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젠테이션 날엔 꼭 안경 쓰고 출근”, 여성들이 메이크업으로 단점 커버하듯
▶ “고생한 나를 다독이는 작은 사치”, 자동차·시계보단 부담감 적어‘선뜻’
남동현 롯데백화점 남성패션 수석 바이어는 라식 수술을 했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안경을 쓴다. 미세먼지가 극심할 때나 외부 활동이 많을 때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시력보호로 쓰는 가하면 발표가 많은 업무 특성상 지적인 이미지 연출을 위해 안경을 활용하는 개성 표출 수단으로 택한다. 그에게 안경은 여성의 신발이나 가방, 반지, 귀걸이와 같은 액세서리로, 소장 중인 안경의 종류는 20가지에 달한다.
요즘 주변에서 안경알 없는 안경테를 쓴 남자들을 종종 발견한다. 처음에는 이게 웬 우스꽝스러운 모습인가 했지만 연예인을 비롯해 멋 좀 낸다는 친구들이 알 없는 안경테를 쓰는 모습에 익숙해졌다. 안경이 단순히 시력이 나빠서 쓰는 생존템의 성격을 탈피해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안경이 영어로 ‘아이웨어(Eyewear)’인 이유도 같은 맥락인 듯 하다. 얼마 전에 만난 한 패션 기업의 상무는 최근 바뀐 안경을 알아보자 크게 반가워했다. 그는 “평소 접근하기 힘든 고가의 안경이지만 나한테 이 정도 하나쯤은 큰 맘 먹고 선물하고 싶었다”고 귀띔했다.
남자에게 안경은 무엇일까. 고생한 나를 다독이는 선물 하나쯤 선사하고 싶은 날, 지루한 일상에 이미지를 새롭게 바꿔 보고 싶은 날, 고가의 자동차나 시계는 못 사더라도 나를 위해 투자하고 싶은 날에 선택하는 남자의 작은 사치다. 남자의 품격을 재단하는 척도로 떠오른 안경은 의류와 슈즈 다음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손쉬운 액세서리로 통한다. 남성들 사치의 최상위 단계인 자동차와 시계에는 천 만원에서 억 단위가 소요되지만 안경 만큼은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투자해 극대화된 효과를 볼 수 있는 매력이 있어서다.
여성들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요소나 도구가 참 많다. 그게 메이크업이 되기도 하고 화려한 옷, 가방, 귀걸이, 반지, 슈즈, 헤어액세서리 등 다양하다. 남자는 안경, 시계, 벨트, 구두로 요약된다. 이 가운데 안경은 매일 마주치는 게 얼굴인 만큼 즉각적으로 변화를 포착할 수 있는 데다 얼굴의 일부라는 점에서 가장 적극적인 표현 수단인 셈이다.
안경은 또 남성에게는 이미지를 변신시켜주며 얼굴의 하이라이트를 주는 그루밍 메이크업이기도 하다. 남동현 바이어는 “서양인에 비해 이목구비가 작은 동양 남성 특히 한국 남성들의 얼굴을 효과적으로 장식할 수 있는 메이크업 개념”이라며 “서양인 보다 눈코입이 작은 동양 여성들은 아이섀도우, 볼터치, 쉐이딩 등 화장을 통해 얼굴 안에서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이미지 변신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안경은 남자에게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얼굴을 선사한다. 비즈니스에 있어 사회 나이가 어려 동안인 것이 단점이 될 때는 안경을 통해 포멀함과 성숙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가 하면 노안인 얼굴에는 주름을 가려 젊어 보이게 하는 효과를 만들어 낸다. 플라스틱 뿔테 안경 하나에 고리타분하던 사람이 잘 노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일 년에 책 1권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클래식한 금테 안경으로 지적여 보이기도 한다. 착한 사람이 사나워 보이기도 까칠한 사람이 유순해 보이기도 하는 마법을 펼친다. 하우스 안경 브랜드 스페쿨룸의 채규복 대표는 “연예인들이 촬영하기 전 의사 혹은 검사 역할을 맡았는데 그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한 안경을 추천해달라고 온다”며 “예컨대 탤런트 장근석이 드라마 ‘스위치’에서 검사와 사기꾼 역할을 할 때 스퀘어 형태의 메탈 안경(검사)과 뿔테(사기꾼)를 번갈아 가며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고 귀띔했다. 이렇게 안경은 위장술로도 쓰인다.
안경이 남성들 사이에 패션 아이템으로 대두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4~5년 전까지는 미니멀리즘이 대세로 간결하고 심플한 테의 ‘프라다’ 안경이나 선글라스가 유행했다. 구찌가 화려한 변신을 하고 올 여름 하와이안 셔츠가 유행을 예고하듯 착장 문화가 변화하면서 안경테도 다양성이 생겼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명품관에 입점한 해외 수입 안경 편집숍 ‘살롱 드 파피루스’에 따르면 올해 1~2월 안경 매출이 지난해 보다 3% 포인트 증가한 18%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심지어 안경 수요가 늘면서 롯데백화점은 얼마 전 안경 PB 브랜드를 출시해 안경에 열광하는 남성을 겨냥했다.
롯데, 신세계, 현대, 갤러리아 등 국내 4개 백화점에서 인기 있는 남성 안경 브랜드는 린드버그, 크롬하츠, 가네코, 마린필드, 마이키타, 올리버피플스 등으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의 안경으로 유명세를 탄 린드버그는 가벼운 티타늄 테와 클래식한 스타일로 어떤 스타일에나 잘 어울리는 범용성을 띤 것이 특징이다. 엔트리 모델이 70만원선부터 250만원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요즘 젊은 층을 넘어 50대 그루밍족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는 200만원 대 크롬하츠 안경은 30대 남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 중 하나. 로고가 없지만 테 곳곳에 실버의 인그레이브(engrave) 문양이 새겨져 아는 사람끼리 ‘알아봐 주는’ 안경으로 통한다. 인기모델인 ‘BUBBA-A(부바-에이)’ 블랙컬러는 구하기 힘들 정도다. 독일 마이키타는 티타늄 소재의 안경 태로 경량성과 나사가 없는 매끈한 곡선형 디자인이 주류로 60만~80만원대. 다각형 안구 프레임이 특징인 안네발렌틴은 여성스러운 느낌이지만 최근 남성들 사이에 인기템이다. 마린필드의 경우 현미경용 슬라이드 글라스로 유명한 데 스위스 산악지대 소규모 공장에서 100% 수작업으로 정밀하게 생산한다. 매튜는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모든 과정을 벨기에에서 작업하며 클래식한 메탈이 고급진 편이다.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스위스 브랜드 고티는 60만원대로, 여타 럭셔리 수입 브랜드에 비해 가격이 합리적이면서도 미니멀한 세련됨이 럭셔리함을 자아낸다.
이를 뛰어넘는 높은 가격대의 하이엔드 안경테도 그루밍족들 사이에 ‘우리만 아는’ 고급 정보로 통한다. 어느 브랜드인지 분간할 수 없지만 ‘뭔가 다르다’는 느낌으로 완벽한 차별화를 꾀할 수 있어서다. 거북이 등껍질 안경으로 알려진 ‘쿠조(1,000만~3,000만원)’는 최고급 거북이 등껍질의 색깔이 부분 부분마다 다른 만큼 하나의 안경테에서 여러 색상이 발견된다. 거북이 등껍질을 떼어내 불에 굽거나 뜨거운 물에 부어 갑판을 얇게 쪼갠 다음 이를 원료로 100% 수공작업을 거쳐 만들어지는데 매년 생산량이 제한적인 만큼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유일무이 안경테로 알려진 제품이다. 40~50대 남성들 위주로 각 백화점에서 1년에 5개 미만으로 팔린다고 한다. 금, 화이트골드, 다이아몬드 등으로 장식된 1,000만~3,000만원대 로토스 경우 갤러리아백화점에서 1년에 10개 정도가 나간다.
이 같은 하이엔드 안경테는 바이어들 사이에서는 액세서리를 넘어 귀금속 개념의 ‘주얼리 안경테’로 불리기도 한다. 쿠조나 로토스 처럼 수 천 만원을 호가해 소장용으로 구매해 심지어 자녀에게 대물림해주는 남성 고객군도 있다. 안경을 시계나 그림처럼 소장하고 투자하는 개념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명품 가방이나 명품 가전처럼 소장 가치 있는 안경을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안경테를 찾는 고객도 있다”고 귀띔했다.
안경 선택은 취향에 따라 선택하지만 얼굴형을 조금 고려하면 ‘안경 매직’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둥근형은 가급적 얼굴과 같은 이미지를 줄 수 있어 원형은 피하는 게 좋다. 안경 끝이 갸름해지는 디자인을 택하면 얼굴을 좀 더 날씬하게 보이는 효과를 낸다. 사각형에서 렌즈 아래 부분이 각이 지거나 살짝 라운드 처리된 제품도 동글동글한 이미지에서 지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긴 얼굴은 안경을 쓰는 것 자체만으로 단점을 효과적으로 커버하는 데 좋다. 어느 얼굴형 보다 안경의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 사각형은 강한 인상을 분산시킬 수 있는 것으로 타원형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동그란 원형의 경우 오히려 각진 얼굴을 도드라지게 한다. 이소영 롯데백화점 해외명품 바이어는 “정장 차림에는 메탈, 무테 안경을 착용하면 깔끔한 비즈니스 룩이 완성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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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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