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는 해마다 수퍼볼 경기를 하는 저녁이면 전통처럼 지키는 무언의 약속이 있다. 골목에 사는 이웃들이 모여서 저녁을 같이 먹고 경기를 보며 소리 지르고 자기 팀을 응원하는 것이다. 당연히 가야하는 자리라 생각하고 있는데 미국 교회에서 노숙인들을 불러 잠자리를 제공하고 수퍼볼을 보게 한다고 자원 봉사자를 찾는 광고를 했다.
워싱턴의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노숙인 쉘터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이 지역 44개의 미국교회가 나누어서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큰아들과 며느리 될 아이와 함께 선뜻 수퍼볼 보기를 포기하고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좋아하는 수퍼볼을 안보고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아들과 며느리 될 아이가 너무도 기특했다.
비엔나에 위치한 미국 교회에는 저녁 6시부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노숙인들이 취침을 할 넓은 공간에는 여러 개의 가방을 준비하고, 옷과 신발 그리고 치약, 칫솔, 로션 등 생활 용품이 전시되어 있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방에 담아갈 수 있게 해 주었다. 노숙인들이 수퍼볼 경기를 볼 수 있게 대형 TV를 설치했으며 팝콘도 준비했다.
노숙인들의 쉘터를 책임지는 분도 한 때는 노숙인 이었다고 한다. 한 때 그 분은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리다가 사람을 치어 죽게 했다고 한다.
그 사건으로 인해 그는 감옥에 갔고 막상 감옥에서 나온 뒤에는 갈 곳이 없어 노숙인 생활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노숙인을 돕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다. 그는 “상처 입은 치유자”인 것이다. 힘들었던 과거들이, 또한 그들처럼 줄을 서서 밥을 기다렸던 시간들이 노숙인을 이해하고 그들의 조언자가 되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분처럼 완전이 그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감정을 연결하고 느끼는 ‘공감자’가 되어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부엌에서 장만한 음식을 담아 배식을 시작했다. 줄을 선 사람들을 보니 백인, 흑인, 라티노, 아시안 등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었다. 한 노숙인은 임신해 거동이 불편한 여자친구에게 갖다 주려고 두 그릇을 달라고 해서 두 그릇에 음식을 듬뿍 담아 주었다. 임신한 여자 친구와 같이 길거리를 방황하는 모습이 짠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한 흑인 노숙자가 다가와서 “음식에 불평이 하나 있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긴장하고 있는데, “불평은 다른 것이 아니라 너무 맛있다는 것입니다” 라고 해서 한숨을 돌리며 웃기도 했다.
배식자가 달고 있는 이름표를 보고 이름을 부르면서 감사하다고 하고는 “노숙인에게도 이름표를 달아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 그들에게도 불려지고 싶은 이름이 있을 것이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며 다정하게 이야기해주면 그들은 아주 따뜻한 눈빛으로 감사를 표했고 배식하는 우리들에게 축복한다는 말도 해주었다. 나도 그들을 축복해 주었다. 그냥 의미 없이 던지는 말이 아닌 진정한 축복을 빌었다.
저녁 배식이 끝난 뒤 나는 곧 바로 다음 날 아침식사를 위한 테이블 셋업을 했다. 테이블 위에 아이들이 정성스럽게 그린 그림과 멋진 글귀가 적혀 있는 테이블 매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항상 웃으세요”, “당신이 최고에요”, “좋은 날 되세요” 등의 천진난만한 필체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아이들 마음까지 함께 동참한 귀한 식탁이 더욱 아름답게 다가왔다. 어렸을 때부터 나눔의 소중함을 가르쳐주는 교육의 현장을 보는 듯하였다. 미국 교회에서는 저녁 뿐 만 아니라 새벽에 봉사자들이 일찍 와서 노숙인들에게 아침 식사를 대접했다. 그리고 그들이 점심으로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샌드위치를 만들어 아침에 함께 나누어 주었다.
우리가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행복해 하는 노숙인을 보면서 우리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공간 내에서 봉사의 시간을 함께 나눈 교인들과도 따뜻한 눈인사로 나눔의 기쁨을 맛보았다. 아들과 며느리 될 아이는 내내 웃음을 보이며 이리 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저런 행복한 웃음은 내가 돈을 주고도 사줄 수 없는 웃음인 것이다. 나눌수록 행복은 커지는 것인가? 비록 수퍼볼 경기는 보지 못했지만 수퍼볼 저녁에 만난 사람들의 승리를 나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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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준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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