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남편은 내게 말했다. 더 이상 자신은 운전을 할 수 없다고, 그에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몇달 전이었다. 처음엔 발에서부터 감각이 없다가 차츰 다리로해서 이제는 엉덩이까지 마비 증상이 온 것이다.
남편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벌써 오래 전부터다. 그러나 이제는 발과 다리가 감각이 없어지니까 운전을 할 때 엑셀러레이터를 밟는지 브레이크를 밟는지 알 수가 없어서 더 이상 운전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은 본인에게도, 또 나에게도 상당한 충격적인 일이다.
이제까지는 가게도 혼자 가고 병원도 혼자 가곤 했는데 이젠 내가 모든 것을 대신 해주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저께 처음 나는 그의 머리를 깍기 위해 단골 이발소도 데려가고 수퍼마켓도 함께 갔다.
미용사가 깜짝 놀랐다. 지난번까지도 괜찮았는데 왜 별안간 그렇게 변했느냐고, 남편은 다리가 감각이 없어지니까 이젠 걸을 때 중심이 없어지고 흔들흔들 해서 우선 지팡이 하나를 의지해서 걷는다. 사실 얼마 전 검사란 검사는 다 했다. 피 검사서부터 온 몸 스캔과 MRI까지 받았지만 아직 완전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처음엔 심장에서 피가 샌다고 했다. 그래서 다리가 붓고 마비 증상이 온다고 했지만 이젠 또 그게 아니란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남편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를 귀찮게 하지 않았고, 요리도 잘해서 자신의 밥은 자기가 알아서 해 먹었기 때문에 나는 참 편하게 산 편이다. 내 주위의 모든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남편이었다. 그런데 이젠 상황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인생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이젠 우리처럼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 보장된 건강은 없다. 사실 얼마 전 멀쩡하던 한의사 한분이 갑자기 세상을 떠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나도 몇년 전 발목을 다쳤을 때 한번 침을 맞은 적이 있어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남편은 주위에 친구가 없다. 유일한 친구는 우리 막내 아들이 아들이며 친구다. 보통 때는 말이 없다가도 그애만 만나면 무슨 얘기가 그리 많은지 하루 종일 떠들어 댄다. 내가 봐도 남편은 너무도 심심한 인생을 살고 있다. 아마 나는 하루도 그런 인생을 살 수 없을 것이다.
요즘은 낮잠을 그렇게 많이 잔다. 옛날 노인들은 너무 낮잠을 오래 자면 저승잠이라고 말했다.
내가 외출에서 돌아오면 소파에서 쭈그리고 자는 모습이 그렇게 짠하고 안스럽고 불쌍한 마음이 든다. 좀 잘해줘야지 하다가도 막상 깨어나면 곱게 말이 안나가고 말끝마다 톡 쏘게 된다.
며칠 전 내가 운전을 하는데 스톱 사인에서 완전히 서지 않았다고 잔소리를 해댄다. 나는 지지않고 왜 그렇게 미스터 펄픽이 매사엔 그토록 완벽한데 자신의 몸둥아리는 함부로 굴렸냐고 따졌다. 일생 담배 피고, 술먹고, 운동이라면 질색해서 동네도 한바퀴 돌지 않았으니 지금 건강이 이꼴인게 당연하다고 꼬집었더니 한마디도 못하고 풀이 죽었다.
우리가 젊어서는 거의가 건강이 비슷해도 늙어서 나타난다. 자기 몸을 챙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확연히 구별이 된다. 나는 그게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부지런히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차이가 난다. 자신이 뿌린 씨는 자신이 거두는 것이 당연한데 옆에 같이 사는 사람한테 짐이 된다면 그건 부당하다. 내가 아무리 내 건강을 챙겼지만 한쪽이 그렇지 못하다면 함께 불행해지고 함께 몰락한다. 이게 인생의 아이러니다.
나는 요즘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훌쩍 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땐 어떻게 될까를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생각할 때마다 벌써 슬퍼지고 눈물이 난다. 젊었을 때는 연인이고, 남편이고 친구였다. 이젠 친구이긴 한데 그냥 한집에 사는 동거인일 뿐 함께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는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내게 미국이라는 신천지에 데려와서 제 2의 인생을 살게 해주었고, 피도 섞이지 않은 내 두 아들까지 데려와서 그들을 공부 시켜주고 , 오늘날 그들이 편안하게 이 나라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은인이다.
그가 떠나면 아마 나는 혼자서 할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나는 아직 전기가 나가면 라잇볼 한번 갈아끼운 적이 없다. 청소기에 봉투 한번 갈아보지 않았고, 쓰레기 봉투 한번 밖으로 들고간 적이 없는데 이젠 아마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남편의 한가지 매력을 꼽는다면 그건 그의 유머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가끔 익살을 떨어서 나를 배꼽 빠지게 웃기곤 했다. 말하자면 어떤 못생긴 여자를 보면 “저 얼굴은 오직 엄마만 사랑할 수 있는 얼굴이야”던가 (온리 마더 캔 러브)우리 동네에 가끔 남편을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앤소니라는 남자가 있는데, 그는 약간 아이큐에 문제가 있어서 좀 얼이 빠진 것 같은데 그의 별명이 로스트 쏘울이라고 남편이 지어주었다. 즉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것도 모르고 그는 한번 오면 남편이 밖에 나올 때까지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마냥 벤취에 앉아 기다린다. 우리는 알고있다. 그가 베트남 전쟁에 머리는 다쳤지만 아주 순박하고 착한 사람인것을.
그 사람을 볼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럭키인 사람인가를 그는 구구절절 말하곤 한다. 올해 8월이 오면 우리가 결혼한지 오십년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오십년을 채우지 못한다. 살다가 이혼을 하던가 한쪽이 죽거나 해서 실상 오십년을 채운다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다. 남편은 자기 일생에서 나를 만나 결혼한 것을 가장 잘한 일이라고 늘 말한다. 어느날 그가 먼저 떠난다면 나는 아마 가슴을 치고 후회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죽기 전 이렇게 말해주리라. 당신이 나를 정말 귀찮게 해도 그래도 내 옆에 오래 붙어서 살아만 달라고, 그리고 당신을 만나 나도 행복했다고, 자알 한세상 살았다고, 또 나도 당신을 사랑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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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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