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용의 민주화운동 비망록6
▶ 동아일보 사태와 종교계·군부의 반독재 투쟁
한민신보에 실린 조지 오글 목사 강연회 기사.
정기용 자유광장 대표의 회고록을 연재한다. 그는 굴욕적인 한일회담에 반대한 6.3사태를 계기로 한국 현대사에 새겨진 길고 긴 저항의 산맥을 종주했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갈구한 시대에서 그는 화려한 주역은 아니었지만 번민하는 지식인이자 행동하는 충실한 투사였다. 따라서 그의 회고는 온전한 개인사라기보다 주관적인 대한민국의 현대사이며 미주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덧붙여 그가 산수(傘壽)의 세월 동안 주유(周遊)해온 애주와 명사들과의 교유의 흥미로운 기록이다.
-일본과 미국의 반(反) 박정희 분위기
문호 괴테가 그랬던가.
“한 가닥 머리카락조차도 그 그림자를 던진다.”
하물며 한국 민주화의 상징이 된 김대중 납치사건의 여파는 컸다. 한국은, 아니 박정희 정권은 국제적으로 완벽히 고립됐다.
일본의 여론은 들끓었다. 자국 내에서 발생한 납치사건에 주권을 침해당했다며 반(反) 박정희 분위기가 고조됐다. 우쓰노미아 도쿠마(宇都宮?馬), 덴 히데오(田英夫) 참의원 의원은 미국을 오가며 김대중 구명운동에 뛰어들었다. 두 사람을 필두로 20여명의 의원은 규탄 성명서를 내고 김대중 구출위원회를 결성했다.
일본의 주요 언론들과 일본의 한민통에서 발행하는 ‘민족시보’와 월간지인 ‘한양’, 조총련계의 ‘조선신보’ 등도 박정희 정권의 납치만행을 극렬히 비난했다.
‘문예춘추’의 연재물인 ‘TK生의 편지’는 한국의 실정을 속속들이 고발하고 각종 정보를 폭로했다. 중앙정보부는 필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으나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박정희의 간담을 서늘케 한 TK생의 필자는 사상계 주간을 하다 도쿄여대 교수로 있던 지명관 교수로 훗날 밝혀졌다.
그 무렵 미국인들도 한국 민주화 투쟁에 참여했다. 제임스 시노트 신부, 조지 오글 목사, 패리스 하비 목사, 루 아이비, 버지니아 풋, 문동환 목사의 부인인 패이 문과 나중에 주일 대사를 지낸 애드윈 라이샤워 하버드대 교수, 하버드대 도서관장을 지낸 에드워드 베이커,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도널드 프레이저 하원의원 등도 직간접적으로 투쟁 대열에 함께 했다. 프리랜서 기자인 필 스탠포드는 미국내 KCIA 활동을 파헤치며 집중 보도했다.
-WP에 투고
국내외적인 도전에 직면한 박 정권의 패악은 극에 달했다. 진실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지자 기자들은 수난을 당했다. 동아일보 탄압 사태도 이 무렵 일어났다. 동아일보는 백지광고로 박 정권에 맞섰다. 워싱턴 한인들은 동아일보 기자들의 의기(義氣)에 감동하며 머나먼 미국에서 돈을 보내 격려 광고를 냈다.
나는 2월4일자 동아일보에 투고를 해 언론 탄압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어찌 해서 우리는 세계 여론에 우리를 지켜달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였는가. 이것이 누구의 책임인가? 이제 우리 모두는 분노를 아는 국민이 되어야겠다.”
앞서 1월30일에는 워싱턴 포스트 지에 ‘의미 없는 국민투표’란 제목으로 글을 게재했다. 언론을 탄압하고, 애국인사를 투옥하고, 반대의사 표시조차 막은 채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하겠다는 박 정권의 획책은 가소로운 짓에 불과한 슬픈 코미디라는 요지였다.
-조지 오글 목사의 워싱턴 강연회
한국 가톨릭의 김수환 대주교가 1969년 한국인 최초로 추기경(Cardinal)으로 서임된 후 워싱턴을 방문했다. 김 추기경은 하나님의 인권에 대한 보편적 진리를 여러 번 강조하며 박 정권의 혹독한 인권탄압과 정보정치를 비판했다.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태를 계기로 워싱턴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는 조지 오글 목사 강연회를 개최했다.
1975년 1월31일 워싱턴의 메이플라워 호텔에는 200명의 한인들이 모였다. 정용철 목사의 기도로 시작된 행사는 임창영 동아구출위원장의 인사, 정등운 목사의 강사 약력 소개에 이어 오글 목사의 강연, 이웅희 동아일보 특파원의 답사, 모금 등의 순으로 폐막됐다. 정용철 목사는 워싱턴한인복지센터를 설립한 분이며 서울신문 사장을 지낸 정등운 목사는 정준영 YMCA 총무의 부친이다.
워싱턴을 방문한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했다. 왼쪽 두 번째가 필자.
전규홍 전 서독대사, 김웅수 전 6군단장, 박문규 목사, 김순경 교수, 고세곤 씨는 무대에 올라 박 정권을 규탄했다.
강사인 조지 오글(George E. Ogle, 한국명 오명걸) 목사는 1954년 한국에 들어와 20년간 노동자들을 위해 일한 감리교 목사였다. 2차 인혁당 사건의 고문실태를 알리다 1974년 12월14일 추방당했다.
당초 강연 주제는 ‘동아일보 구출 문제’였지만 중앙정보부를 고발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오글 목사는 열변을 토했다.
“미국에서도 몇 십 년 전에 깡패들이 시장실이나 신문사에 들어가 협박을 하고 불법적인 행동을 한 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깡패들이 한 일이지 권력자가 한 일은 아닙니다. 박 정권의 언론탄압이나 국민협박은 깡패 짓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박 정권은 깡패집단입니다.”
-최덕신의 숨겨진 망명 이유
군 출신 인사들도 반(反) 독재 민주화운동에 합류했다. 6군단장을 지낸 김웅수 가톨릭대 교수, 최덕신 전 외무장관, 최홍희 전 논산훈련소장, 최석남 전 육군 통신감,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용운 제독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독립군 가정에서 태어난 김웅수 장군은 6.25 당시 2사단장으로 인민군을 막아냈으며 6군단장 재임 시 5.16군사정변이 일어나자 군의 정치개입을 반대하다 투옥된 강직한 군인이었다. 강영훈 전 총리의 손위처남이기도 하다. 그는 금도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군 출신으로 자칫 정치활동을 한다는 오해를 살까 단체에서 직함도 맡지 않으려 했다.
최덕신(崔德新)은 복잡한 얼굴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독립운동가인 최동오의 아들로 광복군에도 참가했으며 6.25 전쟁 때는 8사단과 11사단장으로 참전했다. 5.16 군사정변 직후 외무부장관과 서독 대사, 천도교 교령도 지냈다.
그가 망명을 하게 된 데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공해방지시민협의회란 시민단체가 있었다. 4.19 혁명 직전에 서울대 학생회장이던 이창재가 사무총장이었다. 박 정권과 노선 차이가 있던 이 단체를 최덕신이 후원해준 게 박정희의 심기를 거슬렸다. 또 천도교 교령인 최가 재단 공금 유용문제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박정희가 도와주지 않자 쌓인 서운한 감정도 작용했다. 박정희와 불화를 겪던 그는 미국, 서독, 일본 등을 전전하며 귀국하지 않다 1977년 11월 망명했다.
-최덕신과의 결별
그는 영어는 물론 국제공용어인 에스페란토 어에도 능통했다. 손아래 매제는 오학근 씨다. 오 씨의 부인은 최정란 씨인데 둘은 이혼하고 말았다. 그 후 최정란은 CIA 요원이란 말을 흘리고 다녔는데 네팔을 방문했다가 변사체로 발견됐다. 범인은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
망명 전부터 최덕신은 메릴랜드 실버스프링에 사무실을 냈다. ‘배달민족회’란 간판을 내걸었다. 그는 내게 이 단체의 운영을 맡겼고 난 기꺼이 수락했다. 한 달여 뒤쯤, 그가 독일을 다녀온다며 떠났다. 나는 그가 비밀리에 방북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1975년 1월30일 내가 워싱턴 포스트 지에 쓴 기고문.
그런데 최덕신이 미국으로 돌아온 후 나와 언쟁을 벌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내가 워싱턴 포스트 지에 쓴 ‘의미 없는 국민투표’란 기고문 때문이었다. 그 글을 읽은 최는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프레지던트 박이 뭐냐.”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표현한 게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나 보다. 나는 항변했다. “우리가 아무리 반독재 운동을 해도 호칭은 제대로 써야 하는 것 아니냐.” 사상적 차이를 절감하고 그와 단호히 결별해버렸다.
최덕신은 북한을 방문한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6.25 때 납북된 부친의 묘소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방북한 그는 애국열사릉에 잘 모셔져 있는 최동오의 묘를 보고 마음이 바뀐 것으로 전해진다. 부친 최동오는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독립 운동가였다.
북한 당국의 극진한 대접을 받은 그는 1986년 9월 아예 북한으로 이주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등 고위직을 지냈다. 물론 망명 후 친북으로 돌아선 인물은 그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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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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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자기대우해주면 거기가 어디든 사는거보면 다속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