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문에서 대우의 창업자 김우중 씨가 알츠하이머(노인성 치매) 비슷한 증세를 보여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때문에 그를 딱 한번 만났던 때가 회상되었다. 대우 그룹이 계열사로는 삼성과 현대보다 앞서서 재계의 제 1위로 평가되던 IMF 위기 전이었기에 그가 워싱턴 DC를 방문 했을때는 열명이 넘는 사장단과 수행원들을 거느린 그룹 총수의 모습이었다.
당시에 필자는 워싱턴DC 지역 경기고등학교 동창회 부회장일을 김종필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맡고 있었다. 1954년에 청주 중학교를 졸업하고 폐허가 된 서울로 가서 고등학교 1학년을 시작한 것이 처음에는 경기여고 맞은편에 있었던 덕수초등학교 교사였는데 한두 달 사이에 광화문 네거리의 천막교사로 옮긴 기억이다. 1학년을 끝내고 1년을 휴학했다가 복교를 했을때는 화동 언덕에 있던 본 교사로 이전을 했지만 나와 같이 시작한 친구들이 교복에 고3 뺏지를 하고 있는데 나는 고2를 달아야 하는게 쑥스럽게 생각되었으니까 공부를 제대로 할 심사가 아니었다.
한번은 수학시간에 수학교과서 안에 소설을 넣고 보다가 선생님에게 들켰다. 서울대 강사도 겸임했다던 그 선생님은 대노하면서 교실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앉으라고 명령한다. 사람 앞에서 그런 굴종은 못하겠다고 대들면서 가방을 싸들고 교실을 떠났으니까 그 선생님과 급우들이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로 진천에 있던 집으로 내려가는 무모한 짓을 했으니까 부모님 속을 숯검정처럼 태우는 불효였을 듯하다. 대학은 가야하니까 검정시험을 보아야 되는데 국어, 영어, 역사 등 인문계통은 간신히 턱걸이로 붙었지만 수학은 낙제점수라서 두 번이나 응시했던 기억이다. 남들은 검정시험으로 월반을 하는데 내 경우는 고작 53회 동기생들과 같은 해에 대학 진학을 한 것뿐이다. 고교 졸업장이 없는 내 이름이 53회와 54회 동창명단에 나오는 이유다. 동창회 일을 맡기 꺼려하던 것은 그같은 겸연쩍은 과거 때문이었다.
좌우지간 김우중 회장의 워싱턴 방문 때 51회의 김찬규 회장은 나에게 그의 환영연에서 그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앞에서 상술한 나의 결격사유 때문에 거절한다. 그러나 경기 52회인 김회장 일행 가운데는 1954년부터 알게 되었던 그의 동기인 홍성부 형도 포함되어 있었는데다가 당시에 한국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추앙 받던 인물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부부 동반으로 환영연에는 참석했다. 나 대신 김회장의 소개를 맡은 이영작 박사는 당시에 베스트셀러로 낙양 종이값을 올리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김우중씨의 자서전을 정독하고 인용하여 나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예를 들면 “9시부터 5시까지 (nine to five)”는 미국인들의 직장 근무시간을 표현하는바 김 회장은 “새벽 5시부터 9시까지”를 모토로 불철주야 연중무휴정신으로 친구들과 시작한 자그마한 무역회사를 대기업으로 급성장시킨 역사를 상기시켰다. 대우건설, 자동차, 조선, 엔지니어링 등. 등.
환영연을 끝내고 나오다가 김회장과 우리 부부가 잠깐 대화를 하게 되었을때 잠시 동안이라도 내 등에 진땀이 났던 경험이있다. 내 아내가 그에게 “회장님은 다 성공하셨는데 하나만은 실패를 하신 것 같습니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혹시라도 내 아내가 그의 아들이 얼마 전에 보스턴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것을 두고 말하는가 싶어서 당황했다. “무엇인데요?” 라는 그의 반문에 아내는 수명을 단축시키는 백해무익한 “담배를 아직도 못 끊으시고 줄담배를 하시네요”라고 태연히 응수해서 안심이 되었던 기억이다.
김회장이 치매 현상이 심해 다니는 병원은 아주대학병원이란다. 그가 세운 대학인 바 사실은 그 대학터에 내 처삼촌이 대학을 세울 뻔 했던 역사가 있다. 5.16 혁명 후 혁명 성공이 불투명하던 며칠 동안 처삼촌이 혁명주체를 숨겨둔 공로로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대학을 세우도록 학교부지를 주었단다. 욕심사납던 그는 대통령의 뜻과는 달리 땅을 팔아 재산 증식을 하려다가 중정에 잡혀가 곤욕을 치룬 다음 그 터를 게워내게 되고 역시 사업관이나 국가관이 투철한 김우중씨가 그것을 인수해서 아주대학교를 세우게 된 것이다.
김우중씨의 근황을 전하는 친구들이나 전 대우맨들에 따르면 김씨가 측근도 때로는 몰라보기 때문에 안타까워하면서 늦기전에 그의 회고록을 준비해야 될 필요성을 강조한단다. 정말 대우의 몰락은 미스테리다. 물론 김영삼 대통령의 회고대로 청와대에 천정에까지 치솟는 금고들이 있었고 전두환과 노태우 대통령 시절 재벌들이 정치자금을 바치는 정경유착 시절에 김우중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삼성과 현대는 아직도 건재한데 유독 대우만 3대 재벌에서 탈락한데는 일반시민들이 알고 있는 대우의 분식 회계 등 부정행위와 무모한 사업 확장에 따른 자금 고갈 등의 표면적 이유들 이면에 또다른 이유들이 있을 듯하다. 김회장의 기억 상실이 더 악화되기 전에 대우의 마지막 날들에 대한 그의 회고를 기록화 하는 것이 진실규명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한국기업사회의 개선면에 있어서도 중요할 것이다.
필자 전화번호 (301)622-6600
<
남선우 변호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3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인생무상이라더니, 김대중이에게 물어봐라 누가 대우를 죽였나?
정경유착 의 끝을보여주지요
얼마전 뉴욕 만하탄에서 혼자서 걸어가는모습을보앗는대안녕하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