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은 여러 모로 특별한 해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도 그렇다. 사역하는 교회가 꾸준한 성장을 이뤘고, 아내와 나도 정서적으로 흔들리기 쉬운 오십대 후반인데도 심리적 안정을 꾀하는 생활을 해왔다고 자부할 수 있으며, 두 자녀들도 각자 자기의 삶을 잘 찾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다. 예측불가능 천지인 이 세상에서 한 해 인생을 잘 꾸려올 수 있도록 도우신 하나님 은혜가 그래서 더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해가 바뀔 때면 늘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한 법이다. 이번 한 해는 별 일 없을까, 큰일은 안 생겨야겠지, 원하며 기도하는 그 일은 잘 이뤄질까, 이런 생각들 때문이다. 나 역시 목사라고 해서 크게 다를 바는 없다. 나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도 새해가 되면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 이번 한 해 하나님의 은혜의 그늘 아래 잘 지나게 해주세요, 하면서.
새해가 되면 내 나이 59세다. 한국나이로는 이미 59세다. 다행히도 여기 사는 우리에겐 ‘미국나이’라는 게 있어 그나마 몇 개월이라도 미룰 수 있어 좋다. 30대 때만 해도 젊은 목사라는 말이 듣기 싫어 나이 먹는 걸 좋아했는데 지금은 정반대가 되었다. 그런데도 세월의 흐름은 거역할 수 없다. 싫어도 맞이해야 한다. 내년이면 내 나이 환갑이라니! 아, 정말 싫다.
나이 문제가 나왔으니 최근 깊이 생각해본 것들을 이야기해야겠다. 작년 말, 난 성경 묵상을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한 걸출한 인물을 통해서다. ‘요시야’라는 인물이다. 요시야는 남유다의 16대 왕이다. 그는 자국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것을 목전에 둔 시점 불과 여덟 살에 왕이 되었다. 그는 그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패해진 유다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신정국가로 회복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왕이 된 8년 후인 16세(어떤 학자들은 15살로 보기도 함)에 그는 자신의 개인적 신앙을 회복하고, 4년 뒤인 20세에는 공식적인 개혁 작업을 시작한다. 유다와 예루살렘 안의 우상들을 제거함으로써 과거의 신앙을 되찾는다. 26세에는 그 개혁 완성의 방점을 찍는 사건으로 기억될 ‘율법 책 발견’과 ‘유월절 예배 회복’의 주역이 된다.
지난 주 한 예배에서 나는 이런 요시야가 날 한없이 주눅 들게 한다고 고백했다. 8살 때의 난 어땠는가? 16세, 소위 ‘고딩’이라고 부르는 그 나이에, 또 그가 공식적인 개혁자의 길을 걸었던 20세 시절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던가? 또 클라이막스 인생을 살았다던 그의 나이 26세에 내 머릿속엔 무엇으로 가득 차 있었던가? 정말 주눅들만 하지 않는가?
정확히 기억한다. 난 여덟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내 콧물 간수 못한다 해서 손수건을 왼편 가슴에 달고 다녔다. ‘고딩 1년차’엔 온통 여학생 생각뿐이었다. 대학 들어간 20세엔 캠퍼스 잔디밭에서 베짱이처럼 기타 치며 노래만 불러댔다. 결혼을 앞둔 26세 때엔 앞으로 어떻게 살까 하는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 개인적인 신앙을 챙기는 것만도 버거운 시절이었다.
요시야는 39세에 죽었다. 짧은 인생 살다가 전쟁터에서 장렬히 전사한다. 그런 그를 보면서, 꼭 길게 산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님을 새삼 느낀다. 지금은 59세다. 그보다 무려 20년을 더 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난 지금까지 요시야의 절정 인생 경험의 근처에도 아직 못 가보고 있다. 적어도 신앙인 인생으로서 그렇다.
우리교회서 만든 법(‘내규’라고도 부름)으로 볼 때 목회자로서 나의 남은 사역기간은 앞으로 10년 정도다. 나의 원함은 이거다. 그 10년 안에 요시아적 인생 경험을 한 번 해보는 것이다. 하나님과 대면하는 일의 기쁨이 무엇이며, 내 자신만이 아닌 내가 속한 교회 공동체에게 그 기쁨을 전달하는 데서 오는 보람 같은 게 무엇인지를 실제로 경험해보는 것이다. 난 기필코 요시야나 에스라나 마르틴 루터나 존 칼빈 같은 위대한 개혁가가 되고야 말겠노라는 뜻이 아니다. 그들이 경험했던 신앙의 진정성이 내 안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났으면 하는 소원일 뿐이다.
사람한테는 다 이뤄도 그것 못 이루면 이루지 못한 인생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있다. 신앙인인 내게도 그런 게 있다. 특히 한 교회를 영적으로 책임지는 목회자이니 그게 무엇인가를 더 선명히 깨닫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요시야적 인생 경험이다. 그래서 저를 아는 지인들이여, 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2019년에 김 목사가 그 경험 하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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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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