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술밥간에 자리를 함께하며 오간 이야기가 혼자만 듣기 아까워 옮겨본다. 오래전 인간이 땅에 최초의 포도를 심고 있었다. 이를 본 악마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인간에게 묻자 땀을 닦으며 사람은 우쭐하며 대답한다. “이렇게 심고 거름을 주면 가을엔 탐스러운 열매가 생겨, 그 열매의 즙은 더 일품이라고..…” 이에 악마도 자기가 돕고 그 열매와 즙을 함께 나누자고 제안한다. 그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악마는 포도나무를 잘 자라게 하기 위해 거름을 주기로 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악마답게도 그가 가져온 거름이 또 해괴망측했다.
악마는 양과 사자와 원숭이 그리고 돼지를 몰고 와서 그 짐승들을 차례로 죽이고는 그 피로 포도나무의 땅을 적시니 그 땅이 참으로 비옥하였다. 나무는 마침내 성장하여 가지마다 열매를 맺었고 그것으로 포도주를 만들었으니, 마시면 어떤 이는 양처럼 온순해지고 또 어떤 이는 사자처럼 포악해졌으며 어떤 이는 원숭이처럼 재주를 부리다 웃고 떠들고 나중에는 돼지처럼 토하고 더러운 짓을 하는 자도 있었다.
물론 탈무드에 나오는 술의 기원과 그 경계에 관한 비유다. 그런데 이를 들은 우리 중의 지인이 혼잣말처럼 토로한 것이 예상치 못한 큰 반전이 되어 우린 모두 왁자하게 밥상을 두드리는 큰 웃음을 주었다. 그 분의 솔직한 토로는 “근데 술만 마시면 우리 남편은 왜 개가 되지?” 그렇다, 요즘 말로 좌중이 뒤집어지는 <ㅋㅋ> 모먼트였다. 물론 농담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듯 인류사를, 함께 해온 동물들에 비유하여 곧 잘 자신들의 의사를 투영하곤 했다. 여북해야 모든 해에 12가지의 짐승들과 대입시켜 사람의 일과 형편을 설명하겠는가…. 올해만 해도 돼지해라고해서 작년에는 또 용이라하여 필경 내년에는 쥐와 관련하여 수많은 덕담이 쏟아질 것이다. 이왕 그렇다면 나도 아까 나온 원숭이 이야기를 한번 얹어보려 한다.
옛날 인도의 파량나성(波良奈城)에 수십 마리의 원숭이가 살고 있었다. 밤에 먹이활동을 하던 원숭이 무리가 그 달빛의 위력를 익히 알고 있었다. 칠흑 같은 밤, 어둠을 물리치는 달은 그것이 덩실하건 초승이건 실로 그들이 평생을 거쳐서라도 탐할 그 무엇이었으며 움켜쥘 수 없었기에 동시에 경외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늘에만 있던 달빛이 어느 순간 우물안에도 존재한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자,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원숭이가 무리를 부추킨다. 저 달만 있으면 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먹이활동을 할 수 있으며 우리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으리라고…..
이에 모든 원숭이가 우물에 비친 달빛을 건져내려 꼬리를 잡고, 꼬리 잡힌 원숭이는 다른 원숭이의 꼬리를 잡아 우물 밑 일렁이는 달빛을 사냥하려 내려 가고 있었다. 이윽고 모든 원숭이가 사력을 다해 팔과 꼬리를 뻗어 우물에 닿으려는 순간, 그만 비극은 벌어졌다.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거기에 의지해 우물 안으로 내려가던 원숭이들이 일제히… 물에 빠져 죽게 되었다.
기록은 전한다. 원후취월이라 하여 원숭이가 우물 속 달을 잡는다는 뜻으로 동진(東晉)의 불교경전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니까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 분수도 모르고 허상을 쫒으면 자기의 목숨까지 잃는다는 뜻 함 이리라. 이 일화가 연상시키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불교를 숭상하던 고려가 유교를 천방한 조선으로 하루 아침에 바뀌었지만 나라 이름만 바뀌었을 뿐 사실상 백성과 조정도 당시에는 불교에서 위로를 받고 있었다. 실제로 세종의 정실인 소헌왕후가 죽자 갑자기 어머니를 잃은 수양대군이 부처의 일생을 아름다운 서사적 구조로 지었고 한글로 그 해석을 달아 어머니 영전에 올린 것이 석보상절이다.
이를 본 아버지 세종은 그것이 기특하여 본인도 월인천강지곡이란 노래를 만들어 부처의 공덕이 마치 천 개의 강물에 비추어지는 달빛처럼,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오랫동안 구현되기를 기원하였고 뒷 날 수양대군이 공교롭게도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등극하는 세조가 된 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이야기다.
이제는 우리들 이야기다 새해가 되었고 음력설이 지나갔다. 대보름이 되었고 달은 스스로 빛을 발하지 못하지만 빛을 받아 그 음영을 반사하여 여전히 이 땅을 비춘다. 달은 자전과 공전 주기가 정확하게 같아서 지구와 함께 움직이므로 달의 뒤통수를 본 인류가 아직 없다. 하지만 달은 인류사와 더불어 수많은 애수를 지니고 있어 인간에겐 더욱 애처로운 아이콘이며 초상인 것도 엄연하다.
계수나무와 장독대 위 합장하는 한 사발의 정한수와 우물 속 원혼이 된 원후취월의 미련하며 술과 어우러진 태백의 낭만과 시대를 넘어 은은하게 비추는 월인천강의 뜻과 박꽃 벌어지던 초가 이엉에도, 행여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와 저 달 보고 울어보는 허튼 맹세와 다짐 받은 사랑하며, 태양 따위한테는 감히 속내를 뵐수 없는, 사람의 노오란 온기가 거기엔 박혀 있다.
정월도 대보름이니 태양력으로는 어느덧 삼월이다.
<
김준혜 부동산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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