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한국 방문 때 고등학교 두 곳에서 강연 할 기회가 있었다. 두 학교에서 전교생 거의 모두를 대상으로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얘기들과 주위에서 보았던 것들을 나누면서 열정을 좇는 인생을 살아 보자고 권유했다. 그런데 강연이 다 끝난 후 질의 응답 시간에 받았던 두 개의 질문들을 잊을 수가 없다. 아직도 가끔 생각해 보게한다.
한 학생이 삶의 성공과 열정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요즈음 열정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도 하는데요”. 그러니까 인생 성공에 열정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시각에서의 코멘트 겸 질문이었던 것이다. 그 학생이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그 질문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 권력, 집안 배경, 학벌 등이 필요하지 않냐는 뜻이었다. 당황스러운 질문이기도 했다.
그에 대해 나는 성공의 척도를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고 대답 했다. 만약에 성공의 척도를 자신이 얻는 이익에 초점을 맞춘다면 열정만으로 부족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남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는 것이 기준이 된다면 열정 외 요소가 잘 안 갖추어져도 성공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나의 이런 대답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한편 아직 순진해야 할 나이에 성공을 보는 시각은 나이 든 기성세대와 같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또 다른 질문은 내가 만약에 이민을 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 있었다면 무엇을 했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대답도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이민 오기 전까지 어떤 뚜렷한 소신을 갖고 장래에 꼭 무엇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없었던 것 같다. 단지 고등학교 시절 나 같은 문과 학생들은 법대 진학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판, 검사가 되는 게 당연시 되었기에 혹시 그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로 진로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기 전에 나는 한국을 떠났다. 그래서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아마 남들이 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 했을 수도 있고 전혀 다른 길로 나갔을지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지금도 그 질문을 생각해 보면 과연 내가 무슨 일을 하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미국에 와서도 대학교를 마치고 로스쿨에 입학하기 전에 진로에 대해 여러 다른 생각들을 했었다. 고등학교 때 3년간 화학을 공부했던 덕에 나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 하려고 했다. 그러나 단 한 학기 만에 바뀌었다. 결국 동아시아 연구 (East Asian Studies)로 전공을 바꾸고 중국을 중점적으로 공부했다. 그 때 생각은 공부를 다 마친 후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미국에서 외교관이 되면 어떨까였다. 그래서 중국어 공부를 위해 대만에서 두 학기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 때는 목회자가 되기 위한 신학대학원 입학도 고려했다. 로스쿨 입학은 거의 마지막 순간에 내린 결정이었다. 정말 몇 년 안 되는 사이에 진로에 대해 여러 번 생각이 바뀌었다. 변호사가 된 후에도 지난 24년간 공직을 겸한 것을 보면 나는 아직도 진로 결정을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집 둘째가 이 번 봄에 물리학 박사 과정을 마칠 예정이다. 그런데 6년 과정 동안 중점 연구 내용이 몇 번 바뀌었다. 처음에는 응집물질을 공부하겠다고 하더니 고에너지로 옮겼다. 고에너지 연구를 위해 스위스까지 가더니만 그 후 결국 생물리학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빅테이터를 사용해 암을 치료하는 것을 연구하는 게 아닌가. 졸업 후에는 빅데이터 관계 일을 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인공지능 개발 일을 하고 싶단다. 그 사이에 한 때는 의대 입학으로 방향 전환까지 고려했었다.
내 자신이나 둘째를 보면서 진로 결정이라는 게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이 무엇인지 안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기는 하다. 실제로 직접 해 보지 않고서는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청년들은 이직도 자주 하고 진로 변경도 많이 한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지 열정을 갖고 자신의 이익 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도움과 그들로부터 받는 긍정 평가로 성공을 판단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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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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