을 통해서 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으며, 비핵화의 방법은 외교협상을 통하고, 비핵화 진전을 위한 모든 단계에서 양국이 긴밀한 협의를 한다는 일반적 원칙의 합의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현실적으로 필수적인, 부분적 또는 단계적 제재해제의 필요성을 트럼프가 받아들일 것이냐다. 김정은도 이 점을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이다. 한국의 이도훈 비핵화 특사가 최근에 말한 것처럼, “비핵화와 압력만으로 북한이 어느 날 갑자기 모든 핵무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환상”일 수 있다.
한국정부는 현단계에서 가능한 “조기수확”, 즉 모든 것을 한번에 해결하기(an all in one, big deal) 보다 충분히 수용가능한 타협(a good-enough deal) 을 제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한국은 미국이 현단계에서 제재 완화가 어려우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기타 남북 경제협력에 대한 제재면제를 허용하기를 바라고 있다.
양측이 하노이 회담 결렬을 통해서, 서로가 원하는 바를 확인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때까지 트럼프와 김정은은 완전히 상대방을 오판한 것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물론 실무자들에게 있다. 평양에서는 실무자들에 대한 책임 추궁설이 나돌고 있고, 워싱턴에서는 보좌관들(특히 볼턴 안보보좌관) 이 트럼프의 눈치를 보면서, 언행을 조심하고 있다. 트럼프는 여전히 김정은과 관계가 좋다고 말하고 다닌다.
워싱턴에는 북한을 불신하는 회의론자들이 많다. 북한이 저지른 역사의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도덕의 잣대로 국제분쟁을 해결할 수 없다면, 북한이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실천 가능한 정책을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북에서 김정은은 절대 권력자이지만, 그 자신도 체제의 제약을 받는다. 선대 김일성과 김정일이 이룩한 체제 보호와 생존을 위한 핵 억제력을 함부로 포기하기는 어렵다. 형식적이나마 거쳐야 할 절차도 많이 있다. 김정은의 비핵화 약속은, 그것이 진정이라면, 그가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보다 폐기하는 것이 그와 북한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번 문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중, 북한에 대해 회의적인, 미국 의회지도자들과 고작 수 십 명에 지나지 않지만, 그들 세칭 전문가들에게 그의 대북정책 배경과 북한에 대한 그의 인식을 설명할 기회가 없는 것은 유감이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 북한의 비핵화는 결국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단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이와 관련 필자는 지난번 기고문에서, 북미가 상반되게 주장하는 방안을 통합하는 5개년 비핵화 계획을 제안 한 바 있다. 즉 비핵화 로드맵과 시한을 포함하는 일괄타결 구도를 먼저 합의 하되, 그 합의는 단계적으로 5개년에 걸쳐 점진적인 제재해제의 상응조치와 함께 실천해 나가자는 것이었다. 이제 북핵문제는 실패한 방식들과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창의적 방안을 강구할 때가 온 것 같다. 우리는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실상을 많이 접하고 있다. 무고하게 북한에서 살고 있는 2천 5 백만 명이 있다. 그들을 위해서도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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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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