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족보 닷컴(ancestary.com)’등 DNA 검사를 통한 혈연관계를 찾도록 하는 회사들이 성업중이다. 흐뭇한 이야기들이 많다. 60년 전 미혼모가 돼 신생아를 고아원에 맡겼던 80세 노모가 이제 백발이 다된 딸을 처음 만나 껴안고 어쩔 줄 모르는 장면, 고아원에서 두 나라로 입양돼 헤어진 친형제들이 몇 십 년 만에 해후하는 장면 등등, 또 흉악한 범죄들이지만 범인이 발견되지 않아 영구미제 사건들로 제쳐두었던 것들이 가족의 혈통을 조사하던 중 진범이 발견돼 법정에 세우게 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의하면 DNA 검사는 전혀 상상할 수 없던 분야에서도 발생된다.
이태리의 가톨릭 신부였던 피에트로 토시는 54세 때 열 네 살짜리 소녀를 강간한 결과 에릭 자토니라는 아들이 태어난다. 그 피해자의 가족은 토시에게 에릭을 아들로 인정해달라고 애걸복걸했지만 토시는 냉정하게 거절한다. 2010년 에릭이 토시에 대해 친부확인 소송을 제기한다. 법원이 명령한 DNA의 검사결과도 에릭이 토시의 아들임이 판명됐다.
로마교황청은 토시의 주교로 하여금 그를 책망하고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상기시키도록 지시하면서도 신부직에서 해고할 것은 요구하지 않았단다. 토시는 2014년에 죽을 때까지 신부였다는 것이다.
토시 신부의 사건이 시사하는 것처럼 가톨릭 신부들의 부도덕행위로 태어나는 아들, 딸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타임스의 기사는 아일랜드의 빈센트 도일이라는 심리치료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가 28세가 됐을 때 자기 어머니로부터 그의 생부가 가톨릭 신부라는 것을 듣게된다. 그리고 그는 자기태생이 교회의 추문결과라는 내면의 수치감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신부들의 자식들을 돕기 위한 전 세계적인 지원조직을 만들게 됐다. 그 과정에서 그가 만난 가톨릭 여러 고위 교직자들 가운데 한 대 주교는 아이들을 태어나게 하는 신부들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는가에 대한 바티칸(교황청)의 내부문건을 보여주었단다. 그런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는 방증이다. 도일이 운영하는 웹사이트는 175개국으로부터 5만 여명의 사용자들이 있단다.
바티칸 대변인도 그런 내부문건이 존재한다는 것은 타임스지에 확인해 주었다는 보도다. 그리고 그 문건은 신부들이 수녀들이나 일반 신도들 사이에 아이들을 갖게 되는 경우 아이들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라고 권고한단다. 신부직에서 해고는 드문 모양이다. 그리고 또 아이들의 복리를 위해서도 신부직을 잃어 아버지로서의 가족 부양을 할 수 있는 마땅한 대안직장이 없으면 그것도 문제가 된다는 관점이 아이들의 외가들에서 제기되는 모양이다.
이번 주 부터 아동들에 대한 신부의 성적 만행 위기가 다루어지는 주교회의가 바티칸에서 열린다. 십대부터 성적폭행을 당한 피해자들도 상당수 회의장 부근에 몰려들 것이고 또 이태리와 인도 등지에서 신부들이나 주교들에게 강간당해 아이들을 낳았거나 또는 태아살인을 했다는 수녀들도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기한 도일 씨처럼 신부들의 자식들도 회의장 부근에서 데모를 할런지도 모른다.
가톨릭 교회의 위기다. 그 위기는 지난 주말 워싱턴 DC의 대주교에다가 추기경까지 지냈던 테오도르 매카릭을 신부직에서 조차 추방시킨 것으로 적나라하게 조명된다.
추기경이 무엇인가? 대주교 중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200명 안팎의 교황청 ‘왕자’들로서 추기경 회의에서 교황을 선출하며 그들 중에서 한 사람이 뽑히는 자리가 아닌가. 그와 같은 고위 교직자가 소위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듣는 가운데 10대의 소년들을 꼬여 성관계를 가져왔기 때문에 그 피해자들이 일생동안 악몽에 시달려 사람구실을 제대로 못하게 했다니까 흉악한 성범죄자가 아닐 수 없다.
또 매카릭은 신부지망학생들과도 비슷한 짓을 했다는 것인데, 심각한 것은 그의 악행과 비행을 그 주변사람들이 알면서도 수수방관했다는 사실이다.
성경에도 없는 교직자들의 독신 비혼을 교리로 삼은 가톨릭 교회의 역사는 교직자들의 성적일탈로 점철됐다. 지금으로부터 502년 전 가톨릭 신부였던 마틴 루터가 면죄부 판매 등을 포함한 교회의 비리 95개조를 교회 문에 붙여서 시작된 종교개혁 당시에 로마 교황이었던 알렉산더 6세는 보르지아란 부자 가문 출신인바 신부시절부터 여러 여자들과 관계가 있었으며 한 첩으로부터는 네 명의 아이들의 아버지가 됐던 사람이다. 알렉산더 6세의 부도덕한 생활이 루터의 종교개혁 주창의 동기 중 하나였다는 역사가들도 있다. 그러나 특히 그 교황이 엄청난 부자가문 출신이면서도 교황청의 건물보수와 미술품들의 구입을 위해 고안한 자금모집 방법에 루터가 실망하고 반기를 들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즉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이라도 교황청에서 발행한 면죄증서를 구입하면 천당에 갈 수 있다는 교리를 만들어 루터가 신부로 있던 독일지방에 까지 면죄부를 팔아 로마로 보내게 하는데 대한 비판이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루터는 나중에 수녀출신과 결혼하여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 가톨릭 교회의 위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301) 622-6600
<
남선우 변호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