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복잡한 문제가 생기면 나는 일단 잠을 청한다.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 그 문제를 계속 생각해봐야 머리만 아프기 때문이다. 설령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하더라도 좋은 솔루션일 확률은 떨어진다. 그럴 때 자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 경우에는 셋 중 하나의 현상이 일어난다.
첫째, 그토록 심각하던 문제가 그냥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해소돼 버리는 것이다.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아닌 것으로 되는 것, 이것 참 좋은 것이다. 쓸데없는 일을 문제로 삼는 것은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
둘째,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도 몸과 마음의 피로가 가시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을 의욕은 생겨난 상태다. 별 나쁠 것 없는 투자다.
셋째, 정말 멋진 솔루션이 자는 동안에 기적처럼 생각나는 것이다.
꿈속에서 해결책을 찾을 단초를 찾기도 한다. 또는 잠을 깨고 난 직후에 갑자기 샤워하다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뇌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잠을 잘 때도 우리의 뇌는 계속 활동한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 전에 골똘히 생각하다가 자게 되면 뇌는 그 문제를 계속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는 쉬고 뇌는 일하고. 이것 괜찮은 투자다.
어느 날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잠을 청한다. 침대에 누웠다. 베개에 머리가 닿고 조금 지났을 때다. 갑자기 이를 닦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자, 이제 고민이 시작된다.
“자기 전에는 이를 꼭 닦으라”는 치과 의사의 지시를 기억하는가. 어떤 행동이 6개월 이상 반복되면 습관이 된다. 그래서 이를 닦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살다 보면 처음에는 불편하지만 계속 반복하면 안 하는 게 오히려 더 불편해진다.
자, 지금 일어나서 이를 닦으러 가면 잠을 다시 자기가 힘들어진다. 좋은 솔루션을 만날 확률도 뚝 떨어진다. 그렇다고 이를 안 닦고 그냥 자면 잠은 잘 오겠지만 다음날부터 이를 안 닦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확률이 커진다.
자, 여러분은 그냥 하루 정도 건너뛰고 잘 것인가. 아니면 잠을 깨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닦으러 일어나 화장실로 갈 것인가. 즉 규칙을 지키는 것이 좋은가. 융통성 있는 것이 나은가.
나는 식탐이 많다. 그렇다고 미식가는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대식가다. 질보다 양이다. 물론 맛도 어느 정도 중요하지만 양이 부족하면 절대 안 된다. 어려서 아버님으로부터 “밥을 남기지 말라”는 특명을 하도 들어서 아예 귀에 못이 박혔다. 이제 우리도 살 만하게 됐는데도 아버님의 말씀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이것을 늘 변명 삼아 이야기했다.
“그 아버님의 말씀이 이제는 오랜 습관이 돼서 잘 안 고쳐져.” 그래서 내 또래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으면 항상 내가 제일 많이 먹는다. 좀 친한 친구가 나에게 경고를 준다.
“양을 줄여라.” 집에 있는 매니저도 나한테 여러 번 경고한 사실이다. “얼마만큼 줄여야 하는가”라고 물으니 “어느 모임에 가든지 거기 있는 사람의 평균 정도만 먹어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참 안 된다.
나는 안 된다. 그럴듯한 충고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식사가 나오면 정신없이 먹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절제(temperance)가 중요한 덕목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절제는 쾌락을 탐닉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철학박사를 했다는 사람이 그 자제가 안 되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 것은 소용없다. 실천해야 성과가 나온다. 영원한 진리다.
아들은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 절제를 나보다 훨씬 잘한다. 어느 날 도움을 구했다. “야 아들. 내가 다이어트가 안 된다. 어떻게 좋은 솔루션이 없을까. 잠을 자고 나도 솔루션이 잘 안 나온다. 좀 도와주라.” “아빠, 제일 좋아하는 것 좀 말해보세요.” “으음, 초콜릿, 아이스크림, 도넛, 사탕, 쿠키, 케이크, 믹스커피 위드 슈거, 단팥빵, 그리고 ….” “아빠 그만 말하셔도 돼요. 분석이 끝났으니까.”
그래서 나온 솔루션이 ‘단 것을 끊을 것’이다. 두 달 만에 한 7㎏이 빠졌다.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이르다. 요요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래도 다른 음식 양은 전혀 줄이지 않은 채 단 것만 끊었는데 이 정도면 적어도 원인분석만큼은 확실하게 된 것 같다. 적당하게 줄이는 것은 힘들지만 뭐 하나라도 똑 부러지게 끊는 것은 차라리 쉽다.
아 참, 탕수육은 먹는다. 그것까지 양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질문 하나 던지겠다.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인가. 깨지라고 있는 것인가. 강연 나가서 이렇게 질문하면 대부분 다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라고 답한다.
특히 군인·공무원·선생·금융인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틀렸다. 규칙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조건이 하나 있다. 그 규칙은 아무나 깨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규칙을 깰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그 규칙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그 규칙을 지키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한 사람만이 깰 수 있다.
그래야 ‘요요’ 현상도 없고 하나의 예외가 만들어지면서 그 규칙 자체가 붕괴돼 버리는 ‘미끄러운 빙판 언덕길’ 현상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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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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