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고등학교 은사였던 Louis Kokonis 선생님을 다시 한 번 뵐 기회가 있었다. 약 3년 만이다. 1974년에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미국에 온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 시에 위치한 TC 윌리암스(TC) 이다. 알렉산드리아 시 교육청이 70년 대 초 흑인, 백인 학교로 나뉘어져 있던 관내 고등학교들을 통합했을 때 풋볼 팀에 일어났던 일을 소재로 한 “Remember the Titans (타이탄을 기억하라)” 라는 제목의 영화에 나온 바로 그 학교이다.
3년 전 봄에 그 선생님이 가르치는 교실로 직접 찾아 갔었다. 물론 미리 약속을 했었다. 당시에 선생님은 미적분을 가르치고 계셨다. 나는 11학년 때 Algebra 5라고 불리던 미적분 준비 과목을 그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다. 3년 전 방문 때 선생님은 84세 나이로 58년째 교직에 몸 담고 계셨다. 그 때 선생님은 적어도 1년 정도는 더 하고 싶다고 하셨다. 가르치는 게 그냥 좋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그 때 하셨던 말씀 중 잊을 수 없는 것은, 그 해 여름방학에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1주간의 AP물리 수업도 들으실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가르치는 미적분과 미분 방정식이 AP물리 과목에서 많이 사용된다고 하는데 실제로 어떤지 보고 싶어서라고 하셨다. 그리고 미분 방정식은 수준이 꽤 높기에 당신도 수업 준비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들인다고 덧붙이셨다. 오랫 동안 수학을 가르치셨기에 이제는 아무런 준비 없이도 어느 수준의 수학이든 쉽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아직도 수업 준비에 철저하신 선생님이 더욱 존경스러웠다.
내가 배울 당시 선생님은 항상 몸 전체에 백묵 가루를 뒤집어 쓰고 계셨다. 칠판에 쓰신 것을 지울 땐 지우개 보다는 그냥 손바닥을 사용하고 나중에 양복 바지에 손을 닦아 내곤 하셨다. 툭하면 나보고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장난 삼아 놀려대던 어느 백인 급우를 내가 어느 날 참다 못해 수업이 끝나자마자 멱살을 잡고 벽에다 밀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나에게 야단 한 마디 안 치시고 말리기만 하셨다. 모든 제자들에게 항상 부드러운 말로 대하셨던 분이다.
그런데 그 후 3년이 지난 오늘도 그 선생님은 TC에서 수학을 가르치신다. 미적분, 미분 방정식, 그리고 다변수 방정식 등의 수준 높은 수학을 말이다.
지난 주에는 이렇게 60년 이상 가르치고 계시는 선생님을 위한 리셉션이 있었다. 3년 전에 비해 조금 더 연로해지신 모습이었지만 아직 농담도 하시면서 은퇴는 염두에 두고 계시지 않은 듯했다. 그 날 학교 측에서 선생님에게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학교 정문 가까이에 선생님을 위해 제공될 전용 주차 공간에 세워질 표지판이었다. 거기에는 “Mr. Louis Kokonis 전용: 1958년부터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신 선생님”이라고 씌여 있었다. 그 표지판을 본 선생님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전용 주차 공간이 “매일 제공 되는거죠?” 라고 확인 질문을 하기도 했다.
이 날 리셉션은 선생님 이름으로 장학금을 제공하기 위한 모금행사도 겸했다. 알렉산드리아 장학재단이 주도했는데 적잖은 액수가 모금되었다.
행사에 참석한 옛 제자들이 기꺼이 기부했다. 이 행사에서 나는 정말 오래 간만에 한인 후배들도 몇 명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서너살 차이가 나기에 나와 같이 학교를 다니진 않았지만 내 바로 아래 동생과 함께 공부했던 후배들이었다. 역시 한인 후배들이 좋은 것은 보자 마자 선배인 나에게 “형” 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미국인 선후배들 사이보다 훨씬 더 친근감을 주는 이 호칭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우리 한인 문화의 장점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또한 무엇보다도 그 후배들을 보면서 그러한 모임에서 한인들을 그렇게 볼 수 있음이 고마웠다. 제법 큰 액수의 장학금 기부까지 한 후배들을 보면서, 우리 한인들도 이제 미국 주류 사회의 모임과 행사에 제법 참여하는 모습이 고무적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지난 주의 리셉션은 80대 후반의 나이에도 변함없이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계시는 선생님과 성공한 한인 후배들의 모습에 도전과 감사를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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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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