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마지막 날 한국형 표준자살예방교육을 개발한 임세원 교수가 진료 중 중증 정신질환자에게 공격 받아 세상을 떠난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인간성 존중을 위해 헌신했던 분의 안타까운 비보에 멀리 미국에서나마 잠시 고개를 숙인다.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 총기와 마약이 범람하지만 아주 낮은 자살률을 유지하고 있다. 필자가 하는 일이다.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캘리포니아주에서 시행되는 정신질환자를 위한 강제입원제도를 통해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자살 고위험군 강제 입원제도가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자살 고위험군을 72시간 까지 응급정신건강병원에 강제 입원시킨다. 카운티마다 응급정신건강병원을 운영하며 72시간까지 강제 입원시킬 수 있다. 경찰관, 보안관, 그리고 카운티 소속 정신과의사, 정신건강간호사, 전문 카운슬러는 특별교육 후 면허증을 소지하고 업무를 진행한다.
통일된 적용방식으로 효과적인 대응을 한다. 정신질환으로 인해 ①본인의 자살 위협 ②타인의 생명과 재산 위협 ③본인 의식주와 처방약 관리능력 완전 불가로 인한 위험 등을 전문가가 판단하면, 경찰관이 출동해 안전을 확보한 뒤 경찰차나 앰뷸런스로 지정응급실로 이송한다.
환자가 지정응급실에 도착하면 24시간 이내 정신건강전문가가 자살 위험을 분석하고 입원을 판단한다. 가끔 한국 경찰관이 자살 고위험군인 사람이나 시도자를 잘 달래서 돌려 보냈다는 뉴스를 접하면 가슴이 철렁하곤 한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팔다리가 절단된 심각한 중상과 마찬가지로 정신건강상 심각한 중상을 입은 환자로 판단을 해야 한다. 이러한 정신건강상의 중상자를 그냥 돌려보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자살 고위험군을 응급정신건강병원에 강제 입원시켰다고 가족이나 친지의 항의나 저항하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전문가 판단에 존중과 감사를 표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하나뿐인 목숨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인권보다 생명권을 우선시하는 미국사회의 분위기 때문이다.
자살 고위험군을 수시간이나 며칠 안전하게 보호하면 실제 자살률이 매우 떨어지게 된다. 72시간이 경과하면 지정응급실은 ①환자를 퇴원시키거나 ②자발적으로 일반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③지속적으로 강제 입원시키는 것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한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제도는 응급정신건강병원 강제입원 72시간 후에도 지속적인 위험이 있다는 담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판단이 있으면 14일간 응급정신건강병원에 강제 입원시킬 수 있다. 정신질환으로 자살 위험이 이렇게 지속되면 중증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과 동일하게 다루게 된다. 이 때에는 반드시 법원 허락을 받도록 돼 있으며, 소규모 청문회에서 심사한다.
14일 뒤에도 자살 위험이 있다면 추가로 14일 강제 입원시킬 수 있다. 그 다음은 30일간이나 180일간 일반정신건강병원에 강제 입원시킬 수 있다. 당연히 담당 정신건강의사의 판단과 청문회와 법원 허락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법원에서 선정한 후견인이 환자를 대리하게 된다.
중증 정신질환자와 알코올ㆍ마약 중독자를 위한 법정이 별도로 운용된다. 이 법정은 정신질환 전문 지식을 갖춘 판사를 비롯, 심리학자, 사회복지사, 전문 치료기관 담당관 등으로 구성돼 정신질환자의 처벌과 치료, 사회복귀까지 관여하고 있다. 대부분의 병원에는 사례관리자가 있어 병원과 지역사회로 이송과 전달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다.
강제 입원 후 퇴원하면 지원을 중요하게 다룬다. 퇴원 환자상태에 적합한 중간집(Halfway house)나 치료프로그램에 잠깐 입소하게 하는 법원의 치료명령이 종종 있다. 여기서 지속적인 치료의 일부분으로 직장과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물론 환자의 담당관과 사례관리자가 지속적으로 관찰ㆍ관리한다.
마지막으로, 증증정신질환자, 자살 고위험군을 위한 치료에는 수많은 방식이 있지만 가장 우선시 하는 부분은 환자와 치료자의 안전이다. 동시에 일선 전문가의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대한민국에서도 안전을 전제로 한 정신응급체계와 입원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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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최(최재동) 산타클라라 카운티 심리분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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