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맞추기 게임 할 시간이 돌아왔다. 난 선물 고르기가 짝 맞추기를 하는 느낌이다. 제 짝을 빨리 잘 찾아야 이기듯이, 선물도 받을 사람이 꼭 필요한 것, 또는 딱 어울리는 것을 빨리 찾으면 끝이 나기 때문이다. 동네 몰을 두세 바퀴째 돌고 있지만, 딱히 줄긋기할 수 있는 선물들을 다 찾지 못했다. 점점 발이 피곤해지기 시작하니 물건들은 눈에 안 들어오고 갈등이 일기 시작한다. 차라리 선물카드를 사서 줄까 싶다. 선물을 여는 기쁨보단 웃돈을 얹어서라도 사고 싶었던 걸 직접 고르게 하는 실용성을 선택하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나의 어린 시절은 과자가 흔하지도 않았지만, 과자 살 돈이 있으면 차라리 그것으로 쌀을 사야 했던 시대였다. 학교에서 하던 도시락 검사 때문에 보리를 섞는 것이 아니라 쌀밥을 먹을 형편이 안돼서 혼식하던 터에 과자란 가당치도 않았다. 그나마 누군가 시골에서 말린 미역귀라도 가져오면 감사히 먹던 때라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짠 것도 좋다고 씹었던 우린 참 가난한 시절을 살았던 것 같다. 그런 어려울 때에도 유독 삼촌 한 분은 항상 일 년에 한두 번쯤 서울에 올라오실 때마다 그 당시 가장 큰 과자 종합 선물세트를 들고 오셨다. 평소에 알록달록한 포장지 안에 들어있는 과자를 못 먹던 우리 삼 남매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엄마는 장녀인 내가 남동생들한테 치어 하나도 못 먹을까 봐 우리 삼 남매에게 각각의 과자와 사탕 등을 똑같이 나누어주셨다. 어려서부터 단것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새로운 것을 맛보는 건 정말 좋았다. 그렇게 맛만 보고 아끼느라 나머지는 책상 서랍에 넣어놓았다. 그러나 동생들은 그다음 날쯤이면 자기들 몫을 다 먹고 마지막 사탕을 입에 넣고 다 닳아 없어지는 걸 안타까워하며 내 것에 눈독 들이기 시작했다. 워낙 먹는 거에 욕심 없던 나는 다 꺼내놓고 다시 ‘나 하나, 너 하나’를 하며 나눴다. 없는 살림에 누나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선심이었다.
선물세트에 있던 것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팥양갱이었다. 야박하게도 그 큰 상자에 팥양갱은 많지 않아서 한 번도 혼자 하나를 다 먹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나눠주자마자 바로 입에 쏙 넣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마트에 가서 20개들이 한 상자에 9.99불에 세일한다고 쓴 걸 보면 가끔 사게 된다. 정작 너무 달아서 많이 먹지도 못하지만 난 냉장고에 넣어두고 하나씩 꺼내 먹는다. 팥양갱을 먹는 게 아니라 그때 그 시절의 가장 좋았던 기억을 무의식중에 음미하고 있다. 내게 선물이란 가슴 설렘과 기대감이었다. 그때의 과자 종합 선물 세트 외엔, 그 이상의 선물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보다도 비싸고, 유용하게 쓰인 선물들을 받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만큼의 가슴 떨림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선물세트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세트로 바뀐 것 같다. 커피 세트, 햄 세트, 더 나아가 갈비 세트 등등으로, 그리고 우리도 자랐고 우리에게 선물세트를 주시던 삼촌도 이제 할아버지가 되셨다. 언제부턴가 우린 선물 대신 용돈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조차도 서서히 식어갔다. 내가 나이가 들어가며 선물은 받는 것이라기보다는 서서히 주는 것으로 바뀌어 갔다. 이제 난 선물을 주면서 오히려 마음 졸이고 흥분하게 된다. 뜻밖의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내가 그들 각자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었나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으로 뿌듯하고, 그들이 ‘와’하는 탄성과 동시에 팔짝 뛸 때는 내 몸도 짜릿해지는 것을 느낀다.
조금 전까지 난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감사해야 할 기회와 게임을 즐기고 성취감을 맛볼 순간들을 포기하려 했었다. 선물이란 단순히 비싼 물건을 사서 주는 치레가 아니라 사랑과 감사의 표현이다. 피곤하던 발이 갑자기 풍선처럼 가벼워지고 걸음이 빨라지고 힘이 난다. 내 가슴에 묻어두었던 과자 종합 선물세트를 꺼내 하나씩 나누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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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워싱턴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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