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 못지않게 첫 환자에 관심이 많다. 첫 환자의 진료결과가 한해의 의료생활 나침반의 방향을 잡아줄 거라는 일종의 첫 환자 콤플렉스다. 이런 습관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대뇌의 해마와 측두엽 영역에 단단히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금년에도 누가 첫 환자일까 매우 궁금했다.
1970년대 초 어느 해였다. 수련의를 막 마치고 대형 정신병원 응급실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정신병원 응급실은 항상 긴장감이 돈다. 공격적이고 난폭한 행동을 보이는 환자들로 인해 전쟁터로 변하기 일쑤다.
난폭한 환자들은 대개 알코올이나 약물중독, 양극성장애의 조증상태, 아니면 편집성 정신분열증에 속한다. 그래서 병아리 정신과 의사들이 가기 싫어하는 그곳에서 겁도 없이 일을 시작해 25년간 근무하며 정신과 의사로 잔뼈가 굳어졌다. 응급실로 오는 환자의 대부분은 경찰 죄수호송차량인 패디왜곤(Paddy Wagon)이나 다른 민영병원에서 앰뷸런스에 실려 온다.
거의 45년 전 그날은 화씨 0도까지 내려가 무척 추웠다. 오피스는 겨울 햇살이 들어와 아늑했고 응급실은 비교적 한산하여 의학잡지를 들쳐보고 있었다. 갑자기 요란한 엔진 소리가 들리더니 패디왜곤에서 한 젊은 남성이 수갑이 채워진 채 경찰과 몸싸움을 하며 끌려 왔다.
그는 무엇을 잡으려는 듯 허공에 손을 내저으며 가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웃다가 울었다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횡설수설 하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자신과 타인에게 신체적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환자는 일단 진정제를 주사하고 조용한 방에서 안정을 취하게 한다.
몇 시간 뒤 깨어난 그는 친구 따라 어느 파티에 갔는데 누가 건네주는 마리화나 두어 대를 핀 후 기억이 흐리다고 했다. 피검사에서 PCP(Pencyclidine)와 마리화나 성분이 나왔다. 딴 정신질환 증세들이 없기에 몇 시간 더 관찰하다가 부모와 통화하고 경찰서와 연락을 취한 후 귀가시켰다. 아마 피운 마리화나 속에 과량의 PCP가 들어 있었을 것이다.
PCP는 원래 마취제였는데 여러 부작용들이 발견되어 사용이 금지되었다. 정신을 몽롱하게 해서 자신과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주는 환각작용 때문에 1960년대부터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히피들이 천사먼지(Angel Dust)라 이름 붙여 남용하기 시작했다.
곧 이어 미 전역으로 로켓연료 등 다른 이름으로 퍼져나가 사회적 의학적 문제를 일으켰던 물질이다. 지금은 엑스타시, 메탐페타민, 코카인과 오피엄에 밀려 있으나 싼 값에 쉽게 구할 수 있어 저소득층 청소년들이나 대학생들이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불법물질이다.
지난해 10월 14일 시카고는 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17세 흑인 청소년을 총으로 살해한 백인 경찰관에 대한 배심원 재판이 유죄평결로 결정 났기 때문이다. 무죄평결이 나올 경우 흑인들의 폭동과 대규모 항의시위에 대비해 시카고는 숨죽이고 있었다.
경찰은 청년이 칼을 휘두르며 위협해서 사살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차 카메라에 잡힌 비디오 영상을 보면 칼을 내려놓으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그가 거만하게 걸어가자 경찰은 총 16발의 총을 쏘았다. 일종의 확인사살이었다. 백인경찰관의 과잉 행위에 흑인사회는 분노에 휩싸였다.
죽은 청소년은 아버지는 누군지 모르고 어머니는 술, 마약에 빠져 불행하게 성장했다.
그는 결국 공격적이고 위협적 행동, 술, 마약 복용 때문에 청소년 보호소와 위탁가정을 들락거리며 문제아가 되었다. 당시 그는 의사가 처방해준 기분조절제와 항정신제 복용을 끊고 있었고 부검의 피검사는 마리화나와 PCP 양성으로 나타났다. 살해당하기 전 그의 공격적이고 만용적 행동은 마약물질의 영향 탓이었음이 확실했다.
1970년대 초에 보았던 환자의 팔에는 IAM(I am me), 경찰 총에 죽은 청소년의 팔에는 YOLO(You only live once)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멋대로 자신의 입맛에 맞게 살고 싶다는 소망의 표시다.
환각제나 술, 마약 등은 마음과 의식을 무아지경 같은 최면상태에 빠지게 만들어 한없이 자유롭고 스트레스 없는 가상현실의 삶을 추구하도록 유혹한다. 그래서 자기 식대로 살고 싶은 지금의 젊은 세대가 이런 물질들에 쉽게 현혹되는 경향이 있다. 집에 있는 청소년이나 집을 떠나 대학을 다니는 자녀가 이런 물질들을 사용하는지 부모는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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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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