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이상적인 교육이 실현되는 나라로 핀란드가 꼽힌다. 교사 지망생은 5년의 석사과정을 거치며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교육현장에서 교사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정부가 교육방침을 지시하는 일도 없고 의무적인 교과과정이나 표준고사도 없다. 교육 전문가로서 학생 개개인을 살피며 최선의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교사의 임무이다.
핀란드에서 교사는 의사, 변호사와 더불어 가장 전문성을 요하는 직업으로 평가받는다. 그만큼 존경을 받는다. 그런 환경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은 시험공부 따로 하지 않고, 학원 한번 안 다니면서도 OECD 국제학력평가 프로그램(PISA) 테스트에서 항상 1위를 차지한다. 행복한 교사들, 행복한 학생들이다.
교사가 존경받는 사회, 교사가 선망의 직업인 사회, 교육가로서 소신껏 가르치며 보람을 느끼는 환경 … 빗속에 시위하는 LA의 교사들을 보며 핀란드를 떠올렸다. 그들은 핀란드를 부러워하지 않을까.
남가주는 이번 주 내내 비가 내렸다. LA 교사노조가 30년 만에 파업을 시작한 14일부터 때로 장대비로 때로 부슬비로 연 나흘째 우천이다. 3만 1,000여 교사들이 우중에 거리로 나오면서 비새고 물새는 교육현장의 실태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학생 수 50만으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LA 통합교육구는 사실 대부분 한인들에게는 낯설다. 총 863개 캠퍼스 중 3가 초등학교, 매그닛 스쿨 등 몇몇 학교를 제외하면 한인학생 등록률은 낮다. 재학생의 80% 이상이 라티노(73.4%)와 흑인(8.2%)이고, 80% 이상이 저소득층이다. 아이들은 공부도 할 겸, 하루 두세끼 무료급식도 받을 겸 학교에 간다. 거의 1/4은 영어가 서툴러서 ESL 과정이 필수다. 한인부모들이 가능한 한 LA 교육구를 피하는 배경이다.
지난 수개월 교육구와의 협상이 실패, 파업에 나선 교사노조는 교사로서 삶의 질과 학생들 교육의 질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봉급인상, 학급학생 축소, 양호교사 사서 카운슬러 확충 등이다.
중고교의 경우 학급당 학생 수가 40~50명이나 되어서 수업집중이 어렵다고 교사들은 토로한다. 학교 지원은 없고 학부모들은 가난하니 종이 등 교재비는 교사들의 박봉에서 떼어내는 것이 현실. 우버 운전 등 투잡을 뛰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양호교사는 잘해야 일주일에 한두번 오고, 카운슬러는 수백명씩 담당하니 제대로 된 간호/상담은 기대하기 어렵다.
경제규모 세계 5위인 부유한 캘리포니아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인종으로 소득으로 분리돼 딴 나라 사람들처럼 사는 주거분리 현상과 상관이 있다. 주거이전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누구나 주거지역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택가격이나 렌트비 등 법보다 높은 돈의 장벽이 가로놓여있기 때문이다.
소득에 기초한 장벽은 사실상 인종분리 효과를 내면서 학군/교육구의 인종적 구성에 영향을 미친다. LA 교육구 학생의 80% 이상이 라티노/흑인이고, 저소득층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산층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곳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만 남아서 생긴 결과이다.
학부모들이 자녀의 교육에 관심 기울일 여력도 의지도 없는 교육구에서 일선 교사들의 부담은 엄청나다.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학부모들이 적극 기금모금을 하며 교육의 질을 챙기는 ‘좋은 학군’ 교사들과는 업무와 삶의 질이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
LA에서 학교 인종통합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1년 매리 크로포드라는 흑인 소녀는 집에서 가까운 사우스게이트 고교에 입학 지원을 했다. 하지만 LA 통합교육구는 이를 허락하지 않고, 훨씬 먼 조단 고교에 등록하게 했다. 사우스게이트는 98% 백인학교, 조단은 99% 흑인학교였다.
매리의 부모는 즉각 교육구를 상대로 차별 소송을 내고, 흑인 민권단체들이 가세해 집단소송을 주도하면서 주로 흑백 커뮤니티 간 싸움은 10여년 이어졌다. 그리고는 마침내 인종통합을 위한 버싱 정책이 확정되고, 1978년 가을 LA 통합교육구에서는 1,000대의 버스가 4만여 학생들을 새 학교로 실어 날랐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지 않아 대부분 백인인 3만 여 학생들은 LA 교육구를 떠났다. 절이 싫어 중이 떠난 것이다. 인종분리는 자연스럽게 고착되었다.
LA 통합교육구의 문제는 단순히 한 교육구의 문제가 아니다. 저소득 유색인종/이민자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가난을 대물림하는 사회적 악순환의 한 단면이다.
50여년 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꿈꿨던 “흑인 소년소녀들이 백인 소년소녀들과 손잡고 형제자매처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상황”은 실현되었다고도, 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전의 장벽을 넘으면 또 다른 장벽이 등장한다. 인종과 소득에 따른 분리, 심화하는 경제적 불평등, 소득 양극화라는 장벽들이다.
잿빛 하늘 아래서 LA 교사들의 파업시위는 계속되고, 그들의 시위로 잿빛 현실들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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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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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3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이건 단순히 교육만의 이슈가 아니지요. 인종, 경제, 사회적인 모든 요소들이 엮여있는 문제입니다.
한적한 길에서 흑인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경계를 하게 되는 것은 나만 그런것일까?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고 정책을 세우니 헛발질이 되는 것이다. 버싱정책이 실패한 이유 아닐까?
제 딸이 다니는 플라야 비스타 초등학교는 히스패닉학생을 찾아보기 힘들어요. 기사내용을 보니까 두아이들 교육을 위해 19년째 사는 이집에서 이사가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을 느꼈어요. 중학교에 다니는 큰 딸도 LA통합교육국에 속한 공립학교를 무척 좋아하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