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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를 쓰면서, 가장 수수께끼같은 존재가 바로 베르디였다. 베르디는 이태리가 낳은 오페라 작곡가이면서 벨칸토 시대와 사실주의 오페라의 간격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와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파고 들어가 보면 단순히 어떤 능력이나 성향 혹은 예술성 따위로는 측량 못할 많은 부분이 도사리고 있다. 음악적 실력이야 그렇다치고 어떤 감흥을 폭풍우처럼 폭발시키는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초자연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령 무당 등이 그런 것 처럼 신기(神氣)가 있다고나할까. 그것을 예술적으로 무엇이라 말해야할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 독특한 일면은 베르디의 신비이면서도 동시에 베르디를 말하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가 보고 있는 오페라들은 대체로 베르디 이후에 터진 작품들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즉 오페라 중에서도 베르디의 ‘리골레토’ 이후의 아류 그리고 그 이전의 작품들로 대분된다는 것이다. 오페라가 오늘날의 뮤지컬처럼, 히트 상품으로서 공연예술의 돈 줄이 되어온 것도 어쩌면 베르디의 ‘리골레토’가 그 시조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오페라의 대중화에 이바지했다는 사실은 둘째치고 오페라를 보는 맛, 왜 사람들이 오페라는 좋아하는가 하는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이 한 작품, ‘리골레토’에 함축되어 있다고 할 만큼 ‘ 리골레토’만큼 오페라의 대명사적인 작품도 없다할 것이다.
흔히 대박난 작품을 가리켜 히트쳤다고 한다. 누가 언제 부터 이런 표현을 쓰기 시작했는지, 그 정확한 시기를 유추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참으로 적절한 비유였다는 생각이다. 히트야말로 공을 갖다 맞추는 것이 초점이 아니라 그 히트로 인해 스탠드에서 열광하는 팬들의 모습이 함께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발 더 나아가 그 공이 그라운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담장너머로까지 홈런이 됐을 경우, 이 때는 관객의 흥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순간으로 인하여 경기의 흐름까지 바뀌게 된다는 점에 있어서 홈런이 주는 통쾌감은 히트와도 다르다. 나는 베르디의 예술을 접할 때 마다 이러한 히트, 홈런의 통쾌감을 경험하곤한다. 즉 예술의 차원을 넘어선 어떤 인간 승리라고나할까. 하나의 작품이 주는, 그 창작의 힘이 놀라울 뿐이다.
누가 만약 당신은 왜 오페라를 좋아하느냐 , 하고 질문해 온다면 나는 조금도 망설임없이 바로 베르디의 오페라같은 것이 있기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그것이 나로 하여금 인생의 페이소스, 삶의 핀치에서 터지는 한 방의 진한 맛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인생도 그렇지만, 오페라라고 하는 장르적 한계를 감안하면 한 방이란 결코 아무데서나, 누구나 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9세기 바그너 등과 쌍벽을 이루며 극과 음악이 조화된 탁월한 작품들을 내 놓았던 베르디였지만 작품성만 인정받았을뿐 한방에 날려 줄 이렇다할 히트작을 내지못하고 있었다. 극장쪽에서 봤을 때, 베르디의 문제점은 능력부족보다는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의 결여였다. 1851년은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순간에 홈런이 터진 해였다. 내용은 꼽추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스칼라푸칠레라는 청부살인업자, 망나니이자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 그 공작을 사랑하는 곱추의 숨겨둔 딸 질다 등 비극적인 인간 군상들이 얼키고설켜 하나의 단막극을 연출한다. 내용은 좀 막장이었지만 극음악이 탁월했다. 아리아도 아름답고, 무엇보다도 극을 이끄는 음악적 효과가 절묘하여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베르디는 ‘리골레토’에서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는 ‘여자의 마음’같은 아리아들을 덧입혀 하나의 살아있는 예술을 창조해 냈는데, 이것은 베르디 혼자의 힘이 아니라 위고의 극 그리고 신의 장난이 살짝 뭉개구름을 피운 우연의 산물이기도 하였다. 아무튼 성공을 예감하며 득의만면해하던 베르디에게 뜻밖의 암초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극의 원작자였던 빅톨 유고가 자신의 원작을 살짝 비틀어 놓은 이 작품이 대단히 맘에 들지 않아 제작진을 고소한 것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리골레토’를 본 위고는 자신이 왜 이같은 작품에 그토록 처절한 반대를 표명했을까, 뼈저리게 후회했다고 하는데 오페라에 빠져든 나머지 ‘자신의 작품도 4명이 노래할 수 있는 ’리골레토의 4중창과 같았다면…‘ 하면서 감동에 마지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반대하던 적조차 감동시킨 ’리골레토‘는 그후 새 역사를 쓰는 홈런이 되었는데 지금도 베르디의 작품을 구분할 때는 ’리골레토 이후 리골레토 이전‘이라는 대명사를 쓰고 있다. ’춘희‘, ’일트로바토레‘, ’가면무도회‘, ’아이다‘, ’오델로‘ 등은 모두 ’리골레토‘ 이후에 나온 베르디의 연타석 히트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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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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