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간으로 27일 치러지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새 대표로 선출될 것이 확실하다. 칼럼이 나간 시점에는 김정은-트럼프 회동 뉴스와 함께 그의 당선보도가 나와 있을 것이다. ‘어대황’(어차피 대표는 황교안)이란 말이 나돌 정도로 황교안의 당선은 일찌감치 예견된 것이었다. 하지만 경선과정에서 황교안은 향후 그의 정치생명과 관련해 거의 치명적이라 할 만한 자충수를 뒀다. 박근혜 탄핵을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황교안은 한 종편 주최 TV토론회에서 “박 전 대통령이 한 푼이라도 받았다는 게 입증되지 않았다”며 탄핵이 타당한 것인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이 문제가 되는 것이 내용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대통령 권한대행 당시 헌재 판결에 대해 “헌법과 법률에 따라 내려진 것인 만큼 모두가 헌재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담화를 낸 바 있다. 자신이 공적인 자격으로 냈던 담화의 내용을 180도 뒤집어버린 자기부정이 아닐 수 없다.
황교안의 정치적 스탠스와 비전이 무엇인지 아직은 상세히 알지 못한다. 허나 핵심적인 이슈와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이처럼 손쉽게 뒤집은 전력은 앞으로의 정치여정에서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일관성 있는 태도는 신뢰와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황교안은 정치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한 이후 박근혜 문제와 관련해 애매모호한 자세로 일관했다. 때로는 두루뭉술하게, 아니면 동문서답으로 이 문제를 피해갔다. 이해할만 하다. 아무리 정치초년생이라 할지라도 박근혜와의 인연이 정치적 외연 확장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랬던 황교안이 탄핵을 부정하는 극우세력 입장에 확실하게 동조하고 나선 것이다. 그의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장악한 극우 태극기 부대의 눈치를 본 처신일 가능성이 크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는 태극기 부대의 함성과 막말로 뒤덮였다. 전체 선거인단 중 2%에 불과한 태극기 부대에 점령당했다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다.
이런 기형적 분위기는 합동연설회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좁은 실내공간을 점령한 극단적 세력이 구호와 함성을 내지르게 되면 합리적 목소리는 파묻혀 잘 들리지 않게 돼 있다.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르다 보면 후보들의 발언 역시 이들에 영합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한 공간에서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비슷한 의견을 서로 주고받다 보면 분위기는 계속 달아오르고 그런 견해는 한층 더 절대적인 것으로 고착된다. 같은 생각이 메아리처럼 계속 울려 퍼지면서 점점 커지는 이른바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아마도 황교안은 극우에 의해 형성된 연설회장의 에코 체임버 효과에 압도됐을 것이다. 이들과 척을 지고선 자신의 미래가 없다는 강박을 느꼈을 수도 있다.
대세론 속에 황교안이 대표가 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조급한 나머지 자신의 확장성에 스스로 울타리를 두르는 성급한 수를 뒀다. 아마도 황교안은 태극기 부대와 비태극기 보수 및 중도 사이의 선택을 놓고 잠시나마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을 것이다.
버려야 할 것을 과감히 버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다 쥐려하다가는 게도 구럭도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일단 대표가 된 다음 수습하면 된다고 계산했을지는 몰라도 국민들은 그리 만만하고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처신과 말을 바꾸다 보면 결국 해명하고 변명해야 할 일들만 늘어나게 된다. 구차한 해명과 변명이 잦다 보면 스텝이 꼬이게 돼 있다. 황교안은 벌써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족장이 되는 것과 국가 지도자가 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정치입문 후 황교안이 보여 온 소신과 처신에 비춰볼 때 그의 미래는 그리 썩 밝아 보이지 않는다. 취임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자신과 당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일부 보수에서 나오고 있는 걸 황교안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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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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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공산주의자?
한국에서 문재인을 공산주의자라고 불러도 잡아가지 않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여..
지기들이 이해 못하면 빨갱이라고 불러야 마음이 편하재
난 아직도 빨갱이 탓하는 노인들 이해가 안가요. 공산주의가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게 거의 반세기가 넘는데 아직도 빨갱이타령이라니. 중국도 북한도 더 이상 공산주의에 집착안합니다.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정권유지이죠. 사상이 공산주의건 민주주의건 그들 정권만 유지할수있다면 아무거나 같다부칠겁니다. 거의 박정희, 전두환 수준보다 좀 더 하다할수있읍니다. 한ㄴ국도 조금만 정부 비평하면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졌던때가 얼마전이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