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가명)이는 한국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그는 온라인 불법도박에 빠졌다가 헤어 나오려 지금 발버둥치고 있다. 우연히 친구들을 따라 온라인 불법도박에 손을 댔던 지훈이는 점차 여기에 빠지면서 엄마 카드까지 훔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불과 몇 달 사이에 그가 날린 돈은 1,300만원.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지훈이는 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다행히 엄마에게 발견되는 바람에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다. 다시는 도박에 손대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음은 물론이다.
100일 동안은 잘 견뎠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통해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불법도박 광고의 유혹 앞에 어린 지훈이는 또 다시 무너졌다. 도박에 다시 손대기 시작한지 2주 만에 500만원을 날렸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도박으로부터 헤어 나올 수 없다고 판단한 지훈이는 지난 2월 방송국에 연락해 도움을 호소했다.
지난 주 한국의 한 시사 프로그램에 소개된 사연이다. 방송국의 주선으로 지훈이를 상담한 전문가는 심각한 도박중독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주변에 자신의 상태를 알리고 공개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지훈이는 아주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평가했다. 프로그램 진행자들도 어린 지훈이의 용기 있는 결정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율리시스(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로마식 이름)는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를 정복한 영웅이다. 그가 전쟁 승리 후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10년의 방랑과 모험을 그린 것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이다. 이 책에는 시칠리아 섬 근처에 사는 세이렌이란 바다의 요정이 나온다, 세이렌은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들을 매혹시켜 바다에 몸을 던지도록 만들었다.
마침 이곳을 지나게 된 율리시스는 세이렌의 목소리에 홀려 자신과 부하들이 바다에 몸을 던지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돛대에 묶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는 밀랍으로 귀를 막도록 했다.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끝에 율리시스와 그의 부하들은 무사히 죽음의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
우리는 의지의 힘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온통 유혹 앞에 굴복한 기억들뿐이다. 매년 의례적으로 하는 신년다짐들을 몇 개월 후 되돌아보면 곧바로 확인되는 사실이다. 율리시스는 자기를 기둥에 단단히 묶어두는 것 외에는 세이렌의 유혹에 저항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렇듯 미래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려 현재의 나를 강하게 묶어두는 것을 ‘율리시스의 약정’(Ulysses contract)이라 부른다. ‘율리시스의 약정’은 지훈이의 경우처럼 나쁜 습관을 버리는 데 아주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목표를 성취하는 데도 유용한 도구가 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저축이다.
들어온 수입을 일단 쓰고 난 다음 남는 것을 저축하겠다는 자세로는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클릭 한 번에 즉석에서 소비가 이뤄지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이보다는 수입의 일부가 저축구좌에 자동적으로 들어가도록 설정해 놓은 다음, 남은 돈으로 지출을 처리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몇 년 전 UCLA 웨슬리 인 교수와 영국 런던 정경대 나바 아슈라프 교수는 일단의 피험자들을 대상으로 저축액을 먼저 설정토록 하는 실험을 했다. 그랬더니 이들의 저축액은 1년 만에 무려 81%나 늘어났다. 자동저축의 효과를 확인시켜준 대표적 연구로 꼽히는 이들의 논문 부제는 바로 ‘오디세우스를 돛대에 묶어두기(TYING ODYSSEUS TO THE MAST)’였다.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부하들에게 자신을 단단히 묶으라고 명령했던 율리시스(오디세우스)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쭈뼛거릴 이유가 없다. 또 저축 같은 경우라면 ‘율리시스의 약정’을 응용한 금융상품이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삶의 영역 곳곳에 초심을 유지시켜줄 감시의 눈과 제어장치를 만들어 놓는다면 자제력과 의지 부족에서 생기는 실패와 실수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율리시스의 지혜는 역사와 고전이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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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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