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도업여’, ‘시만천래’ 할 일은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때가 차 이르러 하늘나라가 가까워 왔으니... 바로 얼마 전 ‘민주화 운동사 비망록’을 부득이한 사정으로 도중에 중단하고 문득 떠오른 소회를 표현해 본 사자성어다.
잔잔한 호수 위를 유유히 부유하는 백조는 평생 물갈퀴만 저을 뿐 노래를 즐기지 않는다. 백조의 노래는 죽기 전 딱 한번 뿐이다. 그런데 그 한 번의 노래를 들어 본 사람이면 그 아름다운 소리의 황홀경에 빠져들고 만다. 시인 테니슨도 스완송(Swan Song)을 통하여 세상을 떠나며 부르는 영혼의 소리라고 극찬했다. 다소 지나쳤나. 나의 비망록 연재 중단이 나이 들어가는 나에겐 마치 백조의 고별송이 멈쳐진 것 같아 못내 아쉽다.
인지상정 인가. 지나온 격정의 나날들을 회고해 본다. 어떻게 살아온 건가. 후회는 없나. 세상을 향해 내가 던지려던 메시지는 결국 무엇이었었나. 미구엘 세르반테스는 작중 인물 돈키호테를 통하여 권력자들의 적폐를 고발하고 그에 아부하는 소인배들의 비굴을 풍자했는데... 혹시 내가 그를 모범삼아 오기라도 했는지 갖가지 상념에 젖어든다. 허황된 자만에 도취된다던가 회한으로 가슴을 친다던가 섣부른 결론을 내리고 싶진 않다.
그러나 연달아 밀려오는 회억들은 규제와 도식과 품격 같은 귀범의 한계 상황에 쉬지 않고 저항하며 매우 열정적으로 뛰어 온 것은 자부심으로 치부하고 싶다. 그런 탓인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카잔차스키의 독백을 읽고 외로움을 위로 받은 적이 있다. “나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 다만 자유인일 뿐이다”라는 카잔차키스의 선언에 지금도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자유인이란 뭔가. 스스로 지니고 있어야 할 그것. 하늘이 준 무한대의 영광이 아닌가. 왜 나 스스로를 어떤 이념이란 틀 속에 처박아 놓고 구속해야 하나. 이념의 세계는 서로를 용서 못하고 화해와 평등에 지극히 인색한 살벌한 영역이다.
하늘이 내린 자유, 평화, 사랑의 세계와는 정반대의 세상이다. 내가 결국 택한 것은 보수(Conservative), 진보(Progressive)라는 틀 속에 속박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마음것 부르짖고 불의를 준엄하게 질타할 수 있는 하늘이 제시한 길, 자유(리버럴, Liberal)의 길을 걸어 왔다고 자신한다. 자유의 길은 중도노선이다. 어느 쪽에도 속박되지 않고 용서, 화해, 평화를 추구하는 하늘의 뜻이라고 믿는다. 우리민족의 숙원인 자주, 평화, 통일도 중도노선 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그러나 늘 머릿속을 짓눌러 오는 것은 우리사회의 화석처럼 굳어버린 이념이란 괴물들의 존재다.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가촉천민 대하 듯 서로가 압도하려고 만드는 그리고 그것을 철칙이라고 믿는 사이비 사상가들이 날뛰는 현실 말이다.
비망록은 일종의 사초다. 그래서 허위 날조 과장을 절대 금기로 삼는다. 중국의 사마천은 한무제에게 궁형(거세형)을 당했어도 기어이 역사를 바로 썼다. 비망록을 연재하며 사실 기록의 정도를 벗어나지 않으며 최대한으로 노력했다. 오히려 나의 실적은 가능한 한 축소해 버렸다.
독재 정권과 과감히 맞서 싸웠을지언정 장기영, 신현확, 남덕우, 태완선, 김정렴 등 빛나는 경제업적에 기여한 주인공들에겐 격려를 보냈을 뿐 비난을 자제해 왔다. 70년부터 85년까지 워싱턴 한인사회는 그야말로 민주화운동의 전성기였다. 그 내용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연재중단 관계로 기술하지 못했음에 양해를 구한다. 워싱턴 역대 한인회장들은 매우 신념 강하고 지조 있는 인물들이 많았다.
나에 대한 남북한의 회유공작과 탄압 그에 따른 갖가지 반드시 기록해 놓아야 할 내용등도 아주 많다. 매우 놀랍고 충격적인 사연들이다. 모두 밝힐 기회가 곧 오리라 믿는다. 광주사태 항의, 백악관 앞 89일간 단독데모와 박정희 대통령 서거 조문 등 할 말이 많이 남았음을 알린다
내 인생의 ‘황금기’, 공부하거나 돈을 벌어야 할 시간을 조국 민주화 투쟁으로 소진하는 동안 위험을 무릅쓰고 은밀하게 격려지원을 아끼지 않은 많은 분들께 지면 제약으로 일일이 공개 감사 못 드린 점이 절절히 아쉬움을 남긴다.
비망록 연재에 협조노력해 준 한국일보에 감사를 전한다. (571)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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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자유광장 회장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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