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제 맥주, 직접 만들어볼까
▶ 완전 곡물 방식 양조하거나, 초보는‘맥주 키트’에 포함된 맥아추출물 통조림 쓰면 간단
당화 과정에서는 잠시도 맥즙에 눈을 뗄 수 없다. 맥아가 타지 않도록‘열심히’ 저어야 한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지 챙겨 보기도 해야 한다.
2일 오후 서울 이태원동 굿비어공방을 찾은 수강생들이 맥주가 만들어지는 원리에 관한 수업을 듣고 있다. <이소라 기자>
맥아(몰트)를 분쇄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맥아는 곡물에 물을 부어 싹을 틔우고 더운 공기로 건조시켜 발아를 중지한 것이다.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 제공>
끓이는 단계가 끝나면 공기 노출 시간을 줄이고 세균 번식을 막기 위해 냉각기인‘워트칠러 장비’를 사용해 빠르게 맥즙을 식혀준다. <이소라 기자>
진짜 맥주의 계절은 어쩌면 겨울이다. 여름에 청량감으로 마시던 맥주의 풍미가 겨울엔 더 진해진다. 편의점 맥주로는 아쉽다. 그 풍미를 즐기기에 딱인 게 수제 맥주다. 수제 맥주의 맛과 향은 이를 테면 ‘지문’이다. 양조장, 양조자들의 비법에 맥주 맛과 향이 천차만별이다.
요즘 수제 맥주는 그야말로 ‘대세’다. 업계 추산으로 2012년 7억 원대에 불과했던 수제맥주 시장이 2017년 300억원 규모로 커졌다. ‘강서맥주’ ‘전라맥주’ ‘제주맥주’ 등 지역색을 강조한 수제 맥주의 등장으로 시장이 한층 풍성해졌다.
문득 궁금해진다. 맥주는 물, 맥아, 홉, 효모라는 네 가지 재료로 만든다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채로운 결과물이 나올까. 그래서 배워 봤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굿비어공방’에서다. 김욱연(49)씨가 운영하는 ‘굿비어공방’엔 수제맥주를 입문자를 위한 하루짜리 원데이 클래스가 있다. 맥주를 만들어 보며 맥주 제조 원리를 ‘조금’ 엿볼 수 있다. 맥덕(맥주 덕후)의 시대라더니, 연간 5,000여명이 공방을 찾는다.
맥아 분쇄하고 끓이고 6시간… 인내의 과정 “당에 효모를 넣고 기다리면 됩니다. 참 쉽죠?” 수제 맥주 만드는 데 5, 6시간은 걸린다더니, 김 대표는 간단한 것처럼 얘기했다. 김 대표가 설명한 원리. 맥아(싹튼 보리)에서 추출한 맥아당에 효모를 넣으면 효모가 당을 먹는다. 알코올과 이산화탄소, 열을 배출하며 발효된 끝에 발효주의 일종인 맥주가 탄생한다. 같은 원리로 사탕이나 과일, 메이플 시럽으로도 발효주를 만들 수 있다. 무슨 당을 쓰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단다. ‘나만의 발효주’를 만드는 게 그다지 어렵진 않겠구나, 안심했다.
수제 맥주 만드는 법은 맥아에서 당을 추출해 쓰는 ‘완전 곡물 방식’과 맥아 추출물 통조림을 이용하는 ‘부분 곡물 방식’으로 나뉜다. 수업에선 완전 곡물 과정으로 스타우트 10리터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스타우트는 15~25도 정도의 실온에서 발효시키는 흑맥주다. 발표 온도와 기간에 따라 맥주 종류가 달라진다. 실온 발효하는 ‘에일’ 맥주는 보통 2주 발효 후 1주 숙성을 거치고, ‘라거’ 맥주는 5~12도의 저온에서 발효 후 2달 이상 숙성한다. 수업에선 발효와 숙성 기간이 짧은 에일을 주로 만들어 본다. 수강생들이 바로 일주일쯤 뒤에 찾아 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모든 음식이 그렇듯, 청결이 중요하다. 제조 과정에서 박테리아가 침투하면 맥주에서 신맛이 나 기껏 양조한 맥주를 모두 폐기해야 한다. 재료가 닿는 모든 기구를 에탄올로 소독하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이어 온도계와 여과기가 설치된 커다란 통(당화조)에 맹물 10리터를 붓고 68도 정도로 가열했다. 여기까지가 맥즙(맥아를 끓여 찌꺼기 걸러 낸 맑은 물)을 만드는 준비 과정이다.
물이 데워지는 동안 맥아를 분쇄했다. 훈연향을 내는 필스너 맥아 2㎏에 400도에서 볶은 검은색 특수맥아 250g로 스타우트 특유의 검정색을 내고, 달콤한 카라멜 맥아 250g을 섞었다. 분쇄기에서 나온 맥아를 보니 껍질의 형태가 그대로 살아있었다. 김 대표는 “지나치게 곱게 갈면 떫은맛이 날 수 있고 보리껍질이 흩어지거나 찢어지면 여과 작업을 하기 어려워 거칠게 갈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당화 단계. 분쇄한 곡물을 끓여 당을 추출하는 작업이다. 68도로 데워진 물에 맥아를쏟아 부으니 수온이 65도로 내려갔다. 65도를 유지하며 45분 동안 끓였다. 알코올을 생성하는 과정이다. 이후 온도를 75도 올려 15분간 끓였다. 효소인 ‘알파 아밀라제’를 활성화해 맥주에 묵직한 바디감을 주기 위해서다. 이내 맑았던 맥즙이 진한 밤색이 되면서 달고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끓이는 과정이 지루했지만, 불 앞을 떠날 수 없었다. 맥아가 타지 않도록 수시로 저어주고 온도가 떨어지면 다시 가스 불을 켜 온도를 맞춰야 했기 때문. 물 온도가 80도가 넘어가면 맥아 껍질에서 타닌이 나와 맥주 맛이 떫어진다. 김 대표는 “인내심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온도를 맞추며 끓이는 과정이 대부분이다 보니 지루해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거기에 발효와 숙성 과정까지 거쳐야 하니 맥주 제조란 기다림의 연속이죠. 이렇게 어렵게 맥주를 만들고 나면 다음부터는 맥주에 소주를 타 먹는 일은 안 하게 될 겁니다(웃음).”
김 대표가 다 끓인 맥즙을 맛 보라며 한 컵 떠 줬다. 당화된 맥즙은 달달한 보리차 같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맥즙에서 맥아를 걸러 맑은 액체만 남기는 게 다음 과정. 맥아 찌꺼기에 80도의 온수를 부으면 찌꺼기에 남아 있던 당까지 전부 거둔다.
이렇게 얻은 맥즙을 ‘끓임조’라 부르는 다른 통으로 옮긴다. 100도 이상 온도에서 1시간가량 팔팔 끓인다. 이 때 넣는 게 맥주의 향미를 결정하는 홉이다. 스타우트 특유의 쓴맛을 내기 위해 태운 보리맛을 강조한 비터링 홉을 1온스(28g) 정도 넣었다. 쓴 맛에도 격이 있는 법이다. ‘기분 좋은 쓴 맛’을 내려면 홉을 넣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김 대표는 “전자저울로 미세 단위까지 정확히 지켜 넣고 끓이는 시간까지 맞춰야 원하는 맛이 나온다”고 했다.
홉을 넣고 1시간 후 맥주 식히는 과정에 들어갔다. 맥즙은 빠르게 식혀야 오염을 막을 수 있단다. 냉각수가 흐르는 ‘칠러 장비’를 맥즙 안에 넣어 식혔다. 맥즙이 어느 정도 식자, 효모가 활성화되도록 산소를 주입했다. 산소 투입 장비 에어레이터를 이용할 수 있지만, 맥즙을 빠르게 저어도 된다. 이어 발효 통으로 옮긴 맥즙에 효모 한 봉지를 넣고 뚜껑을 닫아 밀봉했다. 드디어 모든 작업이 끝났다. 직사광선이 들지 않는 상온에서 일주일 발효한 후 2주일간 냉장 숙성을 거치면, 시간, 노력, 정성이 듬뿍 들어간 스타우트를 맛볼 수 있다.
김 대표는 수제맥주 만들기를 ‘종합예술’에 비유했다. 치밀한 수학적 계산과 끈기, 양조자의 개성까지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맥아를 어떤 온도로 끓이냐에 따라, 홉을 언제 넣느냐에 따라 맛과 향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맥아를 분쇄하는 방법이 복잡하고 번거롭게 여겨진다면, 지름길이 있다. 맥아 추출물 통조림을 활용하면 당화와 홉을 넣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뜨거운 물에 통조림을 풀고 양을 맞춰 생수를 붓는다. 머랭 반죽 치듯 빠른 속도로 휘저어 산소를 주입한 후 발효통 뚜껑을 덮는다. 모든 과정은 20분이면 충분하다.
‘맥덕’들이 수제맥주 만드는 이유 기자가 참가한 ‘입문자 과정’에는 12명의 수강생들이 참여했다. 평소 수제맥주를 자주 즐기는 20, 30대 직장인이 대부분이었다. 맥주 애호가를 자처한 박로빈(35)씨는 “수제 맥주를 마시다 보니 맥주에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나는지 궁금해지더라”며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 나니 수제 맥주를 더 세련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수업에서 만든 맥주가 발효되길 기다릴 수 없어, 다른 수강생이 만들어 둔 에일을 맛봤다. ‘제법’ 맥주 맛이 났다. 시판 맥주보다 탄산이 강하지 않아 목 넘김이 부드러웠고 새콤한 향이 났다. 알코올 도수가 높지는 않은 듯했다. 사 먹는 맥주보다 확연히 맛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수제’의 느낌만으로 충분했다.
초보자라면 맥아 추출물 통조림으로 만드는 ‘맥주 키트’를 추천한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필요한 도구, 재료가 모두 들어 있는 키트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발효통까지 포함된 ‘맥주 키트’는 10만원 상당이지만, 초기 비용만 투자하면 가성비 좋은 수제 맥주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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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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