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이상하다. 갑자기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한다. 그것도 수상이 직접 나서서 우리 해군의 광개토대왕 함이 일본 초계기에 사격 통제 레이더를 조사(照射)했다고 난리를 피우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은 정치적인 그리고 전략적인 ‘프로파간다 도발’을 하고 있다. 수상이 직접 나서서 지휘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목적성을 드러낸다. 일본은 한일 레이더 논쟁을 통해 한일역사전쟁을 역전시키고 일본이 피해자라는 공세적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
일본이 한일관계에서 역사를 왜곡하는 수세적인 거짓말을 하는 것은 흔히 보아왔지만 이번 경우처럼 공세적인 도발은 가까운 과거에는 없던 일이다. 물론 그 이전에는 그런 도발은 많았다. 일본에는 도발의 DNA가 있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그리고 미국 하와이 진주만 기습 등이 대표적인 기습도발의 사례다. 기습과 암살은 일본의 역사와 정치의 정수(精髓)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제까지 다른 누구에게 도발한 적이 없다. 꼭 좋은 의미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그렇게 “쎄게 놀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누구 말대로 우리(남한)에겐 도발의 DNA가 없다. 한국 해군이 먼저 도발할 가능성도 제로이다. 이는 물론 칭찬의 의미는 아니다.
그러면 일본은 왜 이런 ‘장난’을 할까? 우선 가깝게는 지난 2년간 한일관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안부 합의 파기 논쟁이나 대법원의 강제징용자 소송 판결 논란에서 한국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이 일본이 한국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현재로서는 위안부합의 파기 책임이나 대법원의 강제징용자 소송 판결의 책임을 한국 측이 모두 뒤집어쓰는 프레임이 굳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이 위안부합의의 본질인 사죄를 재차 부정함으로써 합의를 이미 사실상 파기했다는 것, 대법원 판결은 일본의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을 판결한 것이므로 한일청구권협정 대상과 관계없다는 것을 한국 측이 법리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적극 개진하지 못한데 따른 결과이다.
왜 이런 미련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추론해 보면 이렇다. 이번 정부가 이전 정부가 한 일을 부정하고 단죄하고 책임을 우리 내부로 돌리다 보니까 결국 모든 외교적 책임을 ‘우리’가 떠안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과 무슨 일만 벌어지기기만 하면 우선 쉽게 자기나라인 한국이 뭔가 잘못했다는 지적부터 하는 게으른 지식인들이 많다는 문제도 있다. 결국 모든 책임을 한국이 다 뒤집어쓰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고 일본이 역사전쟁에서 공세로 전환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였다. 이번 아베의 장난은 그 토양 위에서 꽃피고 있다.
천년 이상을 칼의 정치와 억압사회전통 속에서 살아온 일본사람들은 “(물리적인)힘이 진실과 정의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특히 국제문제에서 누가 거짓말을 하고 누가 옳은지 시시비비를 따져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는 어떤 사안에 관해서든 우선 시시비비를 분명히 하도록 일본을 압박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뒤늦게라도 적극적으로 반격을 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단지 일본의 선제적 공세에 뒷북치기 식 해명에 급급하고 시시비비 논쟁에만 매달리는 것은 일본이 의도한 ‘프레임’에 걸려드는 것이다. 일본의 ‘프로파간다 도발’ 의도와 그 장래 의미에 대해서도 대응해야 한다.
아베는 일본 국민들에게는 이번 거짓말로 소기의 정치목적을 달성하고 한국에게는 “아니면 말고”로도 충분히 정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일본이 생각하는 시나리오는 일단 시끄럽게 일을 벌여서 일본국민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유인한 후 곧 한국에게 이쯤에서 논쟁을 덮고 봉합하자고 제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한국은 국제적 합의를 번복하고 법을 지키지 않고 도발까지 하는 무책임한 나라다”라는,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기록과 이미지만 남는다. “한국은 자주 골대를 옮긴다”는 말도 이미 그렇게 퍼뜨리고 있다.
아베 등 일본의 보수 정치지도자들이 이런 짓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국내적으로는 전수방위 개념에서 공세적 개념으로 방위력을 증강하고 양순한 일본 국민들을 다시 전쟁으로 내몰 수 있도록 길들이는 것이다. 일본은 동아시아지역에서 절대적 강자가 없는 다극체제나 힘의 공백상태가 되면 반드시 지역 패권을 노리고 고개를 들곤 했다. 그 출발은 언제나 한국을 깎아내리는 것이었다. 지금 일본이 역사 속의 익숙한 그 작업을 다시 시작한 것 같다.
현재의 한일관계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말은 프로파간다 전쟁이다. 한국은 일본과의 프로파간다 전쟁에서 패하지 말아야한다. 모든 논쟁이나 갈등 또는 분쟁 사안에 관해 잘잘못과 시시비비를 철저히 따져 명분의 우위를 확보한 기반위에서 ‘신속히’ 타협하는 것이다. 이런 조건이 되어야 우리 측이 타협을 먼저 제의하고 주도하기도 쉬워진다. 이러한 대응을 통해 한국의 국제적인 이미지가 손상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일본의 외교안보 전략의 목표는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고 한국이 미·중으로부터 고립되어 일본에 의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은 언젠가는 전략적인 경쟁상대가 될 수밖에 없는 딜레마 관계에 있다. 미국과 중국이 보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그때그때 각 사안에 맞는 우리 외교의 내러티브(narrative)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빨리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정치지도자가 외교안보 조직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활용하는 차원 높은 정치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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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전 워싱턴총영사·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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