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964년 미국의 요청으로 영화 ‘플래툰’ ‘지옥의 묵시록’이 그리는 참혹한 베트남전쟁(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10년간 4차에 걸쳐 30만명을 파병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협약과 경제개발을 추진하기 위한 외화 획득이 참전을 결정하게 된 주된 동기였지만 이념적 동질성, 다시 말해 베트남이 무너지면 공산화가 도미노처럼 확산돼 한국도 위험하다고 봤던 것도 참전의 한 이유였다. 하지만 1973년 미군은 베트남에서 전격 철수하자 박정희 전대통령은 동맹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가 핵 개발에 나선 가장 큰 이유이다. 군사독재정권이라는 태생적인 한계가 핵개발의 정당성을 희석시켜 결국 미국의 온갖 방해와 압력으로 포기해야 했지만 핵개발의 목적은 분명했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제 2차 북·미회담 일정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27일로 확정 되었다. 공교롭게도 박정희 전대통령이 미국에 대한 믿음을 잃은 같은 장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똑같은 믿음을 잃게 될 확률이 농후하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미사일 생산라인 폐기, 영변을 제외한 다른 핵시설 단지의 폐기 등 ‘미국에 대한 위협 제거’ 쪽으로 회담 합의문이 나올 확률이 높다. 미국은 주한, 주일 미군과 그 가족 그리고 미국 본토를 북한 핵미사일 위험에 노출시키려 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사령부 핵전략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국제관계의 현실주의는 냉혹하여 내일은 오늘과 같지 않을 수도 있다. 국제환경의 변화로 미국이 발을 뺄 수 있다는 사실을 한국은 인지해야 한다. 지도자는 미래의 위험을 준비해야 한다. 미국이 쇠퇴하고 중국이 부상하는 날에는 한국은 안보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1950년대 초, 프랑스는 나토의 핵우산 에 보호받는 공식 미국의 동맹국이었다. 미국으로부터 안보 보장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드골 대통령은 미국을 믿지 못해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에 점령당한 경험과 1956 년 미국의 수에즈운하 포기, 소련의 위험으로부터 직면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프랑스의 불안은 미국의 믿음을 뛰어 넘었다. 드골의 인식은 옳았다.
중국과 북한이 핵무장한 현실에서 한국이 심각한 실존적 위협으로 부터 안보를 지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은 무엇일까? 핵무기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안전보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잠재적 어려움을 무시하고 핵무장 쪽으로 갈 수 밖에 없다. 핵무기가 국가간 충돌을 저지시키는데 미치는 영향은 분명하다. 핵무기를 보유하는 순간 그 파괴력으로 인해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낮아진다. 핵시대의 전략은 전쟁의 억지(deterrence) 에 초점이 맞춰 졌다. 핵무기가 발명된지 70년이 다 돼 가지만 핵보유국끼리 전쟁을 벌인 적은 없었다. 키신저 박사는 ‘핵무기와 외교정책’(Nuclear Weapons and Foreign Policy)이라는 1957년 발행 저서 에서 국가들이 핵무장을 하는 것은 ‘묵시적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핵개발이 ‘더는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인 지점(Point of No Return)’을 지났다. 북한의 핵무장으로 ‘한반도 비핵화’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가 돼 버렸으며 오히려 비핵화를 추구하다가 한반도가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 중국은 끊임없이 한반도를 자신의 영향 아래에 두려고 해왔다. 중국이 미국도 없고 스스로를 지킬 최후의 한 수 조차 없는 한국의 주권을 온전히 존중해 줄리 만무하다. 핵개발 주장의 핵심은 핵무기의 사용이 아니라 핵보유를 통한 전략적 전쟁 억지력이다. 냉전기 핵무기를 보유한 강대국들 간 전면전을 막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것이 바로 상호확증파괴와 공포의 균형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것이 실제로 전쟁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한국의 핵무장 정당성 논거는 무엇일까? 첫째, 북한의 핵은 한반도의 세력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 둘 째, 북한이 미 본토를 타격할 핵미사일 능력이 있는 한 미국의 핵확장 억지력에 대한 신뢰가 소멸될 수 도 있다는 점이다. 셋째,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중국·러시아·일본에 대한 역사적인 불신 때문이다.
핵개발을 마음먹은 국가는 국제사회의 제재만으로는 결코 멈출수 없다는 명제는 핵무장에 뛰어 들었던 모든 국가들에서 이란과 리비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증명되어 왔다. 사실 국제사회가 핵무기의 확산에 긍정적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역설적으로 핵보유에 따르는 국제적 제재가 두려워서 핵개발을 포기했더라면 영국과 프랑스는 지금과 같은 발언권을 얻지 못했을 것이고, 중국이 세계의 패권국으로 발돋움하는 일도, 인도가 중국과 경쟁할 차세대 주자로 떠오르는 일도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국제사회 에서 한 국가의 성공 역시 위험을 감수하면서 선택하고 도전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
이형국 정치철학자, VA>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