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은 카야 입니다. 만 6살이고 보스턴에 삽니다. 이번 봄 방학에 워싱턴에 사는 외할머니와 엄마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이번엔 좀 특별한 여행이에요. 저, 우리 엄마, 워싱턴 할머니, 서울에 사시는 증조할머니 이렇게 4대가 함께 여행하는 것이 우리 할머니의 버킷리스트의 하나래요. 그래서 우리 엄마가 비행기 표를 끊고 바쁜 시간을 내어 전라도 여행을 함께 하였답니다. 한국은 참 멀어요. 그런데 왕복 28시간 비행하면서 집에서는 절대 못 보는 영화를 실컷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이번 여행은 저를 위한 여행이었다고 할까요? 이곳에서도 늘 저를 중심으로 우리 집도, 할머니 집도 돌아가지만 이번 여행엔 수많은 할머니, 할아버지, 친척들이 저를 해 같이 바라보며 지구와 행성이 되어 제 주위를 돌곤 하였습니다.
기분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예쁘다고 하는 겁니다. 어른들이 그래요, 제가 혼혈이어서 예쁘다고. 우리엄마는 물론 한국 사람이지요. 우리 아빠는 네덜란드 아버지와 중국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그러니 제가 25% 홀란드 피와 75% 아시안 피를 받아 태어난 셈이지요. 아빠의 큰 눈과 엄마의 야트막한 코를 닮았지요. 미국에서도 귀엽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한국에 오니 “아이고!”라는 감탄사까지 곁들인 찬사가 은근히 듣기 좋았습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호들갑을 떨어요. 어떤 양말가게 아주머니는 저에게 “이 귤은 제주도에서 왔다”면서 막 먹으라고도 하시고, 예쁘다면서 얼굴을 만지기도 해서 제가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한복은 너무 예뻐요. 경복궁에서 큰 언니들이 한복을 입고 다니는 것이 너무 예뻐서 부러웠습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언니들도 나와 같은 관광객이래요. 전주 한옥마을에서 드디어 한복을 빌려 입겠느냐는 할머니 말이 그리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한복 대여점은 마치 요술 방망이 같았어요. 저의 머리를 프렌치 블레이드로 땋고 댕기를 달았습니다. 뻗치는 망사 속치마는 허리가 너무 커서 두 군데나 옷핀으로 줄이고 치마와 저고리를 입혔습니다. 날씨가 춥다고 마고자까지 입는데 10분도 안 걸렸어요. 10분 만에 전 완전한 한국의 신데렐라가 되었죠. 3월이라 좀 쌀쌀했지만 양손으로 치마를 살짝 들고 걸으니 하늘을 둥둥 나르는 것 같았어요.
어진박물관에 들렸어요. 조선 왕들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는데 웃고 있는 왕이 아무도 없어요. 저는 카메라가 앞에 오면 저절로 “치이~즈”가 되는데…. 산봉우리 다섯 개, 해와 달이 그려있는 병풍은 왕이 쓰던 병풍이라고 서울 가구박물관에서 배웠는데, 그런 병풍을 배경으로 태종이 앉았던 것 같은 빨간 의자에 앉아 예쁘게 웃는 여왕으로 초상화를 찍었습니다.
한국말은 너무 어려워요. 먹는 배(Pear)도, 타는 배(Ship)도, 배꼽이 있는 나의 배(Stomach)도 배. 겨울에 내리는 눈(Snow)도, 내 얼굴의 눈(Eye)도 똑같은 눈. 너무 헷갈려요. 더 헷갈리는 것은 중국에서 태어나신 저의 센 프란시스코 할머니(친할머니)는 저에게 중국말을 가르치며 “너는 챠이니스야!” 하고, 워싱턴에 오면 한국말 쓰는 할머니는 “너는 코리언이야!” 하십니다. 엄마는 저에게 글로벌 시대에 사니까 외국어 서너 개는 해야만 한다지만 이 세상엔 왜 그리 말이 많은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사실 식성으로 따지면 전 완전 코리안 입니다. 하얀 쌀밥보다 더 맛난 음식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가끔 엄마 아빠가 동시에 출장을 가면 저는 혼자 꼬리표를 목에 걸고 워싱턴 비행기를 타지요. 그런데 너무 기쁘게 탑니다. 왜냐하면 할머니 집에서는 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제가 아는 한국말 대부분은 음식이름 이예요. 꼬리곰탕, 된장찌개, 김치, 김, 멸치…. 그리고 할머니가 늘 쓰는 말 ‘빨리빨리’도 압니다. 또 태권도장에서 배운 하나, 둘, 셋, 넷, 경례 같은 단어이지요.
“카야는 이번에 한국말 뭐 배웠어?” 열흘 여행을 마치니 마치 외국어 현장실험장을 제공했다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워싱턴 할머니가 제게 물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화살 같은 대답이 튀어나갔습니다. “아이고.” 할머니가 막 웃었지만 정말 제가 여행 중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은 “아이고”입니다. 저를 예쁘다고 칭찬할 때, 그러면 안 된다고 할 때도 “아이고!”가 머리말에 붙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온돌방 식당에서 앉을 때, 일어설 때는 꼭 “아이고~”하세요. 또 춥다고, 덥다고, 힘들다고, 맵다고, 짜다고, 고맙다고…. 이 단어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무 때나 마구마구 쓸 수 있는 매직 감탄사 같아요.
내년에 또 할머니와 LA에 사는 두 살 위의 사촌 알리스와 함께 한국에 다시 오고 싶다고 했어요. 엄마가 손뼉을 치며, 매해 여름방학에 할머니가 우리를 데리고 와서 한글 공부를 시키면 좋겠다고 하니 할머니가 이렇게 대답했어요. “아이고~ 그 더운데…”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예스예요? 노예요?
카야,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 이렇게 키 순서대로 ‘도레미파’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제가 키가 제일 작아 맨 앞에 섰지만, 나이순으로 하면 제가 제일 뒤로 가야 해요. 10년 후면 제가 당연히 엄마보다 크겠지요. 맨 뒤에 서서 진짜 ‘도레미파’ 사진을 찍을 수 있을 텐데…. 그때가 올까요? “아이고! 내가 빨리빨리 커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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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애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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