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판 신발 선착순 판매에, 이른 새벽부터 줄 서거나, 전날 저녁부터 ‘리얼 캠핑’
▶ Z세대 ‘꽂히는 것’에 올인, 휠라·다이소 등 인기 몰이, 김연아 운동화·쇼핑몰 결제대행…
“숙제나 공부를 하라고 하면 일어나지도 못하는 중학생 아들이 아디다스 한정판을 사기 위해 새벽 6시에 일어나 인터넷에 접속하더라고요.
요즘 애들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후배 기자가 머리를 갸우뚱하며 자신이 자라던 세대와 정말 다르다고 혀를 둘렀다.
지인의 고등학생 딸은 “이모, 드디어 제가 ‘이지부스트 700 솔트’를 사기 위해 첫 리얼 캠핑을 했는데 새벽 1시 도착했을 때 번호표가 100번대였어요.
텐트 치고 자고 있던 사람도 있더라고요. 그렇게 득템한 슈즈를 신고 가니 학교에서 금세 ‘핵인싸’로 떠올랐어요”라며 뛸 듯이 기뻐했다.
“‘서현 나이키’를 사기 위해 캠핑의자, 핫팩, 담요를 챙겨 갔는데도 엄청 추웠어요. 중학생으로 보이는 친구들도 있던데 역시 젊음이 최고. 내 뒤에서 끊겼는데 그 아이는 ‘리셀(resell)’이라도 구매하겠다고 돌아갔는데 가슴을 쓸어 내렸어요.”(10대 블로거)
실제 올 초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본점 앞에는 건물을 감싸고도 남을 정도로 줄이 길게 늘어서 이곳을 지나던 행인들이 의아해했다. 비슷한 옷차림과 스타일로 무리를 지어 있는 일행 중 두꺼운 패딩과 모자 등으로 방한을 단단히 하고 서 있던 한 19세 남학생은 “오프화이트 신발을 사러왔다”고 했다. 이날은 ‘오프화이트 컨버스 척 70’ 제품이 한정판으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처음으로 판매되는 날이었다. 오전 11시께 주요 남성 사이즈인 260과 270은 매진됐고 오후 3시가 되자 아예 판매가 종료됐다. 270족만 한정으로 선보이는 선착순 판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일부 소비자는 전날 저녁부터 에비뉴엘 앞에서 ‘캠핑’을 하기도 했다.
도심에 ‘리얼캠핑족’이 등장했다. 여기서 ‘캠핑을 한다’는 것은 어떤 제품을 사기 위해 실제로 밤새 줄을 서는 것을 말한다. 즉 “신상을 내가 ‘라이브(live)’로 샀다”는 뜻이다. 마치 산 속 야영장에서 밤새 모닥불을 펴놓고 캠핑을 하듯이 매장 앞에서 제품이 내 손안에 올 때까지 밤을 새는 것이다.
이들은 “제품을 어떻게 샀는지도 중요하다”면서 “캠핑을 했냐 안했냐가 진짜 중요하다”고 말한다. 리얼캠핑족들은 밤새 ‘쌩’ 줄을 서서 사는 장면과 그렇게 얻은 신상을 라이브로 찍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과시욕을 불태운다. 압구정 아디다스 앞에서 텐트치고 백화점 명품관에 죽치고 앉아 있는 행위가 영웅처럼 보여 지기도 하는 것이다.
리얼캠핑족을 대거 이루는 이들은 Z세대로서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출생한 ‘디지털 네이티브’다. 디지털 세상에서 관심사를 공유하고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익숙해 문화의 소비자이자 생산자 역할을 함께 수행한다. 아끼고 아껴 명품 가방 하나를 사서 10년 이상 애지중지하던 ‘나’ 또는 ‘우리’ 세대를 생각하면 안된다. Z세대는 가치와 경험을 중시해 ‘소확행’ ‘가심비’ ‘나심비’를 중시, 자신이 ‘꽂히는’ 것에는 1년을 꼬박 용돈을 모아서라도 ‘지르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고 싶은 것은 밤새 ‘캠핑’을 해서라도 사고 또 싫증이 나면 과감하게 리셀링(재판매)한다. 되파는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이 희귀하고 한정돼 있을수록 가격을 높게 받는다. 이것이 캠핑의 묘미다.
에비뉴엘 오프화이트 매장에서 18만원에 270족 한정 판매한 ‘오프화이트 컨버스 척 70’ 제품의 경우 현재 2배 이상 뛴 가격인 약 50만원까지 치솟았다. 한정판 제품을 밤새 캠핑을 해서 샀으니 다시 구할 수도 없고 직구, 온라인 제품도 아닌 직접 산 오프라인 제품이니 제품의 가치 또한 높게 책정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리얼캠핑족을 양산하는 브랜드의 특징은 무엇일까. 활발한 컬래버레이션을 통한 세상에 몇 개 안되는 ‘한정판’이 핵심이다. 한정판 마케팅으로 Z세대를 열광하게 해 부활한 대표적 브랜드가 ‘휠라’다. ‘아재’ 이미지로 내리막길을 걷던 휠라는 주 고객층을 30~40대에서 10~20대로 바꾸고 2016년 브랜드를 재단장했다. 그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자체 유통 혁신을 통해 가격을 낮췄고 판매 채널도 Z세대의 소비패턴에 맞춰 ‘무신사’ 같은 젊은 층이 많이 찾는 온라인으로도 확대했다. ‘한정판’에 열광하는 이들의 마음을 노려 스트리트 브랜드 ‘에이라이프’와 손을 잡는가 하면 게임 스트리머 ‘우왁굳’ 등과도 협업해 밤샘 캠핑족들을 양산했다.
10대의 사랑으로 꽃을 핀 곳으로 한국판 유니클로를 꿈꾸는 온라인 쇼핑몰 ‘무신사’도 빼놓을 수 없다. 무신사를 통해 반스, 휠라, 디스이즈네버댓, 커버낫이 10대가 선호하는 브랜드 반열에 올랐으며 토종 SPA 브랜드 ‘스파오’도 이를 통해 Z세대의 마음을 잘 잡았다는 평가다.
전연령층이 찾는 ‘다이소’는 10대들에게 ‘다이소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심어주며 10대 백화점으로 부상, 무섭게 확산되고 있다. ‘다이소에서 없어서 못 판다는 미니 세탁기’는 다름 아닌 3,000원짜리 가전 놀이 세탁기로 처음에는 어린이 장난감으로 출시됐다. 이후 SNS와 커뮤니티에 후기가 퍼지면서 10대들의 화장품 브러쉬 세탁기로도 쓰여 ‘10대 핫템’으로 유명하다. 최근 선보인 봄봄 시리즈는 10대 구매자가 46%로 20대(31.5%), 30대(23.5%)를 제쳤다.
이처럼 밀레니얼 세대를 위협하는 무서운 10대 Z세대의 부상에 모든 업계는 이들을 잡기 위해 분주하다. 김연아 운동화로 한 때 인기를 누렸던 프로스펙스는 10대가 관심을 보이는 ‘뉴트로’ 트렌드를 적극 앞세우며 지난해 9월 10대층을 겨냥한 오리지널 스택스 라인을 출시해 4개월 만에 2만족 이상 팔려 나갔다. 학원 라운딩을 하는 10대들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편의점업계 역시 이들의 쇼핑 편의를 높이기 위해 혈안이다. GS25는 Z세대가 신용카드 발급에 제약이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10대를 위한 쇼핑몰인 모바일 쇼핑 플랫폼 ‘스타일쉐어’와 손잡고 ‘온라인 쇼핑몰 결제 대행 서비스’를 진행 중인데 벌써부터 폭발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상품을 구매한 후 결제 방식을 GS25 편의점 결제로 하면 고객의 휴대전화로 바코드가 전송되는 시스템으로, 고객들은 가까운 GS25에서 바코드를 제시하고 간편하게 현금으로 결제할 수 있다. 실제 이 서비스에 10대 고객들이 몰리면서 서비스 시작 2주 만에 스타일쉐어에서 구매하고 GS25에서 결제한 건수는 1만건을 넘어섰다.
경기 불황을 비웃는 듯 승승장구하고 있는 브랜드와 기업들은 ‘Z세대가 열광하는 것에 열광하라’는 이 시대 최고의 명제를 숙지해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억대 광고와 마케팅이 아닌 Z세대가 좋아하고 그들이 모이는 곳과 다니는 통로를 지키고 있는 브랜드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어떤 패션 잡지는 “20대도 10대처럼 입고 30대도 10대처럼 입는 게 유행”이라며 선글라스부터 트레이닝복, 반바지 등을 입을 때 ‘10대처럼 입는 법’을 연재하기도 했다. 10대처럼 사고하고 10대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이 힘든 불경기의 파고를 넘을 수 있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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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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