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경에 차 있는 말러의 음악을 좋아한다. 즉 말러의 음악 자체보다는 그의 그런 부분이 좋다는 것이다. 사실 말러하면 몇몇 클래식 매니아들을 제외하고는 70년도때 까지만해도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의 음악(주로 교향곡)이 매우 길기 때문에 방송에서 잘 틀어주기 않았기 때문이다. 설혹 틀어 주었다고 해도 한 시간 반 이상씩 걸리는 그의 지루한 선률을 끝까지 인내할 사람은 많지 않았을테지만.
베토벤이나 바그너의 음악보다도 세드(sad)하게 들려오는 그의 음악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해외에 나가 공부한 지휘자들이 국내로 귀환, 그의 음악을 자주 연주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 나와서 (한국의) 문화계 뉴스를 종종 접하다 보면 인천 시립, 부산 시립 같은 지방 교향악단에서조차 말러 시리즈 특집을 내고 앞다투어 연주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연주회장에서 말러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매니아든 아니든 빠져들 수 밖에 없게 된다. 장엄하면서도 심연을 뒤흔드는 오케스트라의 색채가 기가 막히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설명하라고 하면 누구나 조금은 망설일 수 밖에 없게 된다. 세드하면서도 고독하게 들리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어딘가 동경에 차 있는 말러의 음악은 딱히 이거다하고 설명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다. 물론 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그렇게 쉽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말러의 음악은 복잡하다. 굳이 설명을 강요한다면 어딘가 동양적인 향수를 노래하고 있다고나할까. 그가 꼭 교향곡 9번 순서에서 이백의 시에 곡을 붙인 ‘대지의 노래’를 썼기 때문이 아니라 말러의 음악만큼 깊은 내면의 향수를, 동양적인 동경으로 승화시킨 작곡가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향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동쪽이든 서쪽이든, 절해고도… 무인도이든. 인간은 누구나 동경의 섬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홀로 걸어야하는 곳이든 아니면 운명의 축복을 거부당한 자, 오로지 비극 속에서만 날아 오를 수 있는 거장들만이 갈 수 있는 곳이든.
나는 역사 속 수많은 거장들을 거론함에 있어서 말러(1860-1911)야말로 가장 비극적인 인간 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말러를 만난 것은 분명 음악가로서였지만 사실 그가 삶 속에서 영웅으로 부각된 것은 그가 위대한 작곡가, 지휘자 등 그런 세속적인 이유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삶이라고 하는 그 짦은 찰라에 있어서 음악을 바라보았던 그 세드한 눈빛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말러는 그의 전성기 때 50세를 일기로 유전적 질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가족병력은 유명했고 심지어 정신병으로 권총 자살한 자도 있었다고한다. 장애자였던 어머니, 죽음의 질곡에서조차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해야했던, 예술가로 태어났다는 운명. 말러가 왜 교향곡 하나에 천 명이나되는 연주인을 동원해서 절규하지 않으면 안되었나, 이해되는 부분이긴하지만 그것이 말러의 음악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말러의 음악은 오히려 그런 클라이막스보다는 어둡고 조용한 느린 악장들이 더 위대하게 들려올 때가 많다. 말러의 자화상같은, 인간의 심연과 절망을 승화시킨 오케스트라의 詩라고나할까. 쉬운말로 그의 음악에는 실존이 느껴져 온다는 것이다. 그저 괜히 화려하게만 울려퍼지는, 음악회장에서의 환호갈채를 위한 그런 쇼맨십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생상스의 올갠 심포니처럼 전 공연장이 떠나갈듯 울려퍼지는 화려하고 장엄한 사운드도 음악회장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어쩌면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겠지만 말러는 적어도 그런 외형적인 아름다움이나 쇼맨십에만 집착하여 음악을 작곡한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삶과 음악을 밀접하게 연계하여 심각하고 철학적인면이 거슬리지만, 대체로 말러의 음악은 시적인 감동을 위한 것들이었다.
영원한 이방인 유태인들은 나라를 잃은 뒤 (대체로) 서쪽으로 둥지를 틀었지만 동화되지 않고 2천년을 넘게 방랑객으로 지내며 돈벌이 뿐만 아니라 음악을 그들 특유의 슬픔을 승화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해 왔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세계적으로) 특출한 음악인들을 많이 배출하고 있는 것은 전혀 우연만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음악이 어떤 대단한 명예나 출세의 방편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오로지 다른 무엇보다도 좋아서 해왔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나를 열광시킨 2명의 유태인은 아인슈타인과 말러였다. 과학적 성과도 성과지만 자유로운 영혼으로서의 아인슈타인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열광시켰지만 특히 음악과 동양에 대한 (사랑과)열광은 왠지 말러의 음악과도 연계하여 아득한 동경을 주곤 하였다. 지난 주는 그의 교향곡 3번, 특히 베토벤이후 최고라는 느린 (마지막) 악장을 들으며 많은 감동을 받았다. 달마는 왜 동쪽으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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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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