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아담과 이브만 빼고) 태어나자마자 탯줄이 잘린다. 엄마 뱃속의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온 후 열달 간 피와 살을 거저 공급해준 탯줄이 끊기고 나면 자력으로 억척같이 젖을 빨아야 살아남는다. 성인이 되면 또 한 번 줄이 잘린다. 이번엔 돈줄이다. 그때까지 먹여주고 재워준 에덴동산 같은 부모 집을 떠나 스스로 밥벌이를 해야 산다. 모든 동물의 섭리다.
하지만 소위 ‘밀레니얼’로 불리는 요즘 20~30대들에게는 그 섭리가 예전 같지 않다. 성인이 된 뒤에도 부모 품을 떠날 엄두를 못 내는 ‘캥거루족’과 일단 부모 집을 떠났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되돌아오는 ‘부메랑족’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졸업 후 취직하고 결혼해 가정을 꾸렸으면서도 여전히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애들 같은 성인자녀가 자꾸 늘어나고 있다.
최근 금융회사 컨트리 파이낸셜의 조사보고서를 인용한 뉴욕타임스는 미국인 21~37세 성인 중 과반수(53%)가 21세가 된 이후 부모나 기타 가족들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생활비를 보조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보조금은 구체적으로 아파트 렌트가 40%, 식품 및 개솔린 구입비가 32%, 건강보험료가 32%였고, 핸드폰 요금을 도움 받은 사람도 41%나 됐다.
생활보조비 뿐만이 아니다. 손자손녀를 공짜로 봐달라며 부모에게 맡기는 밀레니얼들이 부지기수다. 한 보고서는 밀레니얼들이 부모로부터 받는 생활보조비와 무료 탁아서비스가 연평균 1만1,011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부모보조가 없으면 생활유지가 안 된다는 밀레니얼 부부가 18%였고, 완전 자립할 만큼 벌지 못해 짜증난다는 부부가 절반을 넘었다.
고액연봉을 받는 IT기업의 밀레니얼 직원들도 뉴욕, LA, 보스턴,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워싱턴DC 등 생활비가 비싼 도시에선 마이홈 마련이 쉽지 않다. 보스턴의 한 부동산 에이전트는 주택을 처음 구입하는 밀레니얼들 중 십중팔구가 8만~10만달러 가량의 다운페이먼트를 부모에게 떠넘긴다며 이는 자신의 20여년 경력에서 처음 보는 기현상이라고 말했다.
부모의 탯줄을 움켜잡는 밀레니얼 세대를 나무랄 수만은 없다. 이들의 소득은 그 전 ‘X세대’ 동년배보다 낮다. 대부분 불황기에 졸업해 취직 못했다. 등록금이 폭등해 중퇴한 사람들은 빚만 지고 학위도 못 땄다. 반면에 주거·의료·탁아 등 기본 생활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2000년 전후 성인이 된 밀레니얼 세대들이 장기공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학자금 빚이 밀레니얼 세대의 목을 가혹하게 조인다. 작년 4분기 현재 대출된 총 학비 융자금은 1조4,600억달러나 됐다. 18~29세 그룹에 대출된 금액만 1조달러였다. 4년제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딸 때까지 든 평균 학자금 빚이 1인당 거의 3만달러였다. 2015~16 학년도 전체 졸업생들 중 10.5%가 5만달러 이상, 0.5%는 10만달러 이상 빚을 졌다.
매월 300~400달러씩 상환하는 학자금 빚에 눌려 자동차를 구입 못한다는 사람이 4명 중 1명 이상이었고, 집 마련을 연기할 수밖에 없다는 사람이 3명 중 1명 이상이었다. 약 38%는 비상금을 전혀 저축하지 못한다고 했고 크레딧카드 빚 상환과 은퇴저축이 어렵다는 사람도 많았다. 특히 학자금 빚 때문에 결혼을 늦추고 있다는 사람도 5명 중 1명꼴이었다.
퓨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016년 25~29세 성인 중 33%가 부모나 조부모와 함께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3명 중 1명꼴이다. 지난해 뉴욕의 한 노부부는 30살 넘은 아들이 독립할 생각을 않자 법원에 강제퇴거 소송을 내 승소했다. 한국 백수 밀레니얼들도 10명중 6명 이상이 캥거루족이다. 이들 중 70%는 부모로부터 월평균 32만원을 보조 받는다고 했다.
미국 밀레니얼들은 그래도 기댈 언덕이 있다. 부모인 베이비붐 세대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한 재정 분석가는 밀레니얼 세대가 부모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건네받을 돈이 궁극적으로 30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한인 밀레니얼들에겐 부러운 얘기다. 이민 1세대인 부모들이 대부분 아직도 ‘맘&팝’ 가게에 매달려 일하는 상황이므로 손을 내밀 처지가 못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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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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