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미국은 북한과 작은 조치들을 주고받는 단계적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며, 비핵화 이전에 제재 해제는 없다고 다시한번 못 박았다. 그러나 3차 정상회담을 포함해 외교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고 북한과 대화 재개를 희망한다고 여운을 남겼다.
북미간 하노이 회담 결렬은 과제였던 비핵화에 대해 양국의 정의(定義)부터가 완전히 다르니 이 회담은 애시 당초 결렬을 전제하고 출발하지 않았겠나 생각된다. 북한은 핵을 폐기할 의도가 전혀 없다. 그 핵 때문에 국제경쟁력 136위 꼴찌국가(정권)가 세계 1위 국가와 맞장을 뜨는 건데, 그 핵을 폐기대상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애시 당초 자기논리 부정이었다.
핵이 없었으면 성조기와 인공기를 나란히 걸어놓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회담이 성사되지도, 북미 간 딜의 자리도 마련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질범에게 경찰이 인질을 풀어주면 요구조건을 들어주겠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인질범의 힘(?)의 근거는 인질이다.
사실상 핵이 없는 가다피, 후세인, 빈 라덴과 미국은 회담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의 비핵화 회담은 애시 당초부터 용어의 정의가 서로 상반된 상태에서 출발한, 결렬을 예정한 회담이었다. 다만 양 정상의 셈법 때문에 트럼프는 정치적 입지, 북한은 체제보장을 위해서 경제 제재 해제를 주제로 자리가 마련되었을 뿐이다.
국제질서는 힘에 기반한다. 평등, 논리, 정의, 이런 것이 기준이 아니라 ‘힘power’이다. 그건 어떤 관계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기준이다. 큰 것이 작은 것을 당긴다. 소위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상호 간에 서로 당기는 힘의 강약과 서열이 존재한다. 그래서 핵이 필요하고 힘이 필요한 것은 국제관계 이전에 모든 존재의 생존법칙이다.
형평과 논리로 따진다면 후발국만 핵을 못 갖도록 할 것이 아니라 기존 핵보유국들도 모두 폐기해야 한다. 인도 파키스탄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내로남불’이다.
이런 점 때문에 북한은 핵부터 완성하고 이미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 상태에서 비핵화 논의와 딜을 시작한 것이다. 이런 가설(?)이 맞다면 비핵화의 해법은 절대로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보수적 입장은 완전한 비핵화(CVID)인데 북한에게 그것은 존재부정이다. 결국 북한의 기본적 입장은 핵보유국임을 인정 하고 이제 핵동결 수준(미사일 핵실험 중지, 기존 핵시설 폐기)이 비핵화의 정의다.
남북철도 연결,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 참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그 결정의 당사자가 한국이 아니라 국제 사회, 미국이 주도 하다시피 하는 국제사회다. 즉 내 나라 내 민족 우리끼리는 못한다는 얘기다.
이런 사실은 무엇이 ‘북한 비핵화’인지 분명히 정의(定義)하게 한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핵탄두·핵물질·핵시설을 포함한 핵과 관련된 모든 것의 폐기이다. 지금까지 이에 가장 근접한 것이 비핵화를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을 포기하는 것’ 이라고 명시한 2005년 6자 회담 ‘9·19 공동성명’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가 비핵화의 본래적 정의는 물론 9·19 공동성명에도 못 미친다는 것을 확인해줬다. 더 헛웃음이 나오는 것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가 불가역적 비핵화 단계로 접어드는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태평스러운 인식이다. 영변 핵시설은 북한 전역에 널린 핵시설 중의 하나일 뿐이다.
문 대통령은 비핵화란 말뜻부터 다시 공부하기 바란다. 제2 차 북미정상 회담 결렬을 전후 해 한미 간의 소통에 허점이 있고, 이후 대응 전략에도 이견이 엿보이는 일부 신호가 감지돼 온 게 사실이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미-북 대화의 조속 재개는 한미 간의 공조에 빈틈이 없을 때 더 가속될 것이다.
일부 외신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한미 간의 엇박자나 이견을 우려하는 보도도 내놓고 있다. 한미 고위당국자 회동이 이런 우려를 불식하고 공조를 재점검하고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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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주 한미자유연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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