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칼로 꼭지·바닥 썰어내고 취향 따라 두 방법으로 껍질 제거
▶ 과육 즐겼다면 이제 껍질의 시간, 설탕·물엿 등 넣고 함께 불에 졸여
오렌지 겉껍질을 강판에 곱게 갈아 파운드케이크 반죽에 함께 넣어 구우면 향과 맛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
자른 오렌지 껍질을 설탕과 물엿 등을 넣은 물에 끓여 졸이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오렌지 껍질 설탕 조림이 완성된다.
조린 오렌지 껍질은 잘게 다져 초콜릿 케이크 등에 살짝 올려 활용하면 좋다.
오렌지는 귤에 비해 껍질이 두껍고 단단해 손으로 까기가 쉽지 않은 과일이다. 결대로 칼을 사용해 손질해야 껍질부터 속살까지 알뜰하게 즐길 수 있다.
설날 오후, 극장에서 ‘알리타: 배틀엔젤’을 보았다. 개봉 첫날 3D 아이맥스를 예매해 볼 정도로 기대를 품은 영화였지만 실망스러웠다. 시대에 뒤떨어진 여성관과 엉성한 서사가 훌륭한 컴퓨터그래픽(CG)이나 액션을 받쳐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오렌지가 등장하는 영화 초입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고철더미에서 알리타를 주워 재조립한 이도 박사는 미각 기능도 시험할 겸, 막 눈을 뜬 사이보그에게 오렌지를 내민다. 갓난아기처럼 세상에 대한 정보며 과거의 기억이 없는 알리타는 껍질째 오렌지를 베어 물고는 쓴맛에 인상을 찌푸린다. 미각의 걸음마를 내디딘 알리타에게 이도 박사는 ‘이렇게 먹으면 더 맛있다’고 가르쳐 주며 손으로 오렌지 껍질을 벗겨 과육을 내민다. 그렇다, ‘과일은 껍질과 함께 먹어야 제 맛’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다. 다만 사과나 자두처럼 껍질과 속살 사이에 특유의 맛이 숨어 있으며 껍질의 약한 쓴맛이 과육의 단맛 및 신맛과 어우러지며 균형을 잡아 주는 과일이 그럴 뿐이다. 오렌지를 비롯한 시트러스 유와는 상관이 없다.
그런데 26세기에도 오렌지를 손으로 꼭 까야 할까? 집에 돌아와 마침 냉장고에 있던 오렌지를 꺼내 먹으며 생각했다. 뇌를 뺀 신체 모든 부위를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 미래치고는 앞뒤가 잘 안 맞는다. 심지어 손이나 발 대신 칼이며 갈퀴를 장착한 사이보그로 넘쳐나는 영화라 더더욱 설득력이 떨어졌다. 무엇보다 손만으로 오렌지를 까는 게 가장 불편하고도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귤이 있으니 우리에게는 시트러스 유 과일의 껍질을 손으로 벗겨 먹는다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심지어 ‘껍질 까는 거 귀찮아서 과일 안 먹는데 귤만은 먹는다’고 자랑인 양 말하는 사람도 있을 지경이다. 하지만 오렌지는 좀 다르다. 시트러스 유의 박치기 공룡이랄까. 물론 오렌지가 끼리끼리 박치기를 하며 여흥을 즐긴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귤에 비하면 껍질이 상당히 두꺼운 데다가 확연히 다른 여러 켜로 이루어져 있으며, 과육과 밀착되어 있으니 손으로 당겨 벗기기가 쉽지 않다. 손톱이 잘 안 들어가는 경우도 많고, 힘줘서 벗기다 보면 과육도 함께 뜯겨 나와 보기도 싫고 즙도 줄줄 흐를 수 있다.
두꺼운 오렌지 껍질 벗기는 법
오렌지 사정이 이러하니 26세기까지 갈 것도 없이 지금 당장 칼을 써 껍질을 벗기는 게 우리에게도 또 과일에도 좋다. 방법도 무려 두 가지나 있다. 일단 둘 다 출발점은 같다. 오렌지를 도마에 눕혀 올리고 잘 드는 칼(아주 중요하다)로 꼭지와 밑부분을 과육이 보이는 깊이까지 썰어낸다. 오렌지는 공처럼 둥근 과일이므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칼을 안 쓰는 손으로 꽉 누르며 껍질을 썰어 낸다. 이제 오렌지 껍질을 본격적으로 벗겨 보자. 첫 번째 방법은 칼을 최소한으로 쓰고 싶다거나, 어쨌든 ‘손맛’을 느끼며 껍질을 벗기고 싶다는 이들에게 바람직하다. 오렌지를 칼 쓰는 반대쪽 손에 가볍게 쥔다. 평평하게 썰어 냈으니 꼭지와 바닥 어느 쪽이 위를 보아도 상관 없지만 과육이 대체로 꼭지에 많이 드러나 다음 단계에서 약간 더 편하다.
이제 잘라낸 면에 과일의 둥근 곡선을 따라 껍질에 칼집을 넣는다. 잘라낸 면으로 흰 속껍질의 두께를 파악할 수 있으니 그에 맞춰 과육까지 칼날이 파고 들어가지 않도록 조금만 신경을 쓴다. 12, 3, 6, 9시 방향으로 칼집을 넣으면 일단 4등분이고, 그 사이를 반으로 가르면 8등분이 된다. 이제 칼을 내려놓고 껍질을 과육에서 떼어내듯 벗겨낸다. 영화에서처럼 손으로 뜯어내는 것보다는 훨씬 깔끔하게 떨어질 것이다. 손으로 과육을 하나씩 떼어내 먹어도 좋고, 잘 안 떨어지면 칼로 적당히 갈라 먹는다. 껍질은 버리지 말고 일단 남겨둔다.
두 번째 방법은 조금 더 섬세한 칼질이다. 꼭지와 바닥을 썰어낸 오렌지를 도마에 세운다. 칼 쓰는 반대편 손으로 윗면을 잡고 역시 오렌지의 곡면을 따라 껍질을 베어낸다. 그렇다. ‘세심한 맛’을 (감사하게도) 꾸준히 읽어주신 독자라면 일전에 살펴본 바 있는 파인애플(2018년 12월 8일자)의 껍질 벗기기와 요령이 같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다만 오렌지는 파인애플에 비해 훨씬 작은데다가 더 둥글기 때문에 좀 더 천천히 칼을 움직인다. 속껍질과 과육이 맞닿는 부분을 깎아낸다는 기분으로 슬금슬금 칼을 움직여 썰어낸다. 힘을 많이 주지 않고도 깨끗하게 썰어낼 수 있도록 칼이 아주 잘 들어야 한다. 그렇게 껍질을 웬만큼 썰어 냈다면 손에 쥐고, 칼을 가볍게 남아 있는 속껍질을 깨끗하게 도려낸다. 마지막으로 오렌지를 손에 쥐고 밑에 공기를 하나 받친 뒤 속껍질의 사이사이로 칼을 넣어 속살만 가지런하게 베어내 담는다. 다 베어내고 남은 껍질은 즙이 많이 남아 있으니 그냥 먹어도 좋고, 질겨서 내키지 않는다면 즙을 짜 공기에 함께 담는다. 이제 포크로 과육을 한 쪽씩 깔끔하게 집어먹고 고인 즙은 후루룩 마신다.
오렌지 껍질 100% 활용법 과육을 깔끔하게 발라 먹었다면 껍질의 가능성을 살펴볼 때다. 비록 알리타는 껍질을 날로 먹어서 쓴맛만 보았지만 사실 껍질도 여느 시트러스가 그렇듯 나름의 독자적인 가치를 품고 있다. 일단 이미 레몬 절임(2018년 12월 27일자)을 하면서 살펴보았듯 겉껍질만 강판으로 곱게 갈아내 각종 음식에 오렌지의 정수를 불어넣을 수 있다. 레몬이나 라임과 비교하자면 강렬함은 다소 떨어지지만 특유의 부드러운 향을 지니고 있으므로 일단 샐러드 드레싱에 잘 어울리며, 제과제빵을 손수 즐기는 이라면 파운드케이크나 쿠키 등에 표정을 불어넣어 준다. 강판으로 갈아 낸 자체만으로도 곱고 부드럽지만 질감이나 맛보다 향을 북돋는 데 쓰이므로 씹히지 않도록 칼로 한 차례 더 다져 쓴다.
오렌지의 겉껍질은 물론 박치기 공룡에 비유했을 정도로 두꺼운 속껍질까지도 나름의 쓸모가 있다. 대체로 우리는 유자를 비롯한 시트러스 유를 설탕에 재워, 즉 청을 만들어 향과 단맛이 어우러지도록 묵혀 차로 마시거나 잼 대용으로 먹는다. 비슷한 방식으로 아예 껍질 자체를 오롯이 먹을 수도 있다. 설탕으로 쓴맛을 다스려 균형을 잡는다는 면에서 각종 청류와 접근법은 같지만 좀 더 노력을 들여 만들어야 한다는 차이점도 있다. 대신 청처럼 오래 묵히며 기다리는 번거로움이 전혀 없어 만들어 금방 먹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그래서 첫 번째 방법으로 벗겨낸 오렌지 껍질을 버리지 않고 남겨 두었으니, 도마에 올려 썬다. 더 질긴 오렌지의 바깥면이 도마에 닿는 게 한층 더 썰기 수월하다. 폭 0.5~0.7㎝로, 똑같이 익을 수 있도록 최대한 고르게 썬다. 무생채를 연상하면 한층 더 쉬운데 다만 소금에 절여 무쳐 먹지 않고 설탕에 조릴 뿐이다. 원래 쓴맛을 책임지는 흰 속껍질을 한 켜 벗겨내는 게 정석이지만 한 차례 더 거쳐야 하는, 아주 쉽지는 않은 켜 벗겨내기를 감안하면 그냥 만들어도 큰 무리는 없다. 일단 넉넉한 크기의 냄비(재료가 다 담겨도 3분의 1에서 절반 이상 채워지지 않는)에 담아 잠기도록 물을 붓는다. 중불에 올려 부글부글, 본격적으로 끓기 시작하면 약불로 줄여 은근히 15분 삶은 뒤 건져 채에 받쳐 찬물로 말끔히 헹궈 물기를 뺀다.
오렌지 껍질에서 물기를 빼는 동안 냄비에 물, 설탕, 물엿, 즉 시럽에 소금을 더해 중불에 올려 끓인다. 오렌지 한두 개 분으로 만들면 양이 적어 맛이 제대로 들지 않으므로, 껍질을 썰지 않은 채로 밀폐 봉투에 담아 냉동실에 보관해 두었다가 한꺼번에 끓이면 좋다. 나는 한국에서도 ‘파리의 부엌’ 등의 책을 낸 바 있는, 파리 거주 미국인 요리사 데이브 리보비츠의 레시피를 참고해 만들어 쓴다. 오렌지 껍질 네 개 분을 기준으로 물 500㎖, 설탕 200g, 물엿 1큰술, 소금 한 자밤의 비율이다. 시럽이 끓기 시작하면 최대한 약한 불로 줄여 25분가량 졸인다. 시럽이 투명함을 유지하는 가운데 온도를 쟀을 때 섭씨 110도이면 맛이 든 것이니 불에서 내려 그대로 식힌다. 오렌지 껍질 설탕 조림(candied orange peel)이 완성되었다.
초콜릿과도 찰떡궁합 엿 대신 시럽으로 조렸다는 것만 다를 뿐 전통 음식인 정과와 다를 게 없으니 그냥 손으로 집어 먹어도 좋다. 달콤쌉싸름한 맛이 효과적인 입가심 거리로 제 몫을 하는 가운데, 조린 오렌지 껍질은 잘게 다져 각종 디저트의 품격을 간단히 올리는 데 매우 유용하다. 일단 아이스크림에 조린 오렌지 껍질을 곱게 송송 다지듯 썰어 고명으로 올려 주는 것만으로 최대의 효과를 끌어낼 수 있다. 아이스크림의 단맛 위에 조린 껍질의 단맛이 한층 더 깔리는 한편 부드러움(아이스크림)과 약간의 끈적함(오렌지 껍질)이 자아내는 질감의 대조도 좋다. 바닐라는 고전이니까 묻고 따지고 할 것 없이 잘 어울리고, 초콜릿은 전통적으로 오렌지와 말 그대로 ‘하늘이 맺어 준 인연’이다. 카카오콩의 대지와 풀의 향이 오렌지의 새콤달콤함과 아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지든 조리든 오렌지 껍질을 적극적으로 첨가한 초콜릿이 많고, 아예 조린 오렌지 껍질에 초콜릿을 녹여 입힌 서양의 전통 디저트가 따로 존재할 정도이다.
설탕에 조렸으므로 오렌지 껍질은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유리병이나 밀폐용기에 담아 냉동 보관하면 두 달까지는 거뜬하다. 요리의 세계에서 동물에게는 ‘머리부터 꼬리까지’라는 철학을 가장 이상적이라 친다. 생명을 앗아 먹는 만큼 고기뿐만 아니라 문자 그대로 머리부터 꼬리까지 전체를 다 먹을 수 있도록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한국의 머릿고기나 순대, 서양의 소시지 같은 음식 문화가 발달한 것인데, 오렌지 같은 과일도 같은 개념으로 ‘껍질부터 속살까지’ 전부 알뜰하게 즐길 수 있다.
오렌지는 과육과 껍질을 함께 조려 만드는 잼의 일종인 마멀레이드를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과일이다.
오렌지와 마멀레이드 잼의 울타리 안에는 몇몇 다른 이름이 공존한다. 그저 ‘잼’이라고 일컬어도 먹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지만 과일에 따라 끓이고 졸인 결과물을 부르는 명칭이 따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오늘 살펴본 오렌지가 가장 대표적인 예로 ‘마멀레이드’라 부른다. 과연 보통의 잼과 어떻게 다른 걸까? 마멀레이드의 역사는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원래 모과와 비슷한 열매인 마르멜로를 꿀과 조려 만든 음식을 일컫는 명칭이었다. 근대를 지나 현대에서 마멀레이드는 즙과 과육은 물론 껍질도 함께 졸여 만드는 잼의 문법으로 자리잡았다. 그런 조건에 가장 잘 맞는 과일이 오렌지를 비롯한 시트러스 유이므로 ‘마멀레이드=오렌지’의 공식이 수립된 것이다. 마멀레이드는 영국의 대표적인 음식이자 차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았는데, 단맛과 신맛만큼이나 쓴맛도 두드러지는 스페인 남부의 세비야 오렌지로 만든 걸 최고로 친다. 고를 때에는 최소한의 재료, 즉 오렌지와 설탕 외에 펙틴을 활성화시켜 주는 레몬즙 정도가 들어간 제품을 우선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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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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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 엄청나요 겉이 농약으로 하얀데 살작 닦은것 안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