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에서 시험에 직면한 상태다.
혐오스러운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퇴출을 지원하되 미국을 ‘제국주의’로 여기는 정서를 자극해 행여 역풍이 일지 않도록 차단할 수 있는 외교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수구세력이 위협을 느껴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하지 않게끔 유도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전환을 지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미국은 다른 국가들과 힘을 합해 지난 10년에 걸쳐 사실상 완전히 파괴된 베네수엘라의 재건을 도와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신중한 외교와 다자주의, 요란스런 으름장이 아닌 조용한 압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민주당에게 커다란 도전을 안겨준다. 과연 민주당은 베네수엘라에 관해 제 목소리를 내는 적절한 외교정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나온 조짐은 우려스럽다. 민주당의 새로운 외교정책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제일주의’ 정책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반사적 고립주의의 성격을 띠울 수 있다.
하와이 출신의 툴시 개버드 하원의원은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베네수엘라인들이 스스로 그들의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네소타의 일한 오마르 하원의원은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대신해 우리가 직접 다른 국가들의 지도자를 골라선 안 된다”고 말한다.
버몬트 주 출신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제3국의 정권교체에 개입하거나 쿠데타를 지지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확실하게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런가하면 좌파의 영웅인 노암 촘스키와 70명의 학계인사들 및 운동가들은 베네수엘라의 위기가 미국의 책임이라고 비난하는 서한에 공동으로 서명했다.
그들이 직면한 문제들 가운데 대부분이 베네수엘라 정부에 의해 야기됐다는 사실을 구태여 설명해줘야만 하는가? 유고 차베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지난 수년간 베네수엘라 국민에게는 그들의 미래나 지도자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는 기본적인 팩트 조차 모르는가 말이다.
지금의 정권은 선거조작과 야당탄압, 언론통제와 시위대들에 대한 초강경 진압에 의지해 간신히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 1월 한 달 동안 친 마두로 세력은 최소한 30명을 죽이고 850여 명을 체포했다.
차베스-마두로 정권은 한때 라틴 아메리카의 최대 부국이었던 베네수엘라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100만%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이곳의 물가는 대략 19일마다 2배로 뛴다.)
지난 2015년 이후 약 300만 명의 베네수엘라인들이 국외로 탈출했다는 사실은 베네수엘라의 국내 사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음울한 지표다.
국외로 빠져나간 주민들의 수는 베네수엘라 전체 인구의 10%에 달한다. 이 수치를 미국에 그대로 적용하면 무려 3,000만 명이 해외로 피신한 것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많은 베네수엘라인들은 국내에 머문 채 싸우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13년에 치러진 부정선거에서 무더기로 현 정부에 반대표를 던져 마두로를 거의 패배직전까지 몰고 갔고, 2015년에는 국회를 야당의 품에 안겨주었다.
지난 몇 년간, 베네수엘라인들은 최루탄과 체포, 피살위험 등을 견뎌내며 대규모 시위를 벌여왔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야당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이들은 마두로 정권의 권한을 합법적으로 선출된 국회로 이양하는 헌법절차를 밟고 있다.
과거 수년에 걸쳐 베네수엘라 정부는 오일로 일군 국부를 쿠바에서 니카라과에 이르는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반미 운동을 지원하는데 사용했다.
마두로 정권은 마약업자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란은 물론 헤즈볼라와도 관계를 발전시켜왔다.
마두로 정권이 블라디미르 푸틴, 시진핑,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과 이란의 물라 등 불량한 독재자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제 미국에서도 진보적 외교정책의 앞길에 관한 보다 광범위한 토론이 진행되어야 한다. 7,000억 달러를 넘어선 국방예산이 앞으로 가야할 길에 관한 시의적절한 회의론도 있고, 미국 군사력의 지나친 해외 확장과 너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는 군사개입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도 있다.
베네수엘라를 향한 정책은 요령과 조심성, 라틴 지역에 대한 개입 등을 요구한다. 그러나 실수와 나쁜 행동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막아주기 위해서라면, 확고부동한 무행동(inaction)은 결단코 정답이 될 수 없다.
지난해 출간된 명저 ‘좌파를 위한 해외정책(A Foreign Policy for the Left)’의 저자인 마이클 왈저는 “좌파의 기본입장은 무행동으로 귀결되는 경향을 보인다”며 “세계정세는 복잡하고, 미국의 힘은 오용될 수 있으며 정보는 늘 충분치 않기 때문에 개입을 하지 않는 게 최상의 정책이라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같은 기준은 국내에서도 무행동의 변명이 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전국민 메디케어제로의 신속한 전환 역시 복잡하기 그지없는 문제들과 리스크 투성이다.
왈저는 “전쟁과 내전, 종교적 열성, 테러리스트 공격, 극우 민족주의, 독재정부, 역겨운 불평등과 만연한 빈곤과 기아로 괴로움을 겪는 세계는 지적인 좌파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또 하나의 예가 있다: 우리가 치러야할 기후변화와의 싸움은 인류의 나머지 95%와의 깊숙하고도 지속적인 공동개입 없이는 불가능하다.
왈저는 “곤경에 처한 사람들과의 연대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약속”이라고 말한다.
바로 지금, 북반구에는 곤경에 처한 채 자구책을 찾는 수백만 명의 지구촌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좌파 미국인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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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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