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간에 외출이나 여행을 떠나기 전에 다짐을 한다. 기왕에 나온 것이고, 좋은 곳에 가는 것이니 집으로 되돌아 올 때 서로 마음 상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래서 두 가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 ‘자식과 돈’, 그런데 막상 그걸 빼고 나니 할 말이 정말 없더란다.
이민사회뿐만 아니라 한국에 살 때도 초면에 만나면 삼가 해야 할 3가지로 ‘정치, 종교, 돈, 거기에 하나 더 ’자식자랑’에 대한 이야기를 든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조심해야 할 말도 그렇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서로 간에 할 수 있는 대화라는 게 아주 건조하다. 눈에 보이는 이야기들만 해야 한다. 먹는 이야기, 건강, 옷, 그렇다보니 사람들 간에 밥 먹고 눈만 끔벅이다가 돌아와야 할 때도 있다. 무난한듯하지만 활력이 없다. ‘소통도 안부’도 모른 채, 겉만 돈다.
‘확증편향(確證偏向)’이라는 것이 있다. 원래는 경제용어였는데,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이른다. 이 말은 ’인지편향, ‘귀납적 오류’, ‘기억편향’, ‘통계의 오용’, ‘인지관성’ 이라는 말들과 유사하게 쓰이고 있다. 즉 ‘믿는 것만 계속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한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확인증명 받고 싶어 하는 심리는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물건을 사 놓고 그 구매가 옳았는지 궁금하고 파마머리가 맘에 드는 지 보여주고 싶은 심리가 그것이다.
하지만 자식의 장래, 돈에 대한 개념과 사용, 종교, 정치에 대해서는 그 판단과 해석의 정도가 더 심할 뿐 아니라 심각하다. 그 결과 일상에서 매일매일 가장 중요한 분야임에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회피하는 이유조차도 모른 채 맘에 맞는 사람끼리만 모이고, 대화하고 심화시킨다. 그래서 특화된 이야기만 하는 곳을 끼리끼리 찾는다. 돈 가지고 징징대지 않을 사람끼리만 만나고, 해당종교 이외는 꺼내지도 못하게 한다. 정치에는 모두 박사들이다.
유유상종이랄 수도 있는 이런 현상은 사람이 변화를 싫어하고, 그래서 얼마나 변하기가 어려운가를 설명한다. 이것을 ‘프레임 효과(Frame Effect)’라고도 한다. 자기 자신은 이를 부정하지만 자기가 쓰고 있는 안경색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서는 현재의 한국을 ’빨갱이‘천국으로 만들어 버려야 아주 편하다. 그래놓고도 공정한 시각으로 사실에 입각해서 객관적인 양 착각까지 한다. 이것이 심해지고, 뭉쳐지면 ’공동체 전체‘가 어려워진다.
오늘날 한국은 정치문화(political culture)의 실종이라고 해야 옳을 정도로 흐름과 방향성이 없다. ’경제가 어렵다’는 것과 정치가 추구하는 것은 유리될 수는 없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엄밀히 하자면 정치는 정치이고, 경제는 경제다. 또한 경제의 ‘어렵다’는 자체의 객관성이 아주 모호할뿐더러 스스로 국민을 단지 먹고사는 개, 돼지 취급하는 정치문화를 못 만들어서 안달하는 모양새다. 그런 국민들에게 먹는 문제 이상의 정신, 정서, 가치 등을 향유토록 이끌 일차적 책임은 정치인들에게 있다. 그런데 정당은 이러한 확증편향을 노골적으로 생산한다. 정책이나 이념의 문화적 접근이라는 것은 아마추어리즘으로 비웃음꺼리가 되어버렸다. 언론들의 사명 또한 적지 않다. 언론들이 이런 싸움이나 프레임을 공정하게 관리하고 말려야 하는데도 덩달아서 부추기는 상황까지 되어버렸다. 정치문화는 없고, 확증편향만 난무하다.
2018년에 가장 회자되었던 낱말이 ‘혐오’와 ‘가짜뉴스’이다. 국민 소득수준 3만 불을 이미 넘어섰다. 세계 11대 경제대국이다. 한가한 소리 같지만 물설고 낯설은 이국땅에서 몸 붙이고 살아보려는 이민자들의 그런 노력의 절반이라도 귀농, 귀어라도 한다면 먹는 문제로 이렇게까지 서로 아귀다툼할 상황도 아니려니와 이걸 정치에 몰빵해서 요구한다는 게 얼마나 넌센스인가, 나는 일제의 패배주의의 산물이 이런 ‘패거리 문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패전국 일본은 모든 가치의 최상단에 ‘생존’이 자리해야 했다. 살아남아야 재기도 하고 재건도 할 수 있다는 매우 단순한 논리다. 그래서 그들은 ‘누가 살아남는가?’ 가 가장 중요했다.
홀로 있는 것보다 ‘패거리’져 있어야 생존확률이 높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 길이 ‘옳거나 틀리거나’의 문제는 사치스런 것이었다. 틀려도 맞고, 맞아도 틀려야 했다. 오직 ‘내편인가, 상대편인가?‘가 만 있다. 선택의 여지를 없애버렸다. 개인이든 정당이든 더 현명한 판단을 하려한다면 자기 무의식속에 있는 이런 확증편향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빠를수록 좋다. 부부지간에 자식, 돈 이야기 못하면 어디 가서 하나? 정치, 종교이야기, 서로 듣고 편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맞는 것, 옳은 길을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겐세이 놓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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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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