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진화는 우리의 감성에 신선함을 불어넣어준다. 요새 한국에서 통용되는 인기 신조어들이 그렇다. 한물가긴 했지만 한때 인기를 끌던 ‘국민’이라는 수식어가 그런 것이다. 국민엄마, 국민여동생, 국민서방, 국민며느리, 국민이모 등등, 인기드라마에서 자기가 맡은 역을 탁월하게 잘 해내는 이에게 붙여진 영웅적 타이틀이다.
최근 내 의식을 계속 맴도는 유사한 다른 말은 ‘인생’이란 단어다. 어느 영역에서 최고의 경험을 하면 거기다 ‘인생’ 자를 붙인다. 주로 음식에 많이 붙이는 걸 봤다. 인생자장면, 인생짬뽕, 인생순대, 인생라면 등이다. “이토록 맛있는 짬뽕 처음이다, 아니, 이걸로 마지막일 것 같다, 이 짬뽕이야말로 정말 짬뽕의 끝판왕이다,” 이런 의미에서 더해진 말로 보인다.
이 표현이 내게 얼마나 신선했던지 내게도 그 뒤로 뭐든지 최고의 경험을 할 때마다 그 앞에 ‘인생’을 더하는 습관이 생겼다. 인생커피, 인생오믈렛, 인생콘서트, 인생휴가…. 그럴 때마다 재치 있는 언어플레이를 통한 야릇한 쾌감도 보너스로 얻는다.
이와 관련해 두 개의 개인적 경험을 소개하고 싶다. 먼저 ‘인생스시’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처음엔 멋모르고 그저 맛있게만 먹던 음식도 시간이 흐르면서 최고의 맛을 찾는다는 점이다. 내 경우 스시는 내 입맛의 간사함을 고발해준 대표적인 음식이다. 언제부턴가 스시라고 다 같은 스시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내 인생스시는 감사하게도 현재 사역하는 교회의 한 교우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맛봤다. 그리 양도 많지 않았다. 달랑 네 피스였는데 쫀득쫀득한 밥알뭉치며, 그 위에 살짝 덮인 생선의 향과 뒤섞인 스시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난 그때 스시가 이토록 달달한 음식이란 걸 처음 알았다. 가히 인생스시였다!
그다음은 ‘인생설교’다. 직업이 목사다 보니 설교할 일이 많다. 설교는 내가 주력해야 마땅할 전문분야이기도 하다. 내겐 잊을 수 없는 ‘인생설교’가 몇 있다. 그 중 하나가 최근 경험한 것으로서 그때 그 설교는 하는 나나 듣는 교인들에게나 큰 은혜가 되었다. 인생설교의 증거가 꼭 사람들로부터 들려오는 칭찬만은 아니다. 설교자의 영광은 설교하면서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데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 영광은 또한 청중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그런 설교가 진행될 때에는, 저 목사 참 말 잘하네, 이런 평가는 그다음 문제다. 청중들 역시 목사의 메시지 전달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경험한다. 그날 그랬다. 가히 인생설교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우리가 그 어느 곳에다 ‘인생’ 자를 자꾸 더하는 습관 자체가 우리의 보편적 인생살이의 유한성을 반증한다. 최고의 순간은 정말 ‘순간’일 뿐이다. 결코 계속되지 않는다. 매번 인생스시를 먹을 순 없다. 만약 그걸 매일 먹을 수 있다 쳐도 그 최고의 맛은 금방 질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는 더 최고의 인생스시를 찾아 나설 것이다. 설교도 그렇다. 그런 설교가 매주 지속되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목회자라면 다 동의할 것이다. 그래서 순간은 짧고 영원은 길다지만 이 말에는 최고의 순간은 영원토록 지속되지 못한다는 매우 자연적인 모순이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이젠 ‘인생’ 자 함부로 안 쓰기로 했다. 내 인생을 양질의 인생으로 만들기 위해 최고의 순간을 경험하려는 욕망이 참으로 부질없다는, 이 간단한 진리를 발견한 후로다. 좋은 인생은 매일 진행되는 보편적 시간의 흐름을 잘 유지하는 데서 이뤄진다. 역설 아닌가? 평범한 인생살이가 진짜 인생이어서 우리는 그것을 ‘인생’이라고 이미 부르고 있는 판에 그 단어만 딱 빼내어 순간의 기쁨을 찾는 데다 허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생스시, 인생설교 그래서 부질없다. 앞으로 더 이상 맛 못 보고(인생스시를) 매번 못해도(인생설교를) 그만이다. 오늘의 평범함을 즐기라. 순간의 기쁨을 위해 살 것인가? 아니면 그만큼의 쾌감엔 못 미치더라도 내게 주어진 매일의, 그래서 어쩌면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겠으나 역시 소중한 평범함을 위해 살 것인가? 답은 명백하다. 나라면 후자를 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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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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