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리스트. 왼쪽위부터 시게방향 1. 문범강, Love Flies, 아크릴에 파리 콜라쥬, 2014 2. 서용선, 청학동에서, 캔버스에 아크릴, 2011, 2015 3. 서용선, 백련사, 종이에 아크릴, 2016 4. 서용선, 백령도, 캔버스에 아크릴, 2014 5. 문범강, Thangka 0001, 종이에 아크릴, 2007
이번 전시에서 서용선의 주제는 “산하 (Mountains and Streams)”이다. 자연, 도시, 인물 등 모든 소재들에 다중적 함의를 부여하며, 회화, 조각, 퍼포먼스 등의 장르로 종횡무진하는 그이지만, 자연의 소재 중 특히 “산”은 서용선에게 떠나지 않는 주제, 즉 대한의 민족 정신과 맞닿아 있다. 한반도의 산세와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각인되어 온 역사의 줄기들을 간과하지 않은 그는, 이제까지 그의 작품세계를 통해, 단종의 비극등 한국역사와 신화의 소재들을 특이한 시각으로 해석하며 끊임없이 탐구해 왔다. 이번 전시의 산세들도 단순한 풍경화를 넘어서서 그러한 역사를 도도하게 담고있는 한국의 산하를 그리고 있다.
지리산이 그 예인데, 지리산은 주지하다시피 수많은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칩거의 장소이자 우리 민족 정기를 마무리하는 풍수지리적 지세를 담고있다. 한반도는 대부분이 산으로 덮여있고, 그 중 특히 백두산을 필두로 마치 등뼈처럼 길게 이어지면서 동쪽 해안선을 따라서 남쪽의 지리산으로 이어진다. 이를 “백두 대간”이라 하며 백두산에서 시작된 한민족 겨례의 큰 줄기란 뜻으로, 땅의 정기는 우리 민족을 지탱하는 정신적인 지주이며, 더불어 그 줄기마다 흐르는 물줄기는 생명체의 혈맥처럼 우리 민족을 살리는 생명선이며 양식과 생활의 원천이었다.
서용선의 작품 <청학동>은 경상남도 하동군 지리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일명 ‘도인촌’으로 알려진 마을로 미국의 ‘아미쉬’ 마을처럼 전통적 유교 법도와 생활양식을 유지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 역사는 사실 6.25 전쟁시 특별히 유교를 신봉하던 이들이 숨어서 지내다가 형성된 마을로 후에 알려져서 행정구역에도 속하고, 지금은 전통 문화를 배우는 장소로서 미디어에도 등장하곤 한다. 작가와 인터뷰중, 이 작품에서 사용한 강렬하고 거친 붉은색 붓터치가 혹시 가을산을 그린 것인지 물었을 때, 작가는 가을이 아니어도 실제 그 숲에서 바라보면 붉은 색도 보인다는 은유적인 답을 하였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민족의 아픔의 역사에 반응하는 감성이 느껴졌다. 지리산이 빨치산 토벌 작전으로 인해, 한 동족끼리 죽고 죽이는 피바다로 물들었던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지만, 그는 또한 지리산이 민족의 아픔을 담고 있는 역사가 그 보다 오래되었음을 주목하였다. 사실 우리 민족의 수난과 질곡을 지리산만큼 담고 있는 산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시조는 삼국시대를 넘어 마한 진한에 이르기까지 지리산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전쟁이 있었고, 고려 때의 왜구의 침략이나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참상을 겪어야 했다. 동학혁명과 진주 농민 운동, 그리고 빨치산과 토벌대의 피는 계곡과 능선을 붉게 물들였지만, 여전히 지리산은 한민족에게는 영지이다.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신선이 내려왔다는 삼신산으로 알려진 이곳은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명실공히 한민족의 지주인 것이다. 그의 빠르고 거친 원색의 표현주의적 붓 터치는, 어떤 난관에도 변치 않고 유유히 흐르는 민족 정기의 힘을 담고 있는 고졸한 산세를 표현하는데 적합해 보인다. 그는 원색을 쓰는 이유에 대해, 한국의 색감을 오직 흰색으로 인식하는 것을 바로 잡고자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민화든 불화든 화려한 색채의 전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조 백조의 흰색에 대표성을 주는 한국문화에 대한 편견에 도전해 보는 것이다.
문범강은 이번 전시에서 그의 소품들과 실험적인 작품들을 전시하였다. 그는 지난 몇 년간 큐레이터로서 북한 미술 조선화를 이해하기위해 총력을 다해왔으므로, 자신의 예술창작과 대중과의 만남에 어느 정도 목말라 있었다고 한다. 2016년 아메리칸 대학에서 북한 미술을 소개한 이후, 수차례의 북한 방문과 탐구를 통해서 어느새 북한 미술 전문가가 된 그는, 올 2018년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로 초대받았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북한의 산수화보다는 인물 중심의 사회주의 사실주의 경향의 ‘주제화’ 그리고 2인이상이 공동으로 작업한 대형 ‘집체화’에 관심을 가진 그는, 조선화의 매력과 다양성,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일률적이지 않은 개성과 고구려 기상을 연상시키는 힘을 설파하는 <평양미술-조선화 너는 누구냐>를 작년 3월에 출판한 바 있다.
작가로서 그는, 주로 세밀하게 사실적인 또는 하이퍼 리얼리즘에 가까운 정교한 재현의 경지에 이르렀는데, 이번 전시의 반추상 작품을 한 연유는, 오래 동안 구상미술을 제작하면서 어떤 경지에 도달하려는 과정을 통해 마침내 그곳에 다다른 것 같은 충족감을 느낌과 동시에, 표현의 자유를 다른 차원에서 실험해 보고 싶은 갈망이 생겼다고 했다.
그의 실험 정신은,
에서처럼 구체적인 소재의 형상을 와해하며 구상을 허무는 작업에서도 시도되었고, 최근에는 와 같은 구상과 추상, 또는 재현과 실재를 오가며 그 경계를 허무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미디어의 가장 작은 단위인 픽셀 (pixel)처럼 형상을 이루는 선을 허무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그는, 에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험하여 하트 모양을 이룬 실제의 집파리들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였다. 필자는 그의 이러한 작업을 바라보며 탈구조주의의 대가 쟈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해체주의를 생각 하지 않을수 없다. 서구 사회의 축적된 논리들을 만들어 낸 역사의 과정에 대해서 비판을 가한 프랑스의 철학자 데리다는, 절대적 진리보다는 열려진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설파하며, 탈구조 또는 해체구성 (deconstruction)’ 이라는 새로운 이해의 틀을 제안한 바 있다. 그의 사상은, 경계를 허물며 다양한 것에 가치를 두는 다원주의적 포스트 모더니즘의 결정적인 패러다임을 제공했다.
문범강은 또한 이 작품에서,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고귀한 성역의 관념들에 도전하였다. 말그대로 사랑은 “날아가 버리는 (동사로서의 flies)” 일시적이며 허무한 것일수도 있고, ‘파리 (명사로서의 flies)’ 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은 성가시고 끈끈한 것일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를 암시하고 있다.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의 차이도 항상 모호하고 허물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작가가 설명한 작품 제작 과정은 클래식하기 그지없다. 자신의 농장에 트랩을 만들어 파리를 잡았고, 표백제와 물로 거듭 세척, 소독후 건조시켜서, 아크릴로 색칠하였다. 다양한 농도와 질감으로 채색한 바탕 화면에 풀을 사용하여 붙인, 즉 모던아트에서는 고전이 된, 콜라쥬 기법을 사용하였다. 독창적인 이 작품은, 현실을 비판적 눈으로 바라보며, 기존 관념의 허점을 유모감각으로 풀어내던 다다이스트의 거장과 후예들, 즉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아르망(Arman) 또는 중국의 대가인 에이 웨이웨이(Ai Weiwei)를 연상시키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문범강 작품 이해의 큰 맥락 중 하나는 제식(ritual)과 정신성에 관한 그의 관심이다. 는, 사슴 등의 사체의 뼈에서 꽃을 피워내는 모습이다. 결국 죽음으로부터 피어난 삶, 또는 여러개의 생이 연결된 환생의 개념은 불교의 믿음이기도 하지만, 서구 물리학의 물질의 순환이론이기도 하다. 그의 시리즈는 불교 탱화에서 영감을 얻은 모티브로서, 그의 상상력 속에서 현재와 과거, 정신과 물질, 서구와 동양을 연결시켜준다. 10세기경 티베트에서 처음 사용되었던 탱화는 다양한 종교적 의식에 쓰였는데, 문범강은, 한국의 전통 정신을 계승하려는 일환으로 불교미술의 요소들을 차용하여, 현대적 감각과 표현으로 결합하여 재해석하였고, 이를 통해,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허물며 연결시켰다. 문범강의 불교 미술에 대한 다양한 관심으로 인하여, 그는, 버지니아 메리 워싱턴 대학 미술관과 필자가 공동 기획하는 대학 소장 불교미술과 현대작가의 불교 미술을 대비시키는 올 3월 전시에도 초대되었다.
활발한 작품 활동을 위해 서울대 교수직을 사임하기까지 한 서용선 작가도 이번주 9일말부터 뉴욕 갤러리에서 전시 계획이 있다. “서용선 지연된 유토피아: 화가와 도시 중심지” 라는 이 전시는 그의 독일 표현주의 적인 도시와 도시인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과 탐구를 보여줄 것이다 (Mizuma, Kips & Wada Art). 현대미술의 트렌드는, 4차 산업 혁명의 시대에 발맞추어 다른 영역들을 ‘융합 (convergence)’하는 인류발달의 경향을 탐구하며 실험하는 것이 화두이다. 어쩌면 미술에서 주도적인 예를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미술가들은, 분류에서 벗어나 경계를 해체하는 것을 넘어서서 창조적 융합의 시대로 달려갈 수 있는 여건들, 즉, 수려한 역사와 정신사적 컨텐트, 전통 미술 형식의 유산, 그리고 테크놀로지에 민감한 빅 데이타를 이미 갖추고 있다. 관건은, 이 시대의 한국 현대 작가들이 어떻게 그들의 작품을 통해, 가치있게 이 귀한 재료들을 취합하여 융합을 이루어 내느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두 작가는 역사적 정신적 뿌리에 바탕을 둔 충분한 실존적인 고찰과 더불어서 형식적인 도전을 해왔고, 보다 밝은 미래의 한국 미술의 자리매김을 향해서 융합을 거듭해 왔다.
필자는2019년 그들의 더욱 대담한 행보에 건투를 빈다. 더불어 언급하고 싶은 것은, 서용선의 색과 붓터치에서 독일 (신)표현주의나 한국의 민화와 벽화의 자락을 만날지, 문범강의 형상들에서 영국의 프란시스 베이컨을 또는 불교의 탱화를 발견할지는 관람객 여러분들의 몫이고 자유로운 해석의 특권이자 재미일 것이다.
전시 Dec 8, 2018 - Jan 11, 2019
MK Gallery
(1952 Gallow Rd. #202,
Vienna, VA 22182.
703-734-7777)
Mon-Fri: 12 - 6 pm /
Sat & Sun: By appt.
●이정실
UMUC 조교수, GWU, MICA, WUV 강사
미술 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이화여대 불문학 & 미술사 석사
프랑스 니스 대학 문화사 박사(수료) & 메릴랜드대학 미술사 박사
<이정실 UMUC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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