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 농장 노동자들의 참상을 그린 대표적 소설이다. 오클라호마의 가난한 소작농이던 조우드 일가는 ‘더스트 보울’로 알려진 극심한 가뭄과 불황, 빈곤을 견디지 못하고 ‘꿈의 땅’ 캘리포니아로의 대장정에 오르지만 막상 도착한 곳은 떠난 곳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은 착취당하고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땅이었다.
이 작품은 “20세기 미국 문학작품 중 가장 많이 토론된 작품”이란 평을 들을 정도로 화제를 모았으며 이 책이 나온 1939년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평가됐다. 스타인벡은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받았고 1962년 노벨 문학상 수상 사유의 하나가 됐다.
당시 가주 농장의 백인 노동자보다 더 심하게 착취당하고 차별 당한 그룹이 있다면 그것은 라티노 농장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의 고통스런 삶을 개선하는데 누구보다 앞장선 인물이 세자르 차베스다. 1927년 애리조나 유마 인근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평생을 노동자들의 권익옹호를 위해 바쳤다.
그로 하여금 세상의 불의에 눈뜨게 한 사건은 그가 어렸을 때 일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80에이커를 개간해주면 그 중 40에이커를 주겠다는 이웃 백인의 말을 듣고 피땀 흘려 이를 해냈지만 이 백인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 후 돈을 빌려 이 땅을 사라는 변호사 말만 듣고 그렇게 했다 돈을 못 갚게 되자 땅을 빼앗긴다.
그곳에서 살 수 없게 된 차베스 일가는 그가 11살 때 가주로 이주하며 1939년부터 샌호세에 있는 ‘살 시 푸에데스’(Sal Si Puedes)라는 라티노 거주지역에 살게 된다. 이곳 이름은 스페인말로 ‘나갈 수 있으면 나가라’는 뜻으로 그가 나중에 농장 노동운동 지도자가 돼 내세운 ‘시, 푸에데’(Si, Puede!, 영어로는 Yes, We Can!)라는 구호는 여기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나중에 버락 오바마 대선 캠페인의 구호가 된다.
차베스는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라는 부모들의 생각에 따라 학교에 가지만 여기서 그가 경험한 것은 차별과 모욕뿐이었다. 영어밖에 할 줄 모르는 백인 교사들은 그가 스페인어를 쓴다는 이유로 매를 때렸고 대부분 백인이었던 동급생들은 그의 인종을 조롱하기 일쑤였다. 결국 그는 중학교를 끝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농장에 취직하게 된다. 그는 학교는 그만 두었지만 책읽기를 좋아했으며 독학으로 철학, 문학, 역사 등 광범한 분야에 걸쳐 넓은 지식을 쌓는다. 그는 “모든 교육의 목적은 다른 사람에 대한 봉사”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농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중노동과 저임, 차별과 착취였다. 그는 평화적 방법으로 농장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로 결심하고 1962년 ‘전국 농장노동자 협회’를 창립했다. 이는 나중에 ‘농장노동자 연합(United Farm Workers)’으로 발전한다. 그는 파업과 보이콧, 단식을 무기로 농장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을 따내기 위해 노력했다. 1975년 브라운 가주지사가 이를 인정한 가주 농업노동관계법에 서명한 것은 그의 공이다.
그는 주기적으로 단식을 했는데 그중에서도 1988년 36일간 했던 단식은 유명하다. 그의 뒤를 이어 제시 잭슨 목사, 배우 마틴 쉰, 대니 글로버, 우피 골드버그, 로버트 케네디의 딸 케리 케네디, 가수 칼리 사이먼 등이 연쇄단식을 했다. 그는 “단식은 우선 내 몸과 마음, 영혼을 정화하는 일이며… 농장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도덕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참회”라고 말한 바 있다.
1993년 그가 사망하자 5만 명의 추모객이 몰려왔다. 미 역사상 노동운동 지도자 장례식에 이처럼 많은 사람이 온 것은 처음이다. 그는 평생 연 5,000달러 이상 번 적이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에는 클린턴 대통령이 그에게 민간인 최고 영예인 ‘자유 메달(Medal of Freedom)’을 수여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그가 태어난 3월 31일을 ‘연방 기념일’로 지정했다. 가주에서 그의 생일은 ‘주 공휴일’이며 많은 공립학교는 이를 기념해 하루를 쉰다. 지난 31일은 그가 태어난 지 92년이 되는 날이었다. 한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평생 ‘대지의 가난한 자들’과 운명을 같이 한 그의 삶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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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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